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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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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간신은 정말 간신인가?3. 역사 속 간신들
3.1. 한국사
3.1.1. 간신
3.1.1.1. 고려 이전3.1.1.2. 고려 전기3.1.1.3. 무신 정권3.1.1.4. 고려 후기3.1.1.5. 조선 전기3.1.1.6. 왜란 이후3.1.1.7. 개항 이후
3.1.2. 권신
3.1.2.1. 고려 이전3.1.2.2. 고려 전기3.1.2.3. 무신정권3.1.2.4. 고려 후기3.1.2.5. 조선 전기3.1.2.6. 왜란 이후3.1.2.7. 개항 이후
3.1.3. 역신
3.1.3.1. 고려 이전3.1.3.2. 고려 전기3.1.3.3. 무신 정권3.1.3.4. 고려 후기3.1.3.5. 조선 전기3.1.3.6. 왜란 이후3.1.3.7. 개항 이후
3.1.4. 애매한 경우
3.2. 중국사
3.2.1. 간신
3.2.1.1. 하·상·주3.2.1.2. 춘추·전국 시대3.2.1.3. 진·한3.2.1.4. 삼국시대3.2.1.5. 남·북조 시대3.2.1.6. 수·당3.2.1.7. 오대·십국 시대3.2.1.8. 송·요·금3.2.1.9. 명3.2.1.10. 청3.2.1.11. 현대
3.2.2. 권신
3.2.2.1. 하·상·주3.2.2.2. 춘추·전국 시대3.2.2.3. 진·한3.2.2.4. 삼국시대3.2.2.5. 남·북조 시대3.2.2.6. 수·당3.2.2.7. 오대·십국 시대3.2.2.8. 송·요·금3.2.2.9. 명3.2.2.10. 청3.2.2.11. 현대
3.2.3. 역신
3.2.3.1. 하·상·주3.2.3.2. 춘추·전국 시대3.2.3.3. 진·한3.2.3.4. 삼국시대3.2.3.5. 남·북조 시대3.2.3.6. 수·당3.2.3.7. 오대·십국 시대3.2.3.8. 송·요·금3.2.3.9. 명3.2.3.10. 청3.2.3.11. 현대
3.3. 일본사3.4. 몽골사3.5. 기타 지역

1. 개요

신하의 평가에 따른 호칭 분류
간신
(악)
신하
(선)
충신
세상에는 일찍이 간신(姦臣)이 없었던 때가 없었다. 오직 임금의 현명함으로 그것을 잘 살펴보고 부림으로써 바른 길로 이끌었기 때문에, 간신들이 술수를 부릴 수 없었다. 만약 한번 그 술수에 빠지면 나라가 위기에 이르지 않는 경우가 드물었다.
고려사》 권125 열전 권제38 간신 서문 中
/

간신은 '육사신(六邪臣)'의 하나로 '간사한 신하'를 이른다. 육사신(六邪臣)은 나라에 해로운 여섯 유형의 신하로 구신(具臣)[1], 유신(諛臣),[2] 간신(奸臣), 참신(讒臣)[3], 적신(賊臣)[4], 망국신(亡國臣)[5]을 말한다.

군주의 권위를 인정하는 한편[6], '권위'가 아닌 '권력'은 최대한 뜯어먹기를 바라며, 그 과정에서 전통사회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신하의 덕목을 크게 결여하거나 무시하는 신하라고 한다.

이와 다르게 군주의 권위에 복종하여 '아첨'을 부리게 되면 "영신"이 된다.[7]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반역자들도 간신에 들어간다.[8]

육사신에 간신만 있는 것은 아니나 간신이 제일 유명하여 다른 단어들은 묻혔다.

간신과 권신이 잘 구별되진 않는 편인데, 간신 → 권신 진화형들도 많지만 거꾸로 권신임에도 군주의 묵인하에서 살아남고, 군주의 묵인이 사라지는 순간 숙청되는 경우도 많기에... 결국 대개 확실한 "간신" 부류는 환관류 위주다.

게다가 권신 그 자체는 좋은 의미도 나쁜 의미도 없다. 권신이 자기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후대의 평가가 정해지는 것이지 권력을 많이 가졌다고 다 악한 짓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니 권신은 무조건 악하다는 편견은 틀린 것이다. 대표적인 권신이자 충신으로는 촉한 승상 제갈량이 있다. 승상 제갈량은 한열조 소열황제의 유언으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으나 자기 권력을 사리사욕에 쓰기는커녕 평생 나라를 위해 분골쇄신하다 과로사한 권신이자 충신의 모범적인 사례이다.

