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滋
(?~1308)
1. 개요
고려 시대의 왕족으로 충렬왕과 정화궁주 소생의 왕자다. 작위는 강양공(江陽公). 충렬왕의 적장자이면서 서장자[1].2. 상세
본래 정화궁주가 충렬왕의 제1비였으나 1274년 혼인한 제국대장공주가 제1비가 되고 정화궁주가 제2비로 물러나면서, 충렬왕의 적장자였던 왕자도 하루아침에 서자로 전락하여 왕위 계승 순위에서 밀려났다. 왕자가 세자로 책봉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2] 충렬왕 5년인 1279년부터 충청도 아주의 동심사(東深寺)에 보내졌다가 4년 뒤 환속해 강양공에 봉해진다. 왕자 본인은 아버지 충렬왕의 재위가 끝나기 직전인 1308년 4월에 죽었고, 제국대장공주의 아들인 이복동생 충선왕이 고려 왕위를 이었다. 사후 1391년 공양왕에 의해 정강공(靖康公)의 시호가 추증된다.아내는 사서에서 안비(安妃)라고 호칭되며[3], 아들로 왕후(王珛), 왕고(王暠), 왕훈(王塤)이 있다. 왕후는 단양부원대군에 봉해진다. 왕고는 충선왕으로부터 심왕 작위를 상속받아 2대 심왕을 지낸다. 왕훈은 연덕부원대군에 봉해진다.
[1] 적장자이면서 서장자라는 해괴한 경우가 된 경위는 아래에 서술.[2] 훗날 충선왕으로 즉위하는 이복동생 왕장은 1277년에 이미 세자로 책봉됐다.[3] 심왕으로서의 충선왕이 왕고를 세자로 삼았기 때문에, 그 어머니 역시 충선왕의 후궁에 상당하는 예우를 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