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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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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廣陵君 世子 王鑑
(? ~ 1310)

고려의 왕세자. 충선왕과 의비(懿妃) 야속진(也速眞)의 장남으로, 충숙왕의 친형이다. 이름은 왕감(王鑑).

2. 생애

할머니 제국대장공주에 이어, 어머니 의비도 몽골인이다. 의비는 제1비인 계국대장공주와 달리 황족 출신은 아니지만, 그래도 몽골인이라는 이유로 고려인 여성들을 제치고 제2비가 되었다. 충선왕은 계국대장공주와 사이가 나빴고, 계국대장공주와의 사이에서는 자녀가 없었기에, 충선왕과 몽골인 여성 야속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이 왕위를 이어받게 된다.

광릉군의 어린 시절 이름은 '왕의충(王宜忠)'이었다.[1] 부왕 충선왕이 즉위한 1298년 5월 영가군승선사(永嘉軍承宣使)에 임명됐다. 동생 역시 5살의 어린 나이에 강릉군승선사로 임명됐다. 그런데 충선왕은 즉위한 이 해에 폐위당했고, 광릉군의 할아버지인 충렬왕이 복위했다. 동생은 1299년 강릉군, 강릉대군 작위를 받았는데, 왕감이 광릉군(廣陵君) 작위를 받은 것 역시 같은 시점이었을 것이다.

고려사』에는 1305년 11월 충렬왕원나라에 가는데 손자 '광평공'과 '강릉후', 그리고 한희유 왕유소 등 신하들이 호종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광평공은 광릉군을, 강릉후는 충숙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광릉(廣陵)을 광평(廣平)이라고 적은 경우는 이뿐이 아니다.[2]

충선왕이 복위한 뒤 어느 날, '광평군(廣平君)'과 강릉군이 내전에서 충선왕을 모시고 있는데, 충선왕이 박전지를 내전으로 부른 뒤 묻는다.
누가 나라에 마땅한 자인가?[3]
두 왕자가 뻔히 듣고 있는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으니, 박전지는 황송해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충선왕은 대답을 강요했다. 박전지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자리를 피하며 말했다.
두 군의 필적(筆蹟)을 뵈오면 아군(亞君, 강릉군)이 벽(璧)에 합당합니다.[4]
벽이란 옥새의 재료로 임금을 상징하니, 박전지는 임금이 될 자격이 광평군이 아니라 강릉군에게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에서 언급된 광평군 역시 강릉군(충숙왕)의 동복형 광릉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광릉군은 결국 세자로 책봉됐다. 그리고 그 아버지 충선왕이나 할아버지 충렬왕이 그랬듯, 세자는 즉위하기 전까지 일종의 질자로서 대도에서 머물렀을 것이다. 자기 대신 세자가 원나라에 있는 것이 불안했는지, 1310년 1월 1일 충선왕이 원나라에서 고려로 돌아가는 길에서 세자에게 양위하려고 해 소동이 일기도 했다. 충선왕은 양학사(楊學士)에게 세자에게 양위하는 표문을 짓게 했는데, 시종하던 신하들이 반대한 끝에 양위 시도를 중지했다.

1310년 5월 29일, 원나라에 있던 세자는 아버지 충선왕에 의해 살해되었다. 세자를 시종하던 김의중(金義重) 역시 세자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 세자의 시신은 고려로 이송되어 후에 개경의 성 남쪽에 장사되었다. 생년은 알 수 없으나 죽었을 때에 20세가 채 되지 않았을 것이며, 본인은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대도에 머물면서 만나지도 않은 고려에 있던 사람들이 꾸민 짓들 때문에 희생되었으니, 어처구니 없는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왕감을 이렇게 이유 없이 죽이는 바람에, 가뜩이나 귀한 고려 왕통이 결국 끊기는 데에 크게 공헌하게 된다.
[1] 친동생 충숙왕의 어린 시절 이름은 '왕의효(王宜孝)'였다.[2] 광릉은 양주(현재의 서울특별시), 광평은 성주군의 별호인데, 처음 받은 관직 영가군승선사의 영가가 현재의 안동시를 지칭하는 표현임을 감안하면 광평 쪽이 옳은 듯하다. 참고로 안동시와 성주군은 적모 계국대장공주가 그녀의 시어머니이자 고모할머니인 제국대장공주로부터 물려받은 탕목읍.[3] 誰享國者?[4] 觀兩君筆蹟, 亞君當璧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