일찍이 공자는 간신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5가지로 구분한 바 있다.

명나라 충신 양계성은 당시 간신 엄숭의 죄악과 그 간행을 "십죄상"과 "오재상"으로 요약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름의 가치관을 갖고 있긴 해도 무능력하면서, 높은 직위에 오른 자 역시 정치적 적대자에게 간신으로 취급된다. 이쪽은 간신이라기보다는 우신(愚臣)인 듯하지만 말이다.

이미지는 대부분 군주 앞에선 살살 웃으면서 아첨을 떨지만 뒤에선 역모를 꾸미고 있다든지 하는 나쁜 놈년들. 현대사회에서도 조심해야 할 사람들이다.

현대 사회에서 간신의 특징에 부합하는 사람이 사회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어지간하면 사회 부적응으로 실패하거나 좌절할 일이 잘 없다. 왜냐하면 주변으로부터 간신배 소리 듣는 사람들은 적어도 인간관계를 교묘히 조율하는 처세술과 자기 이득에 따라 남을 이용해 먹는 정치적 권모술수, 그리고 높으신 분들의 눈밖에 나지 않으면서도 정적들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기회잡아서 도태시키는 스킬 하나는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오히려 능력은 좋은데, 사회성이 극도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사회 부적응을 겪기 쉽다.[9] 더군다나 조직생활에 있어서 높으신 분들은 능력은 좋은데 사회성 떨어지고 인간관계가 좋지 않는 사람과 능력은 그저 그렇지만 자신들의 비위를 잘 맞춰주고 언제나 고개숙여주고 맞장구 치며, 대인관계가 원만한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후자를 택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충신은 흔히 어린이 역사 만화에 나오는, ‘무릎을 꿇고 눈물로써 군주의 잘못을 바로잡을려고 호소하는’ 인간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 클리셰가 있는데, 당시의 충신들은 꼬장꼬장하고 건방져 보일수도 있는 독설화법을 구사하며 윗사람의 잘못을 따끔하고도 뼈아프게 직시해주는 아웃사이더 외곬수형에 더 가까웠다. 역사 만화에 등장하는 클리셰처럼 군주가 눈물로써 호소하는 충신에게 크게 화를 내면서 ‘저놈이 감히! 저 자를 당장 내쳐라!’ 식의 반응을 보면 군주가 분노조절장애 싸이코패스에 가까워 보일 정도. 사실 진성 싸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어떤 군주도 충신을 가까이하고 간신을 멀리하라는 제왕학의 법칙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군주도 사람인만큼 자신에게 좋은 말만 해대는 사람은 좋아할 수 있어도 맨날 교훈질만 해대는 사람에게는 거리감을 느끼고 좋아하기 힘든 것처럼 충신은 간신들에 비해 군주의 총애를 받기 힘들었고[10] 그만큼 군주가 사람을 제대로 가려내는 판단력이 없을수록 충신과 간신을 제대로 구별해내기 힘들다. 당연하지만 충신이나 간신이나 모두 진심으로 임금을 위해서라는 논리를 내세우기 때문이다. 오히려 진짜 충신이 역신으로 오해당해 숙청당하고 간신이 충신으로 대접받아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결과가 나오게 되어 국가 막장 테크가 발생하게 된다.

사대부 관료들이 군주의 측근들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구호. 조선시대에 가면 군주에게 서로 상대방이 간신이라면서 쫓아내라는 일종의 병림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른바 "소인" 낙인 찍기가 대표적. 간신 목록에 권신, 척신, 역신, 우신들이 이름을 올리는 이유기도 하다. 또한 간신의 전단계인 폐행이 있는데 이쪽은 사직을 말아먹을 만큼 망칠 수준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극에선 왠지 마르고 이방수염을 기르고 있으며 손을 비비면서 헤헤헤 웃는 그런 이미지로 묘사되었다. "어찌 그런 옳은 판단을 하시나이까" 같은 대사도 필수.

