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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3-08 08:19:16

훈민정음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이 문자의 현재 이름에 대한 내용은 한글 문서를, 삼성전자의 워드프로세서에 대한 내용은 훈민정음(오피스)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세종어제 훈민정음.jpg

1. 개요2. 서문3. 관련 서적4. 여담5. 관련 문서6. 대중매체에서

1. 개요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于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訓民正音》.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를 모방하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이어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쉽고 요약하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
세종실록 세종 25년(1443) 12월 30일 기사#[1]
훈민정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훈민정음이 가리키는 대상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1443년 12월에 세종대왕이 만든 한국어의 표기체계, 즉 오늘날의 한글을 당대에 부르던 말이고, 두 번째는 1446년 9월[2]에 발간된 책이다. 여기서는 후자, 즉 '훈민정음'이라는 책을 설명한다.

2. 서문

여기에서 충남대학교 언어학과 김차균 교수의 발음으로 전기 중세 국어음에 해당하는 재구음을 들을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소리를 낸 것 같다고 추측한 것이지 실제로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다.
파일:attachment/hunminjeongeum.jpg
원문:

나랏〮말〯ᄊᆞ미〮
ᄃ\ᅲᇰ귁〮에〮달아〮
ᄍᆞᆼ〮와〮로〮서르ᄉᆞᄆᆞᆺ디〮아니〮ᄒᆞᆯᄊᆡ〮
이〮런젼ᄎᆞ〮로〮어린〮百ᄇᆡᆨ〮ᄉ\ᅧᇰ〮이〮니르고〮져〮ᄒ\ᅩᇙ〮배〮이셔〮도〮
ᄆᆞᄎᆞᆷ〮내〯제ᄠᅳ〮들〮시러〮펴디〮몯〯ᄒᆞᇙ노〮미〮하니〮라〮
내〮이〮ᄅᆞᆯ〮為윙〮ᄒᆞ〮야〮어〯엿비〮너겨〮
새〮로〮스〮믈〮여듧〮字ᄍᆞᆼ〮ᄅᆞᆯ〮ᄆᆡᇰᄀᆞ〮노니〮
사〯ᄅᆞᆷ마〯다〮ᄒᆡ〯ᅇᅧ〮수〯ᄫᅵ〮니겨〮날〮로〮ᄡᅮ〮메〮便ᅙᅡᆫ킈〮ᄒᆞ고〮져〮ᄒᆞᇙᄯᆞᄅᆞ미〮니라〮
[방점제거판]
– 《훈민정음 언해본》 서문
현대어: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한문·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 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中ᄃ\ᅲᇰ國귁은皇ᅘᅪᇰ겨신나라히니우리나랏常ᄊ\ᅣᇰ애江ᄀ\ᅡᇰ이라ᄒᆞᄂᆞ니라
(중국은 황제 계신 나라이니 우리나라 상담으로 강남이라 하느니라)

3. 관련 서적

3.1. 해례본

훈민정음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발음기호 등 문자 창제 과정을 종합해 기록한 책이다. 자세한 내용은 훈민정음 해례본 참조.

원문과 해석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3.2. 언해본

파일:external/img.hani.co.kr/120045918840_20080117.jpg
파일:external/cfs12.blog.daum.net/4844cdcd017e4&filename=%EC%8A%A4%EC%BA%940001.jpg

세조 때 발간된 《월인석보》의 권두에 세종대왕의 서문, 본문(예의)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는 '한문(+현토)+언해'의 방식으로 쓰여 있다. 이것이 '언해본'이며,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나랏말싸미…'도 여기서 나왔다. 이를 훈민정음 언해본이라고 부른다. 현재 전해지는 것 중 가장 오래된 판본은 1459년 간행된 《월인석보》에 붙어있는 것이며, 이외의 언해본으로 2종(박승빈 본, 일본 궁내청 소장본)이 더 현전하지만 내용상의 차이는 없다.

