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3-31 04:51:38

비무기


<colbgcolor=#008000> 비무기
費無忌
비(費)
무기(無極)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기원전 ?년



1. 개요2. 생애3. 최후

[clearfix]

1. 개요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관리이자 간신.

초평왕의 악행을 부추기고 태자 건을 몰아세워서 오자서가 복수를 결심하는 원인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초나라 전체를 위태롭게 했다.

2. 생애

원래 초평왕의 아들인 태자 건의 소부(少傅)을 맡고 있었다.
태부(太傅)가 바로 오자서의 아버지인 오사였다.

비무기는 태자 건의 소부로서 평왕의 명령을 받고 태자비 간택을 위해 진나라로 향했다.

비무기는 평왕의 측근으로서 권력을 향한 야심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진나라의 공주 맹영이 엄청난 미인인것을 보고 비무기는 평왕에게 진나라 공주가 대단한 미인이므로 공주를 대왕의 후궁으로 삼고 태자에게는 다른 여인을 태자비로 삼는 것이 좋겠다고 평왕을 부추겼다.

그 말을 들은 평왕은 결국 자신의 며느리가 될 공주를 후궁으로 삼는 패륜을 저질렀고, 태자 건에게는 공주를 따라온 시녀를 공주랍시고 태자비로 주었다.

이 사건으로 비무기는 평왕의 측근이 되어 권력을 얻었지만, 후에 평왕이 죽고 태자 건이 즉위 한다면 어떻게 건들 수도 없는 선왕을 대신해서 비무기가 숙청될 것은 당연지사[1]였기에 비무기는 살기 위해서 태자 건과 평왕의 사이를 이간질했다.

그런 비무기의 말에 넘어간 평왕은 태자 건을 변방으로 좌천시키고 나중엔 반란을 빌미로 죽이려고까지 한다.[2]

그 후에 숙청의 칼날은 자연스레 태자 건의 태부였던 오사와 오씨 집안 전체를 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무기는 오씨 집안을 초(楚)나라에서 뿌리뽑는 것에 성공했다.

오자서 한 명을 제외하고.

3. 최후

후에 평왕이 죽고 어린아이였던 초 소왕이 즉위하고, 동시에 여러가지 환란으로 초나라 전체가 흔들리면서 백성들이 간신이였던 비무기를 욕하는 일이 많아졌다.

당시 초나라의 좌사마겸 군 총사령관이었던 심윤술이 당시 초나라의 재상 낭와의 실수를 지적하며 비무기를 죽여야한다고 설득했고, 낭와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 비무기를 죽였다.
[1] 태자 건이 이에 대해 앙심을 품었는지는 미지수이나 정사의 기록에 따르면 적어도 대신 결혼한 그 시녀와 금슬은 상당히 좋았다고 한다. 물론 아니꼬워할 순 있지만 좋은 인연을 만난 입장에서 지나치게 적대했을 거라 보긴 힘들었으니, 비무기는 도둑이 제 발 저린 나머지 오버한 것이다.[2] 태자 건은 음모를 그 전에 눈치채고 정나라로 도망쳤다, 자세한 내용은 오자서 문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