간신 중에는 천출이나 노비 같은 신분으로 태어나 평범하게 살다가 권력을 쥐니까 급격히 타락한 경우도 있는데, 김준, 신돈, 유자광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런 부류의 간신들은 권력을 손에 넣는 과정에서 기득권들을 대거 몰아내고, 권력을 쥔 이후 급격하게 흑화한다. 자신에게 밀려난 기득권 세력이 대대적 반격을 가하는 시점에서 절대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도 세력을 키우고 심복을 숱하게 심어야하는데, 대체로 이 과정 속에서 선정을 펼치기보단 권력투쟁에만 신경쓰게 된다. 이전에 쌓인 열등감도 한몫을 한다. 미천하니 무서울 것이 없다는 말도 한다. 그래서 이들의 평가는 엇갈릴 수밖에 없다. 김준의 경우는 무신정권의 정점인 최씨 정권을 붕괴시켰고, 신돈은 권문세가에 큰 타격을 줬고, 유자광은 연산군을 몰아낸 공로자이다. 대신 이들 역시 이들이 깨트린 집단과 한 때 타협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2000년대 사극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자들이 간신을 연기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예: 이덕화, 김응수, 박근형, 조경환, 이재용 등.) 하지만 사실 이들은 대개 권신.

2. 간신은 정말 간신인가?

임사홍 등이 대표적 사례. 그리고 왕안석, 한명회처럼 한쪽 면에서만 평가할 수 없는 존재도 있긴하다(사실 왕안석의 경우엔 성리학자들의 디스[11], 한명회의 경우엔 권신에 가깝다.[12]). 동아시아 국가 막장 테크의 주요 원인이던 외척, 환관들마저도 "생각보다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었다"란 재조명이 나오는 것이 현 상황이다. 또한 정쟁으로 죽은 사람을 후대에 복권시킬 때도 그게 군주의 뜻으로 죽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군주가 잘못해서 충신을 죽였다고는 할 수 없으니 "이게 다 간신 아무개가 모함해서 그렇다."라고 총대만 멘 신하에게 뒤집어 씌워 간신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케이스로 남곤이나 정철이 있다.

간신이란 정의 자체가 역사를 선과 악으로 이분하려는 춘추사관적인 태도가 짙다는 분석도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간신(이라고 알려진 사람)들 중에서도 정말로 악랄했던 것이 아니라 무능이나 다른 이유로 반대파에게 '간신'이라 낙인 찍힌 경우도 종종 있다.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군주의 방패막이라는 설도 있다. 차마 군주를 깔 수는 없으니, "간신이 임금님을 망친다!"는 식으로 깐다는 것. 그리고 유교 문화권에선 "사람의 됨됨이를 보려면 그 사람의 친구를 보면 된다" 라는[13] 말이 꽤나 지지받고 있었기에, 군주의 주변에 간신만 많다고 비판해도 간접적으로 군주를 비판하는 효과가 달성되기는 했다. 요즘 시점에서 보면 어지간히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 이상, 간신을 키우는 군주 쪽이 잘못이다. 이른바 간군(奸君). 대표적인 사례로는 남송의 휘종, 흠종, 고종, 명나라가정제가 있다.

이건 당연하지만 유교문화권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은 평상시에도 군주의 외도를 남자다움의 덕목을 갖추어 나라의 위신을 살리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 때문에 군주가 혼외정사를 하는 것은 긍정적이었던 반면 그 대상이 되는 여자, 즉 군주의 정부는 항상 '요망한 창부'로서 욕받이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군주의 정부를 비난하는 건 국민 스포츠였고 이 비난은 왕후도 예외는 아니었다. 17세기에 들어선 뒤에는 신문의 발달로 한층 욕 수위가 업그레이드되고 추잡스러운 삽화까지 더해지면서 이런 음담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3. 역사 속 간신들

※ 신하로서 무능했는지의 여부는 간신과는 무관하므로 무능했다는 이유로 적지는 말아야 한다. 또한 부패했음에도 중앙 정치에 개입한 사례가 없다면 간신보다는 탐관오리로 분류하여 역시 제외한다.

※ 간신 중 군주에 영합하고 모조리 오케이하며 아첨하며 부정부패 등을 일삼았던 케이스는 간신, 군주를 무시하고 자기가 멋대로 권력을 휘두른 케이스는 권신(권력이 컸더라도 군주를 존중하고 그 아래에서 부패했다면 간신으로 분류), 권신을 넘어 아예 군주권까지 탐했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려 했던 케이스는 역신으로 분류한다. 카테고리에 동시에 포함될 시에는 역신>권신>간신의 순으로 넣는다. 반민족행위자들은 주동적 역할을 하였다면 역신, 수용하는 쪽이었다면 간신으로 분류한다.

※ 반정공신의 경우에는 반정을 당한 쪽의 입장에서는 역신이지만, 충성을 바친 쪽이 반정군주라는 점을 감안하여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역신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사서 등에서 간신으로 취급받았으나 실제로 간신이라고 보기 어려웠던 인물은 애매한 경우로 분류하고 그렇게 분류한 이유를 같이 서술한다.

