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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고려 의종)


고려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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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6D592><colcolor=#3F6864>
고려 의종의 후궁
무비 | 無比
생몰년 미상
본관 미상
이름 무비(無比)
부모 미상
배우자 의종
자녀 3남 9녀[1]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clearfix]

1. 개요

고려 의종의 후궁. 기록이 많지 않아 성씨와 생몰연도 등을 알 수가 없다.

2. 생애

생전 무비로 불렸으며, 정식 후궁은 아니었다. 무비(無比)의 원래는 '비할데 없이 뛰어나다.'는 뜻으로 이로 미루어 재색(才色)이 뛰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사》종실열전에 기록되지 못했고, 의종 세가와 윤인첨의 제신열전에 짧게 기록되어 있다.

원래 남경(南京)의 관비(官婢)이었다가 왕의 눈에 들어 총애를 받았다. 무비와 가장 가까웠던 인물은 환관 백선연(白善淵)으로, 백선연은 남경의 관노(官奴) 출신으로 의종이 남경에 갔을 때 보고 데려와 ‘양자(養子)’라 부르며 총애했던 인물이었다. 무비와 같은 남경 출신으로 둘이 자주 친하게 지내 무비와 백선연 두 사람이 간통을 한다는 소문도 났을 정도였다. 이에 좌정언(左正言)[2] 문극겸은 이들이 추잡한 행동을 하고 술사(術士)인 영의(榮儀)와 미신으로 왕을 유혹해 재물을 낭비한다며 백선연과 무비를 죽이라고 상소하였다가 좌천되기도 했다.

의종실록을 적은 고려시대의 사관(史官) 김양경(金良鏡)은 의종 패망의 원인을 불교와 귀신 숭배, 아첨하는 신하와 간사한 내시 및 술사, 그리고 무비를 지목하고 있다. 즉 무비가 안에서 일을 주관하며 감언이설로 왕의 비위를 맞춰 조정에 충만하고 충직한 말을 들을 수 없어 변란이 일어났다고 쓰고 있다.

무신정변이 일어나자 무비는 개경 근처에 있는 청교역(靑郊驛)으로 도망가서 숨었다. 이를 정중부가 알고 잡아 죽이려 했지만, 공예태후가 간청하여 죽음을 면하고 왕을 따라 거제도로 갔다. 이후 3년 뒤 의종은 시해되었는데, 무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에 없다.

의종과의 사이에서 무려 3남 9녀를 낳았다. 이들 역시《고려사》 종실열전에 오르지 못해 이름과 생애를 알 수 없다. 딸 하나는 윤인첨의 제신열전에서만 짧막하게 언급되는데, 무비의 딸과 혼인한 최광균[3]이 무비 덕에 갑자기 출세하여 많은 사대부들이 이를 갈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3. 대중매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무비(무인시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딸 중 하나는 최사위의 후손인 최함(崔諴)의 3남 충주목부사(忠州牧副使) 최광균(崔光鈞)과 혼인하였다.[2] 정사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게 왕에게 간(諫)하던 벼슬로 조선시대 대사간과 같은 역할이다.[3] 최사위의 후손인 최함(崔諴)의 3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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