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11:22:49

내전기(율리우스 카이사르)

[[고대 로마|
파일:Capitoline_Wolf_of_Roman_Kingdom.svg.png파일:투명.png파일:로마 제국 깃발.svg파일:투명.png파일:라바룸.svg
로마
관련 문서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A00201><colcolor=#FAE572> 체제 고대 로마 (로마 왕국 · 로마 공화국 · 로마 제국) · 서로마 제국 · 동로마 제국 · 니케아 제국
역사 로마 왕국 · 로마 공화국 · 로마 제국/역사 · 동로마 제국/역사
분할국 갈리아 제국 · 팔미라 제국
잔존국 귀네드 왕국 · 수아송 왕국 · 알타바 왕국 · 트라페준타 제국 · 이피로스 전제군주국 · 테오도로 공국 · 모레아 전제군주국
상징 SPQR · 아퀼라 · 파스케스 · 크리스토그램 · 보주 · 쌍두수리
정치 고대 로마의 정치제도 · 로마 국왕 · 집정관 · 독재관 · 감찰관 · 법무관 · 조영관 · 프라이펙투스 우르비 · 원로원 · 쿠리아 민회 · 쿠르수스 호노룸 · 켄투리아회 · 평민회 · 트리부스회 · 파트리키 · 플레브스 · 노빌레스 · 노부스 호모 · 푸블리카니 · 포테스타스 · 시빌라 예언서 · 성산 사건 · 옵티마테스 · 포풀라레스 · 루카 회담 · 삼두정치 · 로마 황제 · 카이사르(칭호) · 아우구스투스(칭호) · 기원전 23년 로마 헌정위기 · 피소 음모 · 네 명의 집정관 사건 · 사두정치 · 337년 콘스탄티누스 황족 학살 사건 · 동로마 제국/작위 및 관직 · 녹색당과 청색당 · 바실레프스 · 포르피로게니투스 · 데스포티스
법률 로마법 · 로마 시민권 · 해방노예 · 모스 마이오룸 · 십이표법 · 호르텐시우스 법 · 원로원 최종 권고 · 클리엔텔라 · 라티푼디움 · 밀라노 칙령 · 테살로니카 칙령 · 로마법 대전 · 금인 칙서
군사 로마군 · 글라디우스 · 필룸 · 스파타 · 스쿠툼 · 파르마 · 케트라투스 · 펠타스트 · 마니풀라 · 레기온 · 켄투리오 · 프라이토리아니 · 하스타티 · 벨리테스 · 프린키페스 · 트리아리 · 임페리움 · 임페라토르 · 에퀴테스 · 기병장관 · 레가투스 · 트리부누스 밀리툼 · 트리부스회 · 테스투도 · 스폴리아 오피마 · 10분의 1형 · 로리카 · 마리우스의 군제개혁 · 팔라티나 · 코미타텐세스 · 리미타네이 · 동로마군 · 테마 제도 (군관구) · 프로니아 제도 · 타그마 · 불사 부대 · 바르다리오타이 · 아르콘토풀레 · 에테리아 · 바랑인 친위대 · 투르코폴레스 · 그리스의 불
행정구역 수도 (로마 · 콘스탄티노폴리스) · 분할 수도 (니코메디아 · 메디올라눔 · 라벤나) · 고대 로마/지방행정 · 속주 · 라벤나 총독부 · 아프리카 총독부 · 테마 제도 (군관구) · 프로니아 제도
종교 로마 신화 · 아우구르 · 플라멘 · 폰티펙스 막시무스 · 베스타
미트라 · 마니교
기독교 · 마르키온파 · 아담파 · 도나투스파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기독교 박해 · 밀라노 칙령 · 총대주교 (펜타르키아: 교황 ·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 안티오키아 총대주교 · 예루살렘 총대주교) · 제1차 니케아 공의회 · 아리우스파 · 테살로니카 칙령 · 테오도시우스의 이교 박해 ·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 에페소 공의회 · 네스토리우스파 · 칼케돈 공의회 · 단성론 · 아카키오스 분열 ·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 퀴니섹스툼 공의회· 제2차 니케아 공의회 · 성상 파괴주의 · 포티오스 분열 ·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 헤시카즘 · 호람딘 · 동서 대분열 · 가톨릭 · 정교회 · 아르세니오스 분열
문화 라틴어 (민중 라틴어) · 코이네 그리스어 · 로마 미술 · 비잔틴 미술 · 네오비잔틴 · 로마력 · 율리우스력 · 우주력 · 로마식 작명법 (가족성) · 라틴 축제 · 루디 로마니 · 사투르날리아 · 루페르칼리아 · 고대 로마/성문화 · 빵과 서커스 · 검투사 · 세스타스 · 전차경주 · 개선식 · 로마 인빅타 · 가룸
문헌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 갈리아 전기 · 내전기 · 파불라 · 아이네이스 · 변신 이야기 · 신약성경 · 박물지 · 게르만족의 기원과 위치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비블리오테케 · 명상록 ·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 군사학 논고 · 수다 · 제국의 통치에 관하여 · 알렉시아스
건축 경기장 (아레나 \[베로나 아레나] · 콜로세움 · 키르쿠스 막시무스) · 궁전 (팔라티노 황궁 · 펠릭스 로물리아나) · 동상 (바를레타의 거상) · 로마 가도 (아피아 가도 · 플라미니아 가도) · 무덤 (아우구스투스 영묘) · 성벽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 하드리아누스 방벽 · 안토니누스 방벽) · 성채 (산탄젤로 성) · 수도교 · 인술라 · 종교 시설 (성묘교회 · 아야 소피아 · 판테온) · 포룸 (포로 로마노)
도시 유적: 다라 · 두가 · 두라 에우로포스 · 렙티스 마그나 · 마다우로스 · 마크타르 · 메리다 · 베트셰안 · 부스라 · 불라 레기아 · 사브라타 · 샤흐바 · 셀축 · 셰르셸 · 수사 · 수페툴라 · 시데 · 아스펜도스 · 아파메아 · 아프로디시아스 · 안티오키아 · 엘젬 · 엘케프 · 우티카 · 움카이스 · 제라시 · 제밀라 · 카나와트 · 카이사레아 · 크산투스 · 테베사 · 티파자 · 팀가드 · 폼페이
경제 데나리우스 · 세스테르티우스 · 아우레우스 · 솔리두스
외교 로마 제국-중국 관계 · 동로마 제국/외교
정체성 로마인 · 동로마 제국/정체성 · 제3의 로마
창작물 동로마 제국/창작물 }}}}}}}}}