※ 권력을 잡으면서 권력남용을 부리고 횡포를 일삼는 권신들과 직분보다 사리사욕을 우선시하여 실정을 저지른 간신이라 평가받은 관리들만 기재한다.

※ 나라나 왕조에 엄청난 해를 끼치거나 중대한 범죄행위를 저질렀을 경우 볼드.

3.1. 한국사

3.1.1. 간신

3.1.1.1. 고려 이전
3.1.1.2. 고려 전기
3.1.1.3. 무신 정권
3.1.1.4. 고려 후기
3.1.1.5. 조선 전기
3.1.1.6. 왜란 이후
3.1.1.7. 개항 이후

3.1.2. 권신

3.1.2.1. 고려 이전
3.1.2.2. 고려 전기
3.1.2.3. 무신정권
3.1.2.4. 고려 후기
3.1.2.5. 조선 전기
3.1.2.6. 왜란 이후
3.1.2.7. 개항 이후

3.1.3. 역신

3.1.3.1. 고려 이전
3.1.3.2. 고려 전기
3.1.3.3. 무신 정권
3.1.3.4. 고려 후기
3.1.3.5. 조선 전기
3.1.3.6. 왜란 이후
3.1.3.7. 개항 이후

3.1.4. 애매한 경우

3.2. 중국사

3.2.1. 간신

3.2.1.1. 하·상·주
3.2.1.2. 춘추·전국 시대
3.2.1.3. 진·한
3.2.1.4. 삼국시대
3.2.1.5. 남·북조 시대
3.2.1.6. 수·당
3.2.1.7. 오대·십국 시대
3.2.1.8. 송·요·금
3.2.1.9.
3.2.1.10.

3.2.1.11. 현대


3.2.2. 권신

3.2.2.1. 하·상·주
3.2.2.2. 춘추·전국 시대
3.2.2.3. 진·한
3.2.2.4. 삼국시대
3.2.2.5. 남·북조 시대
3.2.2.6. 수·당

