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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톨레마이오스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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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왕조 (힉소스 왕조)
기원전 1650년 ~ 기원전 1550년
제15왕조 (힉소스 왕조)
기원전 1650년 ~ 기원전 15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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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550년 ~ 기원전 1292년
제19왕조
기원전 1292년 ~ 기원전 11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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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중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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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왕조 (타니스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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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왕조 (부바스티스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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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80년 ~ 기원전 343년
페르시아 제국
제31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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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05년 ~ 기원전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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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톨레마이오스 왕조
Δυναστεία των Πτολεμαίων
Αἴγυπτος[1]
파일:15183.png
기원전 240년경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최대 강역.[2]
기원전 305년 ~ 기원전 30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헬레니즘 제국 로마 공화국
위치 북아프리카, 이집트
수도 알렉산드리아
국가 원수 파라오
정치 체제 전제군주제, 제정일치
주요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1세
프톨레마이오스 3세
클레오파트라 7세
프톨레마이오스 15세
종교 그리스 다신교
이집트 다신교
유대교
민족 그리스인, 이집트인
인구 490만 ~ 750만 명 (기원전 150년)
언어 코이네 그리스어 (국어), 민중 이집트어, 아람어
통화 드라크마(Τετράδραχμο)
언어별 명칭
한국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라틴어 Regnum Ptolemaicum
그리스어 Δυναστεία των Πτολεμαίων
코이네 그리스어 Πτολεμαϊκὴ βασιλεία
영어 Ptolemaic dynasty
히브리어 מצרים התלמיית
아랍어 المملكة البطلمية
1. 개요2. 역사3. 정치/사회4. 문화5. 역대 군주6. 대중매체

[clearfix]

1. 개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사망한 기원전 323년부터 기원전 30년까지 이집트를 지배한 마케도니아 왕조.[3]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측근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창건했으며, 마지막 왕인 클레오파트라 7세 때까지 약 300년 가까이 존속했다. 시조인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의 아버지인 라고스의 이름을 따서 라고스 왕조(Lagid Dynasty), 또는 고대 이집트를 통치한 역대 왕조 중 하나로써 '고대 이집트 제32왕조'라고도 부른다.

국력이 강성할 때는 키레나이카를 비롯한 동부 리비아, 누비아, 팔레스타인, 아나톨리아 남쪽 해안을 차지하여 명실상부한 동부 지중해의 지배자였다. 수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나일 델타 지역에 건설한 신도시 알렉산드리아에 뒀다. 알렉산드리아는 프롤레마이오스 왕조는 경제, 학술,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로 육성하여 고대 세계에서 가장 번영하는 대도시가 되었고, 그 번영은 이후 로마 제국 때도 이어졌다.

하지만 라이벌셀레우코스 왕조와의 잦은 전쟁, 정복 왕조라는 특성에서 비롯된 소수의 이민족 특권 계급의 지배와 그로 인한 피지배 계급의 이반 때문에 군사력이 급속히 쇠약해져갔다. 결국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다가 로마 제국(당시에는 공화정)의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정복당하면서 수천년간 이어져온 고대 이집트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다. 즉, 유럽인에 의해 세워지고 유럽인에 의해 무너진 것이다.

이집트의 역사에서 군주가 '파라오'라는 칭호를 쓴 마지막 왕조이기도 하다. 클레오파트라 7세의 죽음으로 이집트를 공식적으로 지배하게 된 로마 황제들을 비롯해 사산 왕조, 여러 이슬람 제국으로 대표되는 이슬람 계통의 국가들, 이집트를 보호령으로 삼은 대영제국까지 이후로 이집트를 지배했던 국가의 지배자들은 파라오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다.

여담으로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7세가 낳은 딸 클레오파트라 셀레네 2세마우레타니아 왕국유바 2세와 결혼해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프톨레마이오스를 통해 왕조의 방계가 이어졌다.

