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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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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호칭3. 역사4. 상세5. 여담6. 관련 문서7. 사위 속성을 보유한 캐릭터

1. 개요

남편. 사위를 뜻하는 한자로는 사위 서() 자가 있으며, 영어로는 'son-in-law'라 한다. 'son-in-law'는 친아들은 아니지만 (법적으로) 아들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어원은 중세 한국어 '사회'에서 유래한다. 계림유사에서는 '남편' 혹은 '지아비'를 뜻하는 단어라고 서술하고 있으며, 조선 시대의 문헌에서도 이 단어가 '남편'과 '사위'를 모두 뜻하는 용도로 쓰인 사례들이 발견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고려에서 조선으로 시대가 바뀌면서 점차 해당 단어의 뜻이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2. 호칭

사위도 자식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사위를 백년손님이라 하여 장인장모도 어렵게 여긴다. 이에 따라 보통 사위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성씨 뒤에 '서방'을 붙여 '김 서방', '이 서방' 하는 식으로 부른다.

남의 사위를 높여 '서랑(壻郞)'이나 '영서(令壻)'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경북에서는 '서군(壻君)'이라고 높여 부른다. 서군이라는 말은 꼭 남의 사위가 아니라 자기 사위에게 '우리 서군' 같은 식으로 쓰기도 한다.

임금의 사위는 '부마(駙馬)'라고 한다. 부마는 본래 중국 한나라 때 설치된 부마도위(駙馬都尉)를 관장하는 관직으로, 부마도위는 황제행차가 있을 때, 황제가 어느 마차에 탔는지 알 수 없도록 운용한 부거(副車)를 관리하던 기관이었는데, 위나라하안에게 부마를 제수(除授)하였던 것이 이후 임금의 사위에게 부마도위를 맡기는 것으로 관례가 되어 임금의 사위는 부마라고 부르게 된다.

부마는 다른 말로 국서(國壻)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나랏님의 사위'라는 뜻이다. 임금의 사위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오늘날에는 대개 여왕부군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조선시대에는 왕자의 부인에게 부부인이나 군부인 등의 작위를 내리면서 앞에 그 사람의 본관이나 본관의 별호를 붙여 수성부부인(隨城府夫人), 연주부부인(連珠府夫人) 하는 식으로 불렀는데, 부마는 위() 자 앞에다가 본관이나 본관의 별호를 붙여 영양위(寧陽尉), 영안위(永安尉) 하는 식으로 불렀다. 또한 조선에서는 부마를 '의빈(儀賓)'이라고도 했는데, '예의를 갖춘 사위 (손님)'이란 뜻이다.

3. 역사

한국의 집안에서는 예로부터 사위를 가깝지만 어려운 대상으로 여기곤 했다. 같은 자식의 배우자라도 며느리와는 정반대의 취급을 받았는데, 며느리는 혼인을 하면 시부모와 한집에 같이 살면서 시집의 일원이 되는 데에 반해 사위는 반대로 이 시집을 가서 그 집 식구가 되는 것이고, 사위는 가끔씩 처가에 들르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시집간 딸은 '출가외인(出家外人)'이라며 남의 집 식구 취급을 했고, 사위는 언제나 손님이었기 때문에 '백년손님'이라는 말이 생겼다.[1]

아무리 딸이 출가외인이라고 해도 딸도 배 아파 낳아 기른 자식이기 때문에 남의 집에 가서 사는 딸이 걱정되는 것은 부모의 인지상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언제나 을의 입장이었고, '딸 가진 죄인'이라는 말도 이런 데에서 나온 것이다. 딸을 데려가 같이 사는 사위에게는 딸을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예를 갖춰 대우했으며, 사위가 처가에 오면 씨암탉도 잡아 준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융숭히 대접했다.

그러나 과거에도 사위가 처가에 가서 사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데릴사위라고 한다. 부여, 고구려, 옥저 등에서는 데릴사위제가 있었는데, 고대 한국은 가부장제모계 사회가 혼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도 이와 비슷하게 서양자(壻養子) 제도가 있었고, 조선 초까지도 이 관습이 유지되었다. 우리가 아는 한국의 전통적인 가부장제는 조선시대에 확립되었으니 생각보다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다. 다만 데릴사위라 하여 사위가 무조건 평생 처가에 사는 것은 아니었고, 평생 처가에 사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몇 년 살다가 시가로 옮겼다.

고대 한국에서 데릴사위를 들였던 것은 농사에 필요한 노동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딸이 많을수록 사위가 많아지니, 어떻게 보면 고대 한국에서는 아들부잣집보다도 딸부잣집이 더 유리했던 것이다. 이때는 지금처럼 며느리가 백년종이 아니라, 사위가 백년종이었던 셈이다. 조선시대에는 대부분 며느리가 시집에 가서 사는 것으로 변화했지만, 김유정1935년소설봄·봄》에도 데릴사위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데릴사위제는 일제강점기까지도 유지되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그 집안에 대를 이을 아들이 없는 경우에 데릴사위를 들이기도 하는데, 일본에서도 이러한 예가 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경우의 데릴사위가 있었으나, 조선시대로 가면서 친척 아이를 양자로 삼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혼례식 후에 신혼부부가 처가에서 하룻밤을 묵고 시가로 갔는데, 이것은 고대 한국의 데릴사위제가 이렇게 형식상으로 남은 것이다. 오늘날에는 결혼식이 끝나면 곧장 신혼여행을 떠나는 식으로 바뀌면서 이러한 관습이 사라졌고, 신혼여행을 갔다 와서도 시가에 먼저 문안을 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원래의 예법을 따르려면 시가보다도 처가에 먼저 가는 것이 맞다.