#!wiki style="margin: -1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00201, #a00201 20%, #a00201 80%, #800201)"{{{#!wiki style="margin:-10px"<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a00201><tablebgcolor=#a00201> 파일:카이사르 투명.svgCAIVS IVLIVS CAESAR
율리우스 카이사르

관련 문서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생애 · 평가 · 대중매체
가족관계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8b0000>가족아버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 어머니 아우렐리아 코타 · 고모부 가이우스 마리우스 · 첫째 아내 코르넬리아 킨나 · 둘째 아내 폼페이아 술라 · 셋째 아내 칼푸르니아 · 딸 율리아 · 양아들 옥타비아누스 · 사생아 카이사리온
전투
<colbgcolor=#fff,#1f2023>일레르다 전투 · 디라키움 공방전 · 파르살루스 전투 · 알렉산드리아 전쟁 · 젤라 전투 · 탑수스 전투 · 문다 전투 · 코르도바 공방전
대외 전쟁 갈리아 전쟁
휘하 군단 3군단 갈리카 · 4군단 마케도니카 · 5군단 알라우다에 · 6군단 페라타 · 7군단 클라우디아 · 8군단 갈리카 · 9군단 히스파나 · 10군단 에퀴스트리스 · 11군단 클라우디아 · 12군단 빅트리스 · 13군단 게미나 · 14군단 게미나
관련 기록 갈리아 전기 · 내전기
기타
정책 삼두정치,(로마 공화정의 삼두정치), · 독재관
사건 · 사고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사건
기타 율리우스력 · 카이사르(칭호),(차르 · 카이저),
}}}}}}}}} ||

Commentarii de Bello Civili(라틴어)
라틴어 원문

1. 개요2. 내용3. 평가4. 번역본5. 여담

1. 개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9년 루비콘 강을 건넌 이후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가 이끄는 원로원 세력과 벌인 내전의 경과를 다루고 있는 책. 카이사르 본인이 직접 저술했다.[1] 갈리아 전기와 함께 카이사르의 양대 저작으로 유명하다.

2. 내용

내전의 자세한 진행과정에 대해서는 카이사르의 내전 항목을 참고하자.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2] 각 권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삼자가 아니라 내란의 참가자, 그것도 한 쪽 진영을 이끈 지도자가 쓴 글이니 철두철미하게 주관적인 글이다. 우선, 내전에 앞서 루비콘 강 도하 직전까지 원로원을 무대로 벌어졌던 카이사르가 이끄는 민중파와 폼페이우스가 이끄는 원로원파 사이의 정치적 암투를 서술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당연히 카이사르는 자기 자신을 원로원의 정치적 음모에 의해 발목이 잡혀 어쩔 수 없이 루비콘 강을 도하하게 된 희생자로 묘사하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독자들에게 부각시킨다.

