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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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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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 <colbgcolor=#fff,#191919>경기도 파주시 | ||
도시조 | 염형명(廉邢明) | ||
중시조 | 염제신(廉悌臣) | ||
인구 | 69,387명(2015년) | ||
웹사이트 | 파주염씨 인터넷족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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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기도 파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2. 역사
두 번 본관을 옮긴 경력이 있다. 고려 개국 개국 공신인 염형명(廉邢明)[1]이 시조이며 고려 공민왕 때 곡성부원군에 봉해진 염제신(廉悌臣)을 기세조로 한다.청학집에 인용된 문헌인 삼한습유기에 의하면 한국의 염씨(廉氏)는 본래 대방국(황해도 일대)에서 기원했다고 하고 있다. 시조 염형명의 출생지이자 가문의 본관인 파주는 옛 대방군의 영향권이던 경기 북부 지역이므로 어느정도 신뢰성이 있는 이야기이긴 하다. 그리고 대방 지역은 신라가 삼국 통일하기 이전에는 본래 고구려 영토였으므로 이에 따르면 파주 염씨는 고구려 유민 계통의 성씨가 된다.[2] 기본적으로 왕건의 지지기반이었던 패서 호족들은 고구려 유민 의식이 강했다고 알려져있다.
시조 염형명 이래로 파주 염씨는 고려 개국공신 가문의 영광을 누리던 유명한 귀족집안이였으며, 고려 시대에 문과 급제자 7명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지는 과도기 시기, 고려에 대한 충정을 버리지 않아 이후 조선 조정 내의 입지가 좁아져 조선사 전반부에는 고려 때와는 달리 왕실 문서에서 파주 염씨 인물을 찾기 힘들어졌다.[3] 다시 조선 정부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건 임진왜란 당시 평민 의병장으로 활동한 염걸과 염서 등이 그 공훈을 조정에서 인정받아 활로가 트였을 때부터이다.
그 뒤 인물로는 조선 후기 철종의 어머니인 용성부대부인 염씨[4]가 있다. 이렇듯 고려 때 융성하다가 한번 몰락하고 조선 후기에야 다시 가세가 살아나서 그런지 조선왕실에서도 파주염씨는 고려의 귀족으로 의식한 기록이 매우 많다.각종 무과 장둔들과 대광보국 의정부영의정 염성화, 염상임 이조판서, 염호관 고종당시 궁내부주사, 대한제국 시절 중추관 의관이던 염인식은 소설가 염상섭의 조부이기도 하다. 이처럼 중기 이후에는 다시 사대부 양반의 명성을 찾아갔다.
국내 인구는 2015년 기준 69,387명, 성씨 기준 61위이다. 표기에 따라서 엄씨, 발음에 따라서 연씨와 헷갈릴 수도 있는 성이기도 하다. 전국적으로 인구분포가 다른성씨에 비해 지역별(제주도 제외)로 매우 고른편인 성씨다.
3. 계파
- 중시조 : 염제신(廉悌臣)
- 국파공파(菊坡公派) : 염국보(廉國寶)
- 동정공파(東亭公派) : 염흥방(廉興邦)
- 청강공파(淸江公派) : 염정수(廉廷秀)
4. 인물
이름 | 생몰년도 | 파 | 비고 |
20세(洙/永) | |||
염수정(洙政) | 1943 ~ | 국파공파-세구-덕순 | 종교인 |
22세(燮/烈/焞) | |||
염상섭(想燮) | 1897 ~ 1963 | 동정공파-희남-상보 | 소설가 |
염경엽(京燁) | 1968 ~ | 국파공파-세경-유서 | 야구인 |
23세(圭/基/思) | |||
염아란(雅蘭) | 1996 ~ | 국파공파-세경-유서 | 배우 |
24세(善/鎬/鈺) | |||
염광호(光鎬) | 1985 ~ | 국파공파-세범-덕모 | 배우, 작가, 가수 |
[1] 고려 왕조의 공신 중 1인으로 그 공적을 인정받아 정식으로 성과 본관을 받은 인물 중 한 명이다. 이때 봉해진 자리는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같은 공신 중 7명밖에 없는 2등 개국공신으로 염상(廉湘/廉相)이라는 인물도 있었다.[2] 원삼국시대 마한 염사(廉斯)의 우거수(右渠帥)였던 염사치(廉斯鑡)가 낙랑군에 귀화한 사건이 있었는데 염씨의 시조가 바로 그 염사치였다고 보기도 한다. 염사치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보통 본명이 아닌 염사의 군장을 뜻하는 칭호로 추정한다. 염사는 보통 현 충청남도 서산시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나 귀화하러 가던 중 진한을 거쳤기 때문에 염사가 변한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3] 이 때문인지 조선시대초기에는 문과 급제자가 별로없다. 그러나 조선중기부터는 여러인물을 배출하면서 다시 지방호족. 고려귀족. 신진사대부의 명성을 되찾았다.[4] 본관은 용담(龍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