그런데 사실 위 두 그림 중 아래 그림이 실제 《월인석보》에 실린 내용이고 원본의 전체를 보고 싶다면 여기로. 위의 그림은 창제 당시의 것으로 예상되는 모습을 국어사학회에서 디지털 기술로 재구한 것이다. 관련 기사. 서울대 김주원 교수의 저서 《훈민정음》(2013)에도 관련 서술이 나온다. 두 그림을 비교해 보면 일단 제목이 《훈민정음》과 《세종어제 훈민정음》으로 각각 다르다. 또한 아래의 《월인석보》에 실린 언해 부분[11]의 첫 네 줄은 같은 책 다른 대목의 언해 부분과 글자체나 글자 간격 등이 상당히 다르다. 전자가 뭔가 더 각진 글씨인 데다 글자를 욱여넣은 듯한 모습. 여타 대목에서는 한 줄에 작은 글자 16자가 들어가지만 첫 네 행에서만은 20자까지 들어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세조 시대에 《월인석보》가 발간되었으므로 선대 왕의 시호인 '세종'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글자 수가 늘어났기에 목판을 수정했기 때문이다. 즉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그냥 《훈민정음》이라는 제목을 단 채로 위 그림과 같이 가지런한 언해가 붙었을 것이지만 세조 시대에 발간된 《월인석보》에 실린 《훈민정음》에는 '세종어제'라는 말을 추가하면서 언해 부분에도 글자를 추가로 욱여넣었던 것. 사실 '세종' 등의 묘호는 해당 임금의 사후에야 붙었으므로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 쓰인 책에 '세종어제'라는 말이 쓰였을 리 만무하다.

2012년 10월 9일 한글날에 네이버에서 디지타이징 버전으로 무료 공개한 버전은 국어사학회에서 재구한 위 버전이 아닌 《월인석보》에 실린 모습인 아래 버전이다. 보러 가기

3.3. 실록본

《훈민정음》은 《세종실록》에도 수록되었다. 해례본에는 실려 있는 '해례'와 '정인지 서문'을 제외한 '세종 서문', '본문(예의)'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를 실록본이라고 따로 칭하기도 한다.