또한 상대 진영의 우두머리인 폼페이우스는 대차게 비난한다. 폼페이우스가 원로원 파로 갈아탄 것을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쟁에서 거둔 막대한 성과에 대해 질투심을 느꼈기 때문이라 묘사한 것은 기본이고 내전 초기에 유리한 지역[3]을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갖고 있었음에도 전략적인 식견이 부족해서 자멸했다는 언급도 있다. 뭐 어느 정도는 사실이긴 하다...

그렇다고 폼페이우스를 절대악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니어서 폼페이우스가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패배하고 망명한 이집트 왕국에서 파라오와 그의 신료들에게 배신당하여 암살당한 사건을 놓고는 폼페이우스를 살해한 자들의 잔혹함과 비도덕성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다.[4]

3. 평가

과장이 아니라 기원전 1세기 로마에서 나온 최고의 사료이자 산문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최고의 산문일 수밖에 없는 것이 문장력 하면 로마 시대 전체를 통틀어서 키케로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양반인데다가 카이사르의 내전을 다룬 1차 사료가 본인의 이 책이나 키케로의 서간 몇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무한 상황인지라 최고의 사료일 수밖에 없다.다만 갈리아 전쟁기와 달리 군사적인 행동과 그 근거에 대한 서술이 책 속에서 꽤나 빈약한 것을 아쉬워하는 역사가들도 무척 많다.

어찌보자면 이는 그럴수밖에 없는게 이민족, 외적과의 싸움이었던 갈리아 전쟁과는 달리 이건 동족과의 내전을 기록한 글이기에 모든 걸 있는 그대로 털어놓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꽤 상당했을 것이다. 즉 내용 전체가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지만 진실을 얘기한 것도 아닌 것으로 판단될 수도 있는 것. 그래서 일부 현대 사학자들은 이 책의 내용 하나하나가 다 교묘하게 카이사르에게 유리하게 왜곡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뭐 진실은 저 너머 저승에 있는 카이사르만이 알 듯...

4. 번역본

범우사에서 출판된 박광순 역의 '카이사르 내란기'와 사이에서 출판된 김한영 역의 '카이사르의 내전기'가 있다. 번역의 질은 김한영 역이 평이 좋으나 박광순 역은 내전기에서 이어지는 알렉산드리아 전기, 북아프리카 전기, 히스파니아 전기까지 모두 번역되어 카이사르가 치른 전투를 1차 사료로 모두 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카이사르의 저작 번역중 라틴어 원문 번역으로 가장 번역의 정확성이 높은 천병희 역은 '갈리아 원정기'만 번역된걸 보면 세 가지 번역본은 양과 질에서 각기 장단점이 존재한다 볼 수 있다.

5. 여담


[1] 클레오파트라와 나일강 여행을 하는 와중에 지었다.[2] 당시에는 오늘과 같은 디자인의 책이라는 개념은 로마시대에는 없었다. 둘둘 말린 두루마리 형태가 그들이 부르는 책이었다. 이 두루마리가 총 세개로 나뉘어서 출판된 셈[3] 경제적으로 풍족한 그리스, 아나톨리아 및 인적자원이 풍부한 히스파니아 등등.[4] 실제로 이집트 측에서 폼페이우스를 살해한 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손 치더라도, 정치적·도의적으로는 결코 용납되기 힘든 만행이었다. 비록 비참한 패장 신세가 되었다곤 하나 정치적으로 엄연히 로마의 전직 집정관이었으며, 도의적으로도 이집트 왕가는 폼페이우스에게 빚이 있었다. 그렇게 비겁하게 초법적으로 살해하는 것은, 아무리 폼페이우스가 정적이라곤 하나 카이사르 입장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일단 폼페이우스의 죽음에 대한 묘사는 담담하고 건조하게 '죽음을 알았다'라고 사실만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분노했을 것이다. 드라마 ROME에서도 폼페이우스를 죽인 것을 잘한 일인양 떠벌이는 이집트 왕가에게 카이사르가 그야말로 대노하는 모습이 묘사된다.[5]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적은 병력으로 몇배나 많은 폼페이우스의 병력을 포위하려고 했다. 결국 포위전은 실패로 끝났고 카이사르는 도주할 수밖에 없었다.[6] 소 카토가 이 전쟁 패배 이후 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