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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어 | Xanthos - Letoon | ||
영어 | Xanthos-Letoon | ||
프랑스어 | Xanthos-Letoon | ||
국가·위치 | [[튀르키예| ]][[틀:국기| ]][[틀:국기| ]] 무을라 안탈리아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지정번호 | 484 | ||
등재연도 | 1988년 | ||
등재기준 | (ⅱ)[1], (ⅲ)[2] | }}} |
로마식 극장
바실리카 및 모자이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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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튀르키예어 Ksantos리키아어 𐊀𐊕𐊑𐊏𐊀
그리스어 Ξάνθος
라틴어 Xanthus
영어 Xanthos
튀르키예 남서부의 고대 도시. 크산토스, 아르나로도 알려져 있다. 페티예 동남쪽, 에셴 강 하류 동안의 언덕에 위치한다. 지명은 그리스 신화에서 아킬레우스의 전차를 끌던 신마 크산토스에서 유래되었다. 과거 리키아 지방의 중심 도시로, 고대 시기 번영했으나 중세의 전란으로 버려졌다. 1988년 인근의 종교 도시 레툰 (레토)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고대 로마식 극장, 동로마 시기 바실리카 유적 등이 남아있다. 영국박물관에 전시 중인 아르비나스, 파야바 영묘 역시 여기서 출토된 것이다.
2. 역사
유적 전반부
인근 산지의 절벽 무덤
기원전 8세기 경에 아크로폴리스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었다.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기원전 540년, 하르파고스가 북쪽의 평지에서 리키아 군을 격파하고 패잔병들이 철수한 아크로폴리스를 포위했다 한다. 패색이 짙어지자 리키아 병사들은 성채를 파괴, 처자식 및 노예들을 죽인 후 페르시아 군에 최후의 돌격을 하여 전멸했다고 전한다. 이후 아케메네스 제국의 번국이 들어섰고, 기원전 516년 크산토스는 다리우스 1세의 조공 목록에서 첫 순서에 기록되었다.
리키아 문자로 새겨진 크산토스 오벨리스크 | 아르비나스 (에르빈나) 왕의 부조 |
알렉산드로스 3세가 테멜레소스 (페티예)에서 남하하자 리키아 연맹의 도시들은 항복했고, 알렉산드로스는 크산토스 강가에서 그리스가 페르시아 제국을 파괴할 것이라는 예언이 적힌 동판을 발견했다. 디아도코이 시기 일대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령이 되었다가, 기원전 1세기 로마 제국령 리키아 속주에 편성되었다. 기원전 42년,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가 리키아로 와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 맞설 자금 마련에 나섰다. 리키아 연맹이 납부를 거부하자, 브루투스는 크산토스를 포위해 함락하였다. 이번에도 수비대는 성채에 방화하였고, 150명만이 살아남았다 전한다.
도시는 이듬해 필리피 전투에서 브루투스를 격파한 안토니우스에 의해 재건되었다. 로마식 사각꼴 도시로 재건된 크산토스에는 서쪽에 회랑을 갖춘 넓은 광장이 들어섰고, 3중 회랑을 갖춘 바실리카도 세워졌다. 아크로폴리스에는 고급 저택들이 들어섰다. 역사가 스트라보는 리키아의 최대 도시로 묘사했다. 3세기 들어 기독교가 전래되며 크산토스에는 대성당으로 전환된 바실리카를 포함해 여러 교회가 세워졌고, 크산투폴리스 주교구가 설치되었다. 6세기 무렵 대지진으로 건물 다수가 파괴되었지만, 곧 재건되었다. 7-8세기 들어 크산토스는 아랍 세력의 침공에 맞서 요새화되었지만, 11세기 무렵 파괴되어 버려졌다.
3. 발굴
1838년 영국의 찰스 펠로우스 경이 발굴하여 리키아 석관 등의 유물들을 영국으로 이송, 현재 영국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1950년대부터는 대대적인 발굴이 이루어졌다.
3.1. 아르비나스 영묘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모습
원래 영묘의 기단부
네레이드 기념물로도 불리며, 기원전 390년경 리키아의 군주 아르나스 (에르빈나)의 무덤으로 세워졌다. 키루스 2세 무덤과 같은 조로아스터교의 기단부를 둔 영묘 양식에 그리스식 부조와 기둥을 더한 형식으로, 마우솔로스 영묘의 모델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천년간 크산토스의 랜드마크로 있다가, 6세기경 지진으로 붕괴한 후 19세기 찰스 펠로우스 경이 발굴하여 기단부를 제외한 모든 부조와 잔해들은 영국으로 옮겨져 복원된 후 현재 대영박물관에 전시중이다.
3.2. 비석형 무덤
아크로폴리스의 키베르니스 (하르피) 영묘 (우)와 석관
대영박물관의 파야바 영묘 | 키베르니스 영묘와 미상의 석관 |
- 키베르니스 (하르피) 영묘
살라미스 해전에 참전, 부상이 도져 사망한 리키아의 사트라프 키베르니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480년경에 조성되었으며 기단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내부 부조들은 대영박물관에 전시 중.
- 파야바 영묘
기원전 360년경 리키아의 군주 파야바의 영묘. 상부의 톱니바퀴 조각은 인도의 아잔타 석굴, 로마스 리시 석굴 등지에서 유사한 것이 발견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