4. 여담

5. 관련 문서

6. 대중매체에서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태종의 죽음으로 극이 끝난 관계로 직접 등장하지는 않았으나 충녕대군이 이미 문자 창제에 뜻을 가지고 당시 세자였던 양녕대군에게 '소제가 문자를 창제하면 형님의 치세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식으로 언급된다.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는 극 최후반부의 중요 사건으로 등장하는데, 실제 역사에서는 반대 상소 한 장 올리고 말았던 최만리가 유생들을 동원한다거나 수양대군을 꼬드겨 세종 대신 옹립하려 한다거나 명나라 환관들이 창제를 저지하기 위해 암약한다거나 장영실과 최해산이 기여한다거나[14] 하는 등 역사상 사실과 까마득히 거리가 먼 장면들이 수두룩하게 나왔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세종이 새 글자의 이름을 짓기 위해 고심하다가 民音訓正(민음훈정 : 백성의 소리를 새김이 마땅하다)을 쓴 후 아나그램을 시도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개그 콘서트 위대한 유산 코너의 황현희가 등장할 때마다 언해본을 읊는데 "이런 젼차로~니르고져"를 건너뛰어버리고 "홇배이셔도"를 많이 반복한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는 세종과 문종의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실제 기계로 고안해낸 장영실이 명나라의 기술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명나라 사신에 의해 압송되자 세종이 자신이 탈 장영실이 만든 안여(임금이 타는 가마)에 하자를 내어 안여가 뒤집히는 사고를 유발한다. 이후 명나라에 죄인 장영실을 직접 문초하겠다고 알리고 사면하려는데, 한글 창제를 반대하는 권신들이 문자 제작을 그만두면 장영실의 사면에 힘을 실어주겠다고 권한다. 결국 장영실은 자신이 훈민정음 반포의 걸림돌이 될 것을 알고 자청하여 곤장 100대를 맞고 이후 역사에서 모습을 감추고 4년 후 훈민정음이 반포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1] 음력 12월 30일이 훈민정음이 완성된 날이 아니다. 실록 기록도 분명히 '이 달'이라고 적었다. 원래 조선왕조실록 같은 편년체 사서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난 정확한 날짜를 모르면 그 달의 마지막 날이나 그 해의 마지막 달, 어느 왕의 재위기 마지막 해에 기록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2] 반포일 기준 1446년 9월 상한(10일) → 양력 환산 → 1446년 10월 9일[3] 대만의 표준 자형인 국자표준자체에서도 為를 표준 자형으로 삼았다.[방점제거판] 世솅宗조ᇰ御ᅌᅥᆼ製졩訓훈民민正져ᇰ音ᅙᅳᆷ나랏말ᄊᆞ미中듀ᇰ國귁에달아文문字ᄍᆞᆼ와로서르ᄉᆞᄆᆞᆺ디아니ᄒᆞᆯᄊᆡ이런젼ᄎᆞ로어린百ᄇᆡᆨ姓셔ᇰ이니르고져호ᇙ배이셔도ᄆᆞᄎᆞᆷ내제ᄠᅳ들시러펴디몯ᄒᆞᇙ노미하니라내이ᄅᆞᆯ為윙ᄒᆞ야어엿비너겨새로스믈여듧字ᄍᆞᆼᄅᆞᆯᄆᆡᇰᄀᆞ노니사ᄅᆞᆷ마다ᄒᆡᅇᅧ수ᄫᅵ니겨날로ᄡᅮ메便뼌安ᅙᅡᆫ킈ᄒᆞ고져ᄒᆞᇙᄯᆞᄅᆞ미니라[5] 이 '얻어'도 한문 부분의 '할 수 있다'라 뜻을 가진 得(얻을 득)을 직역한 것이다.[6] 사실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中国이란 표현이 무수히 등장하며, 그 표현 역시 明이나 清을 의미한다.[7] 사실 이런 주장의 원조는 중국을 폄하하는 일본인 지식인들이다. 한 예로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2002년 5월에 번역된 일본인 작가 오카다 히데히로의 저서인 <세계사의 탄생>에서는 1911년 중화민국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중국이라는 개념이나 단어가 없었다는 잘못된 주장을 버젓이 적었다. 물론 이는 엄연히 틀린 주장인데, 중국이라는 단어는 이미 춘추전국시대에 나왔으며, 중국이라는 개념도 빠르면 진시황의 중국 통일이나 늦어도 한무제의 시기에 가면 등장하기 때문이다.[8] 흔히 말하는 '중원(中原)'의 다른 표현이 바로 '중국'이었다고 이해하면 된다. 또는 '중화(中華)의 나라[國\]', '세상의 중심(中心)이 되는 나라[國\]'라는 의미로 '중국'이라 부른 것으로 이해해도 된다. 놀랍게도 기원전부터 중화왕조국가를 칭하여 중국이라 불렸다.[9] (若新羅以一意事中國(약신라이일의사중국) : 신라 같은 나라는 한 뜻으로 중국을 섬겨) : 삼국사기 제5권 중)[10] '중국사'라고 해서 중화민국이나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만 배우는 것이 아니듯.[11] 한 줄에 우리말 작은 글자로 두 행을 써 넣은 부분[12] 쉽게 설명하자면 한국 역사에서 근대 이전, 그러니까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및 뉴라이트의 주장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까지 포함해서)의 모든 역사를 부정적으로 폄하하려는 성향이다. 이영훈 "세종부터 시작해 한국사 12개 우상 깰 것" 좌파 운동권과 뉴라이트가 정치적 성향이 정반대임에도 불구하고 근대 이전 한국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대체로 비슷한 것도 원래 그들은 탈민족주의에 기반한 좌파 진영이라는 한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13] 통역교재인데 훈민정음으로 당시 조선과 관계하던 외국들의 언어와 음가, 사용법과 회화 등이 적혀 있다.[14] 이 와중에 최해산은 명 환관들에게 해를 입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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