2.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역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필라이 이집트 2.jpg
이시스를 모셨던 필라에 신전의 전경.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 지어졌다.

3. 정치/사회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셀레우코스 왕조박트리아 같은 다른 헬레니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소수의 그리스-마케도니아 엘리트와 군대가 다수의 바르바로이를 지배하는 통치 구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세부적인 양상은 꽤 달랐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차지한 이집트는 폐쇄적인 지형과 더불어 기원전 305년 당시를 기준으로 해도 수천 년에 이르는 오랜 역사와 전통 문화를 가진 땅이었다. 게다가 이집트의 전통적 지배 계급인 사제 계급은 직전 왕조인 아케메네스 왕조의 관용 정책 덕택에 존속하여 토착 사회에서 막강한 권위를 유지하였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Ptolemy_VI_Philometor_ring.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Ring_with_engraved_portrait_of_Ptolemy_VI_Philometor_%283rd%E2%80%932nd_century_BCE%29_-_2009.jpg
두 금판 모두 프톨레마이오스 6세 필로메토르를 묘사한 것이다. 전자는 헬레니즘 지도자로서의 모습, 후자는 이집트 파라오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성공적인 통치를 위해 토착 문화와 종교를 우호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의 신들에게 경배하고 거대한 신전들을 지어 주며 사제 계급과도 손을 잡았다. 대중 앞에 나설 때는 항상 고대 파라오들의 복식을 갖추었으며, 심지어 전통에 따라 프톨레마이오스 2세 이후 모든 왕들이 누이들과 근친혼을 했다.[4] 하지만 그들은 그리스-마케도니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 바르바로이와 그 문화에 대한 거부감까지 완전히 떨쳐 버리지는 못했다.

왕조의 수도 알렉산드리아는 결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불리지 않았다. 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인의 것이었고 그들은 알렉산드리아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라고 불리기보다 '이집트 옆의 알렉산드리아'라고 불리기를 택했다. 그리스인들은 이집트의 오랜 역사와 문화는 존중했으나 이집트인은 경멸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평생 이집트인에 대해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그 몇 안 되는 언급 중 하나가 바로 이집트인은 강도와 같다는 평이었다.

상용문자는 이집트 문자가 아니라 그리스 문자였고, 정부 정책도 대부분 이집트인에게 굴복을 강요하는 식이었다. 그리스 혈통의 유입이 줄어들어도 그들은 여전히 그리스 문화를 고수했다. 그리스 문화와 전통을 보존하기 위한 기관이 존재했는데, 이는 이집트인을 배제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또한 역대 왕들 중 토착 이집트어를 할 줄 알았던 사람이 클레오파트라 7세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그러한 단면을 보여준다. 아마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이집트의 전통 중 가장 철저히 모방했던 것은 예속민 착취였을 것이다.

예로부터 이집트는 비옥하고 풍요롭기로 유명한 땅이었고, 지중해 동부 일대를 장악하여 엄격한 국가 통제 아래 교역도 활발히 했으므로 부유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지경이었다. 재무장관의 지위가 높아 재무장관이 곧 재상이었다. 수도 알렉산드리아는 서반구 최대의 대도시이자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유명한 알렉산드리아의 대도서관이 있는 만큼 학술과 예술, 헬레니즘 문화의 메카이기도 했다. 그리스-마케도니아인들은 왕조 내내 소수 특권계급으로 남았으나, 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 거주하며 이집트인들과 통혼하여 혼혈 집단을 만들기도 했고, 헬레니즘식 교육을 받은 토착 이집트인들도 늘어났다.

또한 안정적인 통치를 위해 그리스-마케도니아 군인들에게 각지의 땅을 주어 정착시켜서 예비 군사력으로 삼았다. 셀레우코스 왕조 항목에도 나오지만 이런 정착 군인들을 카토이코이(Katoikoi) 혹은 클레루코이(Klerouchoi)라고 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군대의 주력인 팔랑기타이로 복무했다. 그리스의 유입 인구가 줄어들자 그 대신 갈라티아켈트 병사들과 같은 여러 용병들을 적극 유치, 정착시켰다.

