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고려 덕종의 제2비 경목현비 | 敬穆賢妃 | |||
출생 | 연대 미상 | ||
왕가도의 사가 | |||
사망 | 연대 미상 | ||
능묘 | 미상 | ||
재위기간 | 고려 현비 | ||
1031년 10월 20일 ~ 1034년 10월 31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본관 | 부계 청주 이씨 → 사성 개성 왕씨 모계 김씨 | |
부모 | 부친 개성현 개국공 왕가도 (開城縣 開國公 王可道) 모친 개성군부인 김씨 (開城郡夫人 金氏) | ||
형재자매 | |||
배우자 | 덕종 | ||
자녀 |
| ||
종교 | 불교 | ||
거처 | 미상 | ||
작호 | 현비(賢妃) | ||
시호 | 경목현비(敬穆賢妃)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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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덕종의 제2비. 고려의 공신 왕가도의 딸이다.2. 생애
사실 경목현비는 덕종의 제1비였지만 서열에서 밀렸다.[3] 심지어 제3비인 효사왕후보다도 서열이 높으나 품계는 그보다 낮은데 여기엔 조금 복잡한 이유가 있다. 왕족인 경성왕후, 효사왕후와 달리 아버지인 왕가도가 문벌귀족이었기 때문이다.같은 왕씨라 혼동하기 쉬우나 왕가도는 원래 청주 이씨 사람으로 본명은 '이자림'이었으나, 김훈·최질의 난을 진압하는 공을 세워 현종으로부터 국성인 왕씨를 사성[4]받았다. 후에 왕가도가 정계에서 은퇴하면서 입지가 흔들렸기 때문에 품계가 더 올라가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