4. 상세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부장제 관습이 남아서 사위는 가깝고도 먼 사람이다. 명절날 처가에 방문하면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는 말처럼 손님으로 대접을 받기는 하는데, 사위 입장에서도 처가 식구들은 어려운 사이기는 매한가지라,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 없이 처가 식구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고충도 있다. 특히나 장인어른은 사위의 천적이라 할 만큼 어려운 존재라, 장인어른과 단 둘이 남겨지면 어색한 분위기만 감돌게 된다. 이런 이유로 처가에 가기를 꺼려 하는 사위들도 많다.

그렇지만 예로부터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도 있듯이 대부분의 장모는 사위를 따뜻하게 대하여 사위가 친어머니 못지않게 장모를 따르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고부갈등이 있듯이 장서갈등이 있는 집도 있다. '변변치도 못한 놈이 내 딸 데려가서 고생만 시킨다'며 탐탁찮아 하는 처부모도 있고, 사위가 너무 가부장적이라 처부모에게 공손하지 못하다 하여 처부모와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역사적으로도 장서갈등으로부터 비롯한 일화가 많다. 북한김일성은 사위인 장성택을 그렇게나 못마땅해해서 빡세게 굴렸던 인물이다.[2] 처칠 역시 사위를 대단히 미워했다고...[3]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2세는 자기 딸을 거의 도적질하다시피 뺏아간 사위를 매우 증오하여 끝끝내 유럽의 여러 군주들과 함께 다굴을 해서 외딴 섬에 내쫓기도 했고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의 경우에는 사위를 총살하기도 했다.[4]

취미 생활이나 관심사가 비슷해서 마음이 잘 통하는 경우 친자식 이상으로 가까워지는 경우도 있다. 취미가 같거나 하면 하루 종일 낚시를 다닌다던가, 당구를 친다던가, 술을 마신다던가 하면서 오히려 장모랑 아내 속을 썩일 수도 있다. 아 이 양반들은 나갔다 하면 안 들어와!!!!! 여기에 자기 동생까지 합세하면 그야말로 아내 입장에선 처가집이 처가집이 아닌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매체에서도 종종 장인어른의 바둑 친구, 낚시 친구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5] 딸부잣집이거나 외동딸인 경우, 혹은 처남이 나이가 어린 경우 처가에서 아들 노릇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6][7]

5. 여담

우스갯소리로 씨암탉의 천적이라고 한다. 옛날 보통 가정집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면 씨암탉을 잡아 대접하던 관습이 있었다. 가축 중에 가장 만만한게 인데, 씨암탉은 그 닭중에서는 귀한 것이라 돼지나 소와는 달리 큰 부담 없이 정성 어린 고기 접대가 가능했기 때문. 특히 갓 결혼한 부부는 처가에 먼저 가서 한동안 처가살이를 하던 풍습이 있었는데, 사위에게 신혼 첫날에 정력을 북돋아줘서 아들을 만들라는 뜻에서 닭을 잡아주기도 했다.[8][9]

프로레슬러 트리플 H, 배구선수 박철우의 별명이기도 하다.[10]

6. 관련 문서

7. 사위 속성을 보유한 캐릭터


[1] 며느리는 우스갯소리로 '백년종'이라고 칭하기도 한다.[2] 장성택은 그런 김일성 시대에서도 살아남았고 손윗처남인 김정일 시대에서는 오히려 실세 소리를 들을 정도로 사실상 2인자로서의 권력을 누렸지만 처조카인 김정은 시대에는 고모부였음에도 총살당했다. 총살당한 것도 모자라 먼저 죽은 형들의 후손, 누나들과 그 후손들까지 모조리 총살당했다.[3] 그래도 미운정이 들었는지 첫째 사위가 자기 딸하고 이혼할 때는 많이 아쉬워했다고 한다.[4] 다만 이는 사위인 갈레아초 치아노가 자신을 실각시키는데 참여한 배신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또한 무솔리니도 치아노의 사형에 대해선 많이 고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설에 따르면 사형 판결을 취소하려 했으나 실권을 쥔 독일 측에서 거부했다고 한다.[5] 또는 이 경우를 넘어서 장인어른이나 장모님이 사위의 고민을 들어주고 인생 상담까지 해주는 등, 마치 아들을 대하는 것처럼 편하게 대해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특히 사위가 친부모를 일찍 잃었거나 사이가 나쁜 등 의지할 어른이 없을 때 이런 경우가 자주 보인다.[6] 명절에 방문하면 칼 갈아놓고 문짝 고쳐놓는다던가...[7] 백사 이항복장인 권율이 대표적인 아들같은 장서지간. 이항복은 아버지 이몽량을 어려서 잃었고, 권율의 자녀는 이항복에게 출가한 밖에 없었다. 이항복이 처가살이를 했으며, 이항복의 문집 백사집에는 장인 권율에 대한 기록이 종종 등장한다.[8] 실제로 세계 각국의 풍습을 보면 처가에서 갓 결혼한 사위에게 정력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주는 경우가 많다.[9] 정반대의 해석도 있다. 전근대에는 씨암탉을 하도 오랫동안 알 낳는데 써먹다보니 도축될 때쯤 되면 맛도 없고 질겨진 상태인데 사위는 이런 폐계나 대접받는 신세라는 것. 우스갯소리로 사위는 씨암탉 잡아주고 아들은 영계 잡아준다는 말도 있다. 최근에는 워낙 닭 사육두수가 많으니 산란계들이 금방금방 은퇴해 도축되지만 아직도 이런 선입견 때문에 산란계를 기피하는 소비자들도 많다.[10] 트리플 H는 WWE 회장 빈스 맥마흔의 딸 스테파니 맥마흔과 결혼했고 박철우소속팀 감독이었던 신치용의 딸인 전직 농구선수 신혜인과 결혼했다.[11] 일본에서 사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캐릭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