3.2.2.7. 오대·십국 시대

3.2.2.8. 송·요·금
3.2.2.9.
3.2.2.10.
3.2.2.11. 현대

3.2.3. 역신

3.2.3.1. 하·상·주

3.2.3.2. 춘추·전국 시대
3.2.3.3. 진·한

3.2.3.4. 삼국시대
3.2.3.5. 남·북조 시대
3.2.3.6. 수·당
3.2.3.7. 오대·십국 시대

3.2.3.8. 송·요·금
3.2.3.9.
3.2.3.10.
3.2.3.11. 현대

3.3. 일본사

3.4. 몽골사

3.5. 기타 지역


[1] 자리만 차지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신하.[2] 아첨을 떨며 목숨을 부지하려 드는 신하.[3] 온갖 악한 술수를 부림에 거리낌이 없는 신하.[4] 왕에게 반기를 드는 신하.[5] 나라를 망하게 하는 신하. 그 매국노 이완용도 망국신이다.[6] '군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군주의 권위를 일부러 추켜세우는'이 적당한 말인지도 모르겠다.[7] 흔히 말하는 예스맨[8] 이는 멋들어진 앞서의 정의에도 어느 정도 허점이 있음을 보여준다.[9] 아스퍼거 증후군 등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하거나 아니면 눈치, 배신, 사기 등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꿰거나 기회만 되면 타인을 뒷통수 치는 스킬이 저조한 사람이 조직생활에서 절대 살아남기란 불가능하다.[10] 물론 삼국시대 제갈량처럼 임금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호감을 받으면서도 능력도 좋고 충성심도 강한 충신이 있지만, 그런 완벽한 사람은 현실적으로 나타나기가 엄청나게 힘들다. 괜히 제갈량이 중국을 넘어 동아시아 전체에 현시대에까지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게 이유가 있는 것이다.[11] 필원잡기에 따르면, 어느날 집현전 학사들이 "왕안석을 어느 전기에 놓아야 하느냐"는 토론을 하니 대부분 사람들은 "간신전에 놓아야 한다"고 했으나 후에 사육신의 한 사람이 되는 유성원만이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후에 송사(宋史)가 조선에 들어오니, 역시 왕안석이 간신전에 있지 않았다고 한다.[12] 그런데 이게 또 애매한게, 한명회신숙주와 함께 소위 세조의 원상집단의 리더로 그들의 세력이 강해질수록 세조는 이들을 통해 관료들에게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관계였고 세조도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한명회, 신숙주, 권람 등에게 특권을 부여했다. 물론 세조 치세 말기로 가면 세조도 이들의 세력을 견제하기 시작했지만... 또 한명회의 권력행사가 세조의 권력을 심하게 침해했다고 보기는 힘든 게, 이시애의 난 때 세조는 한명회와 신숙주를 뻔히 헛소문인거 아는 내통 소문을 이유로 잡아 가두고도, 나중에 무죄로 밝혀져 풀어주면서 데꿀멍하기는 커녕 "니들이 알아서 조심했으면 이런 일 없었지!"라고 큰소리까지 쳐댔다. 물론 이건 한명회에게 권력이 없던 게 아니라 세조의 왕권이 개쩔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13] 일단 현대까지 널리 통용되고 있는 한자성어 중에서만 보자. 근묵자흑, 근주자적, 유유상종, 맹모삼천지교 등등.[14] 광부고려에서 천민 계층에 속했다.[15] 다만 그 두 사건에는 군주의 의중이 포함되어 있기는 했다. 처형당한 주요 당사자들이 스스로 화를 자초한 일인 것도 맞고.[16] 갑자사화를 부추겼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임숭재가 미치지 않고서야 작정하고 사화를 의도했을 리는 없다. 임사홍의 정치적 적은 사림인데, 갑자사화의 명분인 "폐비 윤씨의 복수"는 기본적으로 폐비 당시의 세력들이자 임사홍의 동지들인 훈구세력을 겨누는 문제이기 때문. 훈구세력이 없어지면 오히려 사림의 힘이 더 커지고 임사홍의 입지는 오히려 줄어들 것이 뻔하다. 그 정도 계산도 못 하는 사람이라면 과거에 급제할 수도 없다. 연산군에게 자신의 충성을 과장하다가 그만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린 것 뿐이다.[17] 한쪽 발이 등자에 걸린 상태로 낙마했다. 말에게 짓밟히면서 끌러다니는 바람에 사람 모습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18] 어찌보면 기자헌은 정치적으로는 충신이라고 볼 수 있지만, 도덕성 면에서는 간신이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이이첨 같은 경우는 정치적으로는 간신이지만, 도덕성 면에서는 청렴했었다.[19] 결국, 만주 청나라가 중국에게 먹혔으니 멀리보면 한중합병이다.[20] 이쪽도 만만치 않았으나, 조정을 휘어잡은 (신)안동 김씨에 비해 권력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네임드급 관리도 많지 못한 편이다.[21] 관중 사망 후 습붕이 재상이 되었으나 곧 죽고 이후 포숙아가 재상에 올랐는데 포숙아는 올곧은 사람이라 이때까지는 삼흉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는데 오히려 융통성이 있었던 관중 때보다 더했다고 한다. 물론 포숙아도 죽고 환공의 고삐를 죌 마지막 보루가 사라지자...[22] 영안왕 고준(高浚), 평양왕 고엄(高淹), 낭야왕 추존 초공애제 고엄(高儼), 곡률광 처형[23] 이때문에 그의 아들인 조군언에게까지 불똥이 튀는데 수나라 시절 뛰어난 문재에도 중용되지 못하고 홀대받다가 결국 이밀 수하에서 수나라 전복에 협력했다.[24] 숭정제는 의심이 많아 17년간 재상을 50명이나 갈아치웠다.[25] 이 경우는 당대부터 평가가 갈렸다. 민생을 안정시키고 황음무도한 군주를 폐위한 다음 명군을 세운 공로가 있기 때문이다.[26] 손권의 장남이었던 손등의 아들이다.[27] 다만 제갈각은 자기가 자기 무덤 판 것도 있다.[28] 중국사에서는 평가가 엇갈린다.[29] 단, 조방이 사마사를 죽이려 했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사마사는 정치적 역량이 상당했던 인물이다.[30] 유비는 경제의 후손으로 후한에서는 황족 취급을 받지 못했으며, 후한에서는 광무제의 후손이 아니면서 왕위에 오른 유씨는 없는 상황이었다.[31] 또한 관중의 명가 화음홍농 양씨를 효장제의 거사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몰살시켰는데 여기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도망친 양준언은 고환에게 의탁하여 이주씨 토멸에 앞장섰고 이후 북제의 명재상이 된다.[32] 아브넬은 이전 요압의 동생이자 다윗의 조카 겸 용사대의 일원인 준족의 소유자 '노루발' 아사헬을 죽인 악연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