클레루코이들과 마찬가지로 땅을 주어 정착시켰는데, 그 땅(파윰 분지)엔 아직도 켈트 혈통의 후손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한 재원은 이집트 농민들을 가혹하게 착취하여 충당했다. 심지어 이집트 현지인이나 이집트 혼혈들은 마키모이란 별개의 군단으로 편성되어 전열도 다르게 배치하고 봉급도 용병의 10분의 1에서 20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차별받았다. 당시 군대에 대한 인식이 시민으로서의 특권이었음을 감안하면, 이집트 혈통은 피가 섞였단 사실만으로도 대등한 대우를 받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왕조에 유입되는 그리스인 인구가 거의 단절되고 용병 고용에도 한계가 찾아오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군사력은 급속히 기울기 시작했다. 거기에 셀레우코스 왕조와의 시도때도 없는 전쟁은 그 한정된 병력 자원마저 빠르게 소모시켰다. 나중에는 도저히 군사력을 유지하지 못하여 라피아 전투 때처럼 이집트 병사들을 대거 훈련시키거나 이집트인들을 클레루코이에 받아들이는 등 시도도 있었지만, 이미 불신과 반발심이 팽배하여 그다지 좋은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만약 승리한다면 승리에 공을 세운 이집트 병사들이 그 대가를 요구하고, 이를 그냥 받아들여 주면 그리스-마케도니아인들의 배타적 권력 독점에 차질이 생긴다. 실제로 라피아 전투에서 팔랑크스의 주력이 된 이집트 병사들이 분전하여 승리를 거뒀지만, 승전 후 독립을 주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바로 상술한 "20년에 걸친 반란"의 원인이다.

시작부터 피지배층과 유리되길 선택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실은 강력한 군사력이 사라지자 빠르게 통치력을 상실했다. 왕조 말기의 내분과 암투, 곳곳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착취는 이러한 상황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클레오파트라가 등장하기 수십 년 전부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이미 시한부 선고를 받은 말기 환자나 다름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물론 망하는 그 순간까지도 막대한 부를 갖고 있었지만, 그것이 생명연장의 꿈을 이뤄주지는 못했다.

4. 문화

시리아에서 셀레우코스 왕조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집트의 역사에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가장 큰 의의는 찬란한 헬레니즘 문화를 길러내고 정착시켰다는 점이다. 이 헬레니즘 문화는 이집트의 풍요로움에 힘입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막장이 되는 와중에도 계속 번영하여 로마 제국 시대까지 이어졌고, 덕분에 동로마 제국 초창기 제국의 중심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슬람의 발흥 이후 중세 이슬람 세계의 찬란한 번영 역시 헬레니즘 문화를 그 근간으로 한 것이다.

이집트 고대 문자 해석의 단서로 유명해진 로제타 석이 만들어진 것이 이 왕조 시대이다. 왕조 특성상 이집트 문자와 함께 그리스 문자를 기록하였는데, 그 덕택에 이집트 문자 해석의 결정적인 돌파구가 생긴 것이다. 또 행정과 기록을 위해 대량의 파피루스가 사용되었는데, 후대에도 남은 것이 많아 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중부 이집트, 특히 파윰 지방엔 파피루스 조각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미라의 관을 채우기 위해 재활용된 것인데, 주로 하급 관료들의 휴지통으로 들어간 공문서들이다. 공식 서한, 청원서, 소환장, 증언 녹취록, 재판 기록 등등 많은 기록들이 남아 있다. 단 그리스어 파피루스가 3만여 개인데 이집트 민용 문자는 2천 개에 불과하므로 이 기록들만 가지고 이집트의 행정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상당히 복잡하고 발전된 행정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달리 말하면 이집트인들을 더욱 효율적으로 착취했다는 소리도 된다.[5] 상술했다시피 교역도 엄격한 국가 통제하에 두려고 노력했는데, 결과적으로 교역의 수익은 대부분 왕조에 바치는 세금으로 귀결되었다. 그나마 셀레우코스 왕조는 동방 지역에 많은 도시들을 건설하거나 자치권을 주기라도 했지만,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이집트에서 그야말로 세금만 바득바득 긁어갔다.

