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29 00:43:36

김자원

金字援(1997~)
김자원.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

1. 개요



김처선과 더불어 연산군 시대를 주름잡았던 환관. 하지만 현대의 대접은 전형적인 간신배로서 김처선과는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2. 생애

원래 평민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돗자리 장수였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것은 성종 때로 주로 왕명을 전하는 승전색을 역임했는데 왕의 신임을 믿고 이런저런 비리에 연루되어 여러차례 처벌되기도 했다. 연산군 때 본격적으로 총애를 받아 권세를 휘둘렀으며[1]그의 아버지도 가자되어 관직이 봉해졌는데 이 때도 여러차례 비리에 연루되어 곤장을 맞기도 했다. 중종반정 때 붙잡혀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종실록에 그 이후의 행적[2]이 나와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3. 대중매체에서



[1] 그가 길에 나서면 사람들이 그에게 절을 해야했으며 말을 타고 길을 다니면 장군조차 말에서 내려야 했으며 그가 궁에 들어갈때 모든 관리들이 그에게 고개를 숙였으며 우의정 좌의정조차 그를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라고 했으니 아무리 과장되었다해도 엄청난 걸 알 수가있다[2] 중종 5년에 절을 허가없이 헐어 목재를 훔쳤다고 대비에게 국문을 당하는 내용이 있다.[3] 당시의 이름은 개똥이였다. 집안이 가난하여 입 하나라도 덜기 위해 내시집에 양자로 판 것이다. 이 때 도자장이 바로 쌍라이트 조춘씨이다.[4] 을 꾸다가 환청을 듣고 침전 밖으로 나가서 마구 칼을 휘두른다. 마지막 회에서 볼 수 있다.[5] 장녹수는 연산군의 결심이 오래 가지는 못할 거라고 비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