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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16 08:52:34

신비 염씨


고려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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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愼妃 廉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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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의 5비. 본관은 파주 염씨.

서원(현재의 경기도 파주시) 출생이며 부친은 염제신, 모친은 진한국대부인 안동 권씨이다.

2. 생애

공민왕의 1비 노국대장공주가 1365년 난산으로 사망한 뒤 후비인 혜비 이씨, 정비 안씨, 익비 한씨가 후사를 잇지 못하자 1371년(공민왕 20년) 후사를 보기 위해 여러 권문세족의 딸 중 그녀가 간택되어 그해 음력 11월 28일 입궁하였다.

공민왕과의 사이에 자녀는 없으며, 1372년 공민왕의 지시로 벌어진 이른바 자제위 공민왕 후비 강간사건에서 끝까지 이를 거부한 세 사람 중 한 명이다.

2년 뒤, 1374년 남편 공민왕이 시해당하자 그 직후 출궁하여 정업원으로 들어가 비구니로서 삶을 살아가게 되나 1388년 무진피화 당시 친정일가가 숙청당할 때도 일단 살아남아 공상 대신 세록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