5. 역대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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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왕조 제후티 소베크호테프 8세 네페르호테프 3세 멘투호테피 네비리라우 1세 네비리라우 2세 세멘레 베비앙크 세켐레 셰드와스트 데두모세 1세 데두모세 2세 몬투엠사프 메란크흐레 멘투호테프 세누스레트 4세 페피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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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왕조 세트나크테 람세스 3세 람세스 4세 람세스 5세 람세스 6세 람세스 7세 람세스 8세 람세스 9세 람세스 10세 람세스 1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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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왕조 셰숑크 1세 오소르콘 1세 셰숑크 2세 타켈로트 1세 오소르콘 2세 셰숑크 3세 셰숑크 4세 파미 셰숑크 5세 오소르콘 4세
제23왕조 하르시에세 A 타켈로트 2세 페디바스테트 1세 셰숑크 6세 오소르콘 3세 타켈로트 3세 루다멘 이니
제24왕조 테프나크트 바켄레네프
제25왕조 피이 셰비쿠 샤바카 타하르카 타누타멘
제26왕조 네코 1세 프삼티크 1세 네코 2세 프삼티크 2세 와히브레 아흐모세 2세 프삼티크 3세
제27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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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왕조 아미르타이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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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뒤의 숫자는 후대 역사가들이 임의로 붙인 것이다. 당대에는 프톨레마이오스 다음에 오는 별명으로 구분했다. 별명의 뜻은 비고 란의 큰따옴표를 참고.
이름 재위 기간 배우자 비고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 기원전 305 - 기원전 285 베레니케 1세[6] "구원자"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 기원전 285 - 기원전 246 아르시노에 2세[7] "형제를 사랑하는 자"
프톨레마이오스 3세 에우에르게테스 기원전 246 - 기원전 221 베레니케 2세 "후원자"
프톨레마이오스 4세 필로파토르 기원전 221 - 기원전 203 아르시노에 3세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
프톨레마이오스 5세 에피파네스 기원전 203 - 기원전 181 클레오파트라 1세 "신의 현신"
프톨레마이오스 6세 필로메토르 기원전 181 - 기원전 164 클레오파트라 2세 "어머니를 사랑하는 자" 1차 재위
프톨레마이오스 8세 에우에르게테스 2세 기원전 170 - 기원전 163 - 1차 재위, 형과 내분
프톨레마이오스 6세 필로메토르 기원전 163 - 기원전 145 클레오파트라 2세 2차 재위
프톨레마이오스 7세 네오스 필로파토르[8]
프톨레마이오스 8세 에우에르게테스 2세 기원전 145 - 기원전 116 클레오파트라 2세[9] 2차 재위
클레오파트라 2세 기원전 131 - 기원전 127
클레오파트라 3세 기원전 116 - 기원전 101 공동 통치[10]
프톨레마이오스 9세 라티로스(소테르 2세) 기원전 116 - 기원전 107(기원전 88 - 기원전 81) 클레오파트라 4세[11]
프톨레마이오스 10세 알렉산드로스 1세 기원전 107 - 기원전 88 베레니케 3세
베레니케 3세 기원전 81 - 80[12]
프톨레마이오스 11세 알렉산드로스 2세 기원전 80 베레니케 3세[13]
프톨레마이오스 12세 네오스 디오뉘소스(아울레테스) 기원전 80 - 기원전 58 클레오파트라 5세  
베레니케 4세 기원전 58 - 기원전 55 공동 통치[14]  
프톨레마이오스 12세 네오스 디오뉘소스(아울레테스) 기원전 55 - 기원전 51
클레오파트라 7세 필로파토르 기원전 51 - 기원전 30 공동 통치[15] 해당 항목 참고

특이하게도 프톨레마이오스 2세와 아르시노에 2세를 시작으로 부부가 대부분 공동 통치를 했다.

