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고왕국 제6왕조 4대 파라오 메렌레 넴티엠사프 1세 Merenre Nemtyemsaf I | ||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휘 | 메렌레 넴티엠사프(Merenre Nemtyemsaf)[1] | |
부왕 | 페피 1세 | |
선대 | 페피 1세 | |
후대 | 페피 2세 | |
묘지 | 메렌레의 피라미드 | |
왕비 | 앙케센페피 2세(Ankhesenpepi II) | |
자녀 | 앙케센페피 3세(Ankhesenpepi III)♀ 이푸트 2세(Iput II)♀ 페피 2세(Pepi II)♂[추정] | |
재위 | 이집트 파라오 | |
기원전 23세기 초 재위기간 6~7년 혹은 9~1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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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렌레 1세는 이집트 고왕국 제6왕조의 네 번째 파라오로, 기원전 23세기 초반에 약 6~11년간 재위하였다. 전임 파라오 페피 1세와 왕비 앙케센페피 1세(Ankhesenpepi I)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후계자는 페피 2세이다. 페피 1세는 재위 말기에 메렌레와 공동 통치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메렌레 1세의 통치 기간 동안 지방 행정 체계가 변하면서, 지방 귀족들이 세금 징수와 자원 관리 책임을 지게 되어 정치적 독립성과 경제적 권한이 커졌다. 이로 인해 주요 지방 관리들이 피라미드 주변이 아닌 자신이 일하던 지방에 매장되는 풍습이 생겼다. 메렌레는 누비아와의 무역 및 채석을 위해 수로를 파는 등의 사업을 진행했으며, 남부 및 동부 사막 지역에서 화강암과 석회암을 채석하였다.
사카라에 위치한 메렌레의 피라미드는 카 네페르 메렌레(Kha nefer Merenre)라 불리며, 피라미드 내부에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묘실의 검은 현무암 석관에서 발견된 미라는 메렌레의 것으로 추정되나 확실하지 않다. 메렌레는 사후에도 장례 의식의 대상이 되었으며, 신왕국 시대에도 일부 파라오에 의해 숭배되었다.
2. 가계
메렌레 1세는 페피 1세와 왕비 앙케센페피 1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앙케센페피 1세는 아비도스의 노마치 쿠이(Khui)와 그의 아내 네베트(Nebet)의 딸이다. 메렌레 1세의 고모이자 페피 1세의 왕비였던 앙케센페피 2세는 메렌레 1세와 재혼하여 페피 2세를 낳았다.[3] 페피 2세의 아버지로는 일반적으로 페피 1세가 지목되지만, 몇몇 학자들은 메렌레가 페피 2세의 아버지일 가능성을 주장한다. 메렌레 1세는 최소 한 명의 딸인 앙케센페피 3세(Ankhesenpepi III)를 두었으며, 그녀는 페피 2세의 왕비가 되었다.3. 통치
메렌레 1세는 피라미드 단지와 그의 이름이 새겨진 여러 유물 및 비문을 통해 고고학적으로 잘 입증되어 있다. 메렌레 1세는 페피 1세에 이어 즉위하였으며, 페피 2세가 뒤를 이은 6왕조의 네 번째 파라오로 확인된다. 메렌레 1새의 즉위 초기에는 페피 1세와의 공동 통치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나, 명확한 증거는 부족하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지방 행정은 크게 개편되었으며, 지방 관리의 수가 증가하고 중앙 행정의 규모는 또다시 줄어들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지방 귀족의 권한과 자치권이 크게 강화되었으며, 이로 인해 지방관 및 고위 관리들이 피라미드 주변에 매장되지 않고 지방에 매장하는 풍습이 시작되었다. 외교 활동으로는 동부 사막과 레반트, 누비아 지역에 대한 원정 및 무역 활동이 있었다. 특히 누비아에서는 메렌레 1세가 지역 부족장들의 복종을 받는 장면이 비석에 묘사되어 있다.4. 대외 활동
메렌레 1세의 외교 활동은 동부 사막지대, 레반트, 누비아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와디 하마마트(Wadi Hammamat)로 최소 한 번 이상의 원정을 보내 사암과 혈암을 채취하였다. 메렌레 1세는 이 원정으로 대형 암석을 운반해 자신의 피라미드에 사용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레반트와의 무역 및 외교는 비블로스와 가나안 지역을 포함하여 진행되었으며, 무역품으로는 청금석, 은, 역청, 주석 등이 있었다. 누비아 지역에서는 귀중품 확보를 위해 여러 차례 원정이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현지 부족들의 복종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메렌레 1세 시기에는 무역로를 이용해 수백 마리의 당나귀로 물품을 운반하였으며, 메렌레 1세는 엘레판티네 섬에서 누비아 족장들의 복종을 받았다는 기록도 남겨져 있다.5. 피라미드
이름 | 카 네페르 메렌레(Kha nefer Merenre) |
뜻 | 메렌레의 완벽함이 나타난다 |
높이 | 52.6m |
경사 | 52° |
장례 신전은 피라미드 북쪽에 위치하며, 사원 내부 복도의 석회암 바닥에는 신들이 파라오를 환영하는 장면을 묘사한 부조들이 남아 있다.
6. 유산
메렌레 1세는 제5왕조와 제6왕조의 다른 파라오들처럼 공식적으로 국가가 후원하는 장례 의식이 시행됐으며, 피라미드 단지에서 의식이 진행되었다. 제6왕조 중반에 지방 노마치들이 이러한 의식의 감독관을 맡았으며, 이러한 감독관으로는 카르(Qar)[5], 게기(Gegi)[6], 헤카입(Heqaib)[7] 등이 있었다. 페피 2세는 메렌레 피라미드 도시의 주민들을 조세와 부역에서 면제하는 칙령을 내리기도 했다.메렌레의 장례 의식은 제1중간기까지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으며, 제6왕조 후기에도 의식은 지방에서 소규모로 하는 것으로 지속되었다. 중왕국 초기에는 히에라콘폴리스에서 페피 1세와 메렌레 1세의 청동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메렌레의 의식이 계속 유지되었음을 시사한다. 신왕국 시대에는 카르나크 파라오 목록에 메렌레의 카르투슈가 포함되어 있어 왕조의 선조로서 숭배받았다.
[1] 뜻은 "라의 사랑을 받는 자, 넴티는 그의 보호자이다."라는 뜻이다.[추정] [3] 다만 이는 확실하지는 않다.[4] 사실 이러한 근친상간은 과거 왕조 국가에서는 흔한 일이였다. 왕조 구성원끼리 결혼을 하면 왕조의 권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5] 에드푸 지역의 노마치[6] 티니스 지역의 노마치[7] 상이집트 지역의 노마치. 최초의 상이집트 지역의 노마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