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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5 12:16:02

한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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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edc89,#670000><colcolor=#670000,#fedc89> 한뢰
韓賴
출생 1140년대[1]
사망 1170년 10월 11일
(음력 의종 24년 8월 30일)
작위 기거주(起居注)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clearfix]

1. 개요

고려 중기의 문신. 무신정변트리거 역할을 한 인물.

의종, 김돈중과 함께 무신정변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장본인으로 유명하다. 좀 더 정확히는 김부식과 앞의 두 명의 3인방이 오랫동안 무신들의 불만을 가중시켜 온 근본적인 원인 제공자라면, 한뢰는 그것을 터뜨리는 방아쇠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학교에서 한국사 시간에 무신정변을 설명할 때 김돈중과 함께 반드시 거론되는 사람이며 학교 한국사 내신 시험 단골 인물이다. 2024년 고1 3월 모의고사 시험지에서도 한뢰가 이소응의 뺨을 때린 사건이 3점짜리 문제로 나왔다.

참고로 2024년 기준으로 무신정변이 일어난지 무려 854년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군대 관련 문제로 후손들에게 부정적으로 언급되는 인물이다.

2. 생애

한뢰의 초기 생애에 대해선 기록으로 전해지는 바가 없는데 한뢰는 문신이 된 후로 내시 정함과 함께 의종의 총애를 받았으며 의종이 문신 우대 정책을 펼침과 동시에 한뢰는 기거주로 있으면서 왕의 총애를 믿고 남에게 거만하고 무관을 멸시하면서 사람들의 노여움을 샀다.

1170년 2월에 의종이 연복정에 행차하자 풍악을 울리면서 뱃놀이를 했으며, 3월에도 뱃놀이를 하면서 연회를 했고, 5월에는 의종이 잔치를 베푼 후에 따로 또 작은 연회를 베풀어 이복기와 그에게 붉은 가죽띠, 물소뿔로 만든 혁대를 하사했다. 이후 7월에도 보현원 남쪽 시내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술판을 벌이고 시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문제의 8월. 의종이 보현원에 행차 도중에 무신들의 오병수박희 대회를 열었다. 이 때 종3품의 대장군 이소응이 지쳐서 나가떨어지자 한뢰가 냅다 이소응의 뺨을 후려쳤고, 그걸 본 문신들과 의종은 왁자지껄하게 웃었다. 아무리 문신이 무신보다 우대받고 있었다 해도 이소응은 정말 무신들의 원로였고 나이도 품계도 한뢰보다 훨씬 높았다. 한마디로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일어나선 안 될 하극상이 일어난 거다.[2]

이에 분노한 정중부가 의종 앞에서 한뢰의 멱살을 잡고"네 이놈 한뢰야! 네가 비록 문관이라고는 하나 이소응 장군은 너보다 연세도 많고 종3품 대장군으로 벼슬도 훨씬 위이거늘 어찌 이딴 짓을 할 수가 있느냐!"라고 일갈하자 의종이 정중부를 말리고 한뢰에 대한 처벌은 어물쩍 넘어가버린다. 어쩌면 이게 무신들의 화를 더 끌어올렸을지도 모른다. 분명 잘못을 저지른 한뢰를 의종이 오히려 두둔한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보현원 사건에서 소수지만 같은 무인들끼리 전투가 벌어진 걸 생각하면, 만약 한뢰의 행패와 의종의 두둔만 아니었어도 몇 시간 뒤 보현원에서 그렇게 많은 병사들이 정변에 가담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다.

결국 그동안 그를 비롯한 여러 문신들의 갑질에 대한 무신들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무신정변이 터지고 문신들이 마구잡이로 학살되는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임종식, 이복기 등도 곧바로 잡혀 죽었는데 한뢰는 도망쳐서 의종에게 가서 무신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보고한 뒤 용상 밑에 숨었다. 이후 한뢰를 쫓던 정중부가 들어와서 왜 반란을 일으켰는지 설명하면서 "그런데 문신이 아직 하나가 남았는데요?"라며 한뢰를 내놓으라고 돌려 말했다. 의종이 모르쇠로 일관하자 그때 의종의 침상에 한뢰가 있는 걸 알아챈 이고가 한뢰를 꺼내서 내동댕이 치고는 죽여버린다.[3]

3.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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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품계를 생각해볼 때 적어도 30대 정도이다.[2] 이게 얼마나 심각하냐면, 현대 우리 국군에 비유했을때 국방부 정책실장이, 그것도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육군 참모총장의 뺨을 때린 것이다.[3] 이 장면은 사극 무인시대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다만 무인시대에서는 이고가 꺼내기만 했고, 이의방이 철퇴로 때려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