역사가들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왕들의 흉상들을 보고 유전적으로 갑상선기능항진증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많은 흉상이 눈이 돌출되어 있고 목이 두꺼운 편인데, 이것은 다 갑상선기능항진증의 증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대 왕들은 대부분 다 살이 찐 편으로 보이는데, 갑상선기능항진증이 있는 사람들은 살이 잘 안 찌기 때문에 논란이 있는 편이다.

6. 대중매체

6.1. 게임

6.1.1. 토탈 워 시리즈

정식 명칭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이나 게임에서는 쉽게 기억하기 위함인지 프톨레마이오스가 아닌 이집트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전부 로마 시대가 배경인 작품에서만 등장했다. 기본적으로 나일강의 범람하는 특성때문에 내정은 강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1] 코이네 그리스어로 에귑토스, 즉 이집트.[2] 실선 부분은 클레오파트라 7세 즉위 직전까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쇠락하면서 잃어버린 영토들이다.[3] 프톨레메오스 왕조라고도 읽는다. 코이네 발음에선 ai가 ㅐ로 발음되는 현상이 있다. 당대에 쓰이던게 코이네 발음인 것을 고려하면, 오히려 이쪽이 맞는 발음이겠으나 관용적으로 프톨레마이오스라는 고전 발음이 쓰이고 있다.[4] 이 때문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말기의 왕들은 유전적 문제가 생겨 대개 허약하고 단명했으며 자손을 많이 남기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 왕조 말기는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혼란과 암투의 연속으로 제 명에 죽기 힘든 환경이었던 탓에 속단하기는 어렵다.[5] 파라오가 이집트의 모든 것을 소유한다는 전통 아래에서 인민의 착취는 매우 당연한 것이었다.[6] 네번째 부인. 첫번째 부인은 타이스, 두번째 부인은 페르시아 귀족인 아르타카마, 세번째 부인은 디아도코이 중 하나인 안티파트로스의 딸인 에우뤼디케.[7] 두번째 부인이자 누이. 근친혼 전통의 시작이다. 첫번째 부인인 아르시노에 1세는 디아도코이 중 하나인 뤼시마코스의 딸이며 프톨레마이오스 3세의 친어머니이기도 하지만 이혼당했다.[8] 프톨레마이오스 6세의 어린 아들. 위에도 나오지만 삼촌인 프톨레마이오스 8세에게 살해당했다.[9] 나중에 프톨레마이오스 6세와 클레오파트라 2세의 딸, 즉 조카인 클레오파트라 3세와 결혼했다. 기원전 131년 클레오파트라 2세가 반란을 일으켜 프톨레마이오스 8세를 알렉산드리아에서 추방하나, 기원전 127년 프톨레마이오스 8세에 의해 클레오파트라2세가 실각하고 시리아로 망명하게 된다. 기원전 124년 프톨레마이오스 8세와 클레오파트라 2세는 화해한다.[10] 기원전 116-기원전 107년까지는 큰아들 프톨레마이오스 9세, 기원전 107-기원전 101년까지는 작은아들 프톨레마이오스 10세[11] 기원전 115년 클레오파트라 셀레네 1세와 재혼[12] 아버지가 죽고 재혼 전까지 단독 통치[13] 결혼하고 며칠 뒤 살해했으나 며칠 못 가 그도 살해당했다.[14] 클레오파트라 6세(기원전 58 - 기원전 57)[15] 프톨레마이오스 13세 테오스 필로파토르(기원전 51 - 기원전 47), 아르시노에 4세(기원전 48 - 기원전 47), 프톨레마이오스 14세(기원전 47 - 기원전 44), 프톨레마이오스 15세(기원전 44 - 기원전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