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6-11 17:11:15

멘투호테프 2세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DB76B 0%, #DECD87 20%, #DECD87 80%, #BDB76B);"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A0522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하이집트 <colbgcolor=#fff,#1f2023>헤주호르 니호르 흐세큐 카유 티우 테시 네헵 와즈너 하트호르 니네이스 | 메크 더블팔콘 워시
상이집트 | 핑거 스네일 피시 엘리펀트 스톡 전갈왕 1세 크로커다일 아이리 호르 전갈왕 2세 나르메르 메네스
제1왕조 나르메르 메네스 호르아하 제르 제트 메르네이트 아네지브 세메르케트 카아 스네페르카 호루스 바
제2왕조 헤텝세켐위 네브라 니네체르 누브네페르 호루스 사 웨네그 와제네스 세네지 세트 페리브센 세케리브 페렌마아트 네페르카레 1세 네페르카소카르 후제파 카세켐위
제3왕조 조세르 세켐케트 사나크테 네브카 카바 세제스 카하제트 후니
제4왕조 스네프루 쿠푸 제데프레 카프레 비케리스 멘카우레 솁세스카프 탐프티스
제5왕조 우세르카프 사후레 네페리르카레 카카이 네페레프레 솁세스카레 니우세르레 멩카우호르 제드카레 우나스
제6왕조 테티 우세르카레 페피 1세 메렌레 1세 페피 2세 메렌레 2세 니토크리스 네체르카레 네페르카 네퍼
제7왕조 멩카레 네페르카레 2세 네페르카레 3세 제드카레 셰마이 네페르카레 4세 메렌호르 네페르카민 니카레 네페르카레 5세 네페르카호르
제8왕조 네페르카레 6세 네페르카민 아누 카카레 이비 네페르카우레 네페르카우호르 네페리르카레 와지카레 쿠이케르 쿠이 이체누
제9왕조 케티 1세 네페르카레 7세 네브카우레 케티 세투트 임호텝
제10왕조 메리하토르 네페르카레 8세 와카레 케티 메리카레
제11왕조 멘투호테프 1세 인테프 1세 인테프 2세 인테프 3세 멘투호테프 2세 멘투호테프 3세 멘투호테프 4세
누비아 왕조 세게르세니 카카레 이니 이이브켄트레
제12왕조 아메넴헤트 1세 세누스레트 1세 아메넴헤트 2세 세누스레트 2세 세누스레트 3세 아메넴헤트 3세 아메넴헤트 4세 소베크네페루
제13왕조 소베크호테프 1세 손베프 네리카레 세켐카레 아메니 케마우 호테피브레 이푸니 아메넴헤트 6세 세멘카레 네브누니 세헤테피브레 세와지카레 네제미브레 소베크호테프 2세 렌세네브 호르 세켐레쿠타위 카바우 제드케페레우 세브카이 세제파카레 웨가프 켄제르 이미레메샤우 세헤테프카레 인테프 세트 메리브레 소베크호테프 3세 네페르호테프 1세 시하토르 소베크호테프 4세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 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 와히브레 이비아우 메르네페르레 아이 이니 1세 상켄레 세와지투 메르세켐레 이네드 세와지카레 호리 소베크호테프 7세 이니 2세 세와헨레 세네브미우 메르케페레 메르카레 세와자레 멘투호테프 세헤켄레 산크프타히
제14왕조 야크빔 세카엔레 야아무 누부세르레 카레흐 아아호테프레 셰시 네헤시 카케레우레 네베파우레 세헤브레 메르제파레 세와지카레 3세 네브제파레 웨벤레 아위브레 2세 헤리브레 네브센레 셰케페렌레 제드케레우레 산키브레 2세 카케무레 네페리브레 카카레 아카레 아나티 제드카레 베브눔 아페피 누야 와자드 셰네흐 셴셰크 카무레 야카레브 야쿠브-하르
제15왕조 샤렉 셈켐 아페라나트 살리티스 사키르-하르 키얀 야나시 아페피 카무디
제16왕조 제후티 소베크호테프 8세 네페르호테프 3세 멘투호테피 네비리라우 1세 네비리라우 2세 세멘레 베비앙크 세켐레 셰드와스트 데두모세 1세 데두모세 2세 몬투엠사프 메란크흐레 멘투호테프 세누스레트 4세 페피 3세
아비도스 왕조 세네브카이 웨프와웨템사프 판트제니 스나아이브
제17왕조 라호테프 네브마아트레 소베켐사프 1세 소베켐사프 2세 인테프 5세 인테프 6세 인테프 7세 세나크텐레 아모세 세케넨레 타오 카모세
제18왕조 아흐모세 1세 아멘호테프 1세 투트모세 1세 투트모세 2세 하트셉수트 투트모세 3세 아멘호테프 2세 투트모세 4세 아멘호테프 3세 아케나톤 스멘크카레 네페르티티 투탕카멘 아이 호렘헤브
제19왕조 람세스 1세 세티 1세 람세스 2세 메르넵타 아멘메세스 세티 2세 십타 투스레트
제20왕조 세트나크테 람세스 3세 람세스 4세 람세스 5세 람세스 6세 람세스 7세 람세스 8세 람세스 9세 람세스 10세 람세스 11세
제21왕조 스멘데스 1세 아메넴니수 프수센네스 1세 아메네모페 대 오소르콘 시아문 프수센네스 2세
제22왕조 셰숑크 1세 오소르콘 1세 셰숑크 2세 타켈로트 1세 오소르콘 2세 셰숑크 3세 셰숑크 4세 파미 셰숑크 5세 오소르콘 4세
제23왕조 하르시에세 A 타켈로트 2세 페디바스테트 1세 셰숑크 6세 오소르콘 3세 타켈로트 3세 루다멘 이니
제24왕조 테프나크트 바켄레네프
제25왕조 피이 셰비쿠 샤바카 타하르카 타누타멘
제26왕조 네코 1세 프삼티크 1세 네코 2세 프삼티크 2세 와히브레 아흐모세 2세 프삼티크 3세
제27왕조
(아케메네스 왕조)
캄비세스 2세 바르디야 다리우스 1세 크세르크세스 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크세르크세스 2세 소그디아누스 다리우스 2세
제28왕조 아미르타이오스
제29왕조 네파루드 1세 하코르 프삼무테스 네파루드 2세
제30왕조 넥타네보 1세 테오스 넥타네보 2세
제31왕조
(아케메네스 왕조)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아르세스 카바쉬 | 다리우스 3세
아르게아스 왕조 알렉산드로스 3세 필리포스 3세 알렉산드로스 4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제32 왕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 프톨레마이오스 2세 · 아르시노에 2세 프톨레마이오스 3세 · 베레니케 2세 프톨레마이오스 4세 · 아르시노에 3세 프톨레마이오스 5세 · 클레오파트라 1세 프톨레마이오스 6세 · 클레오파트라 1세 · 클레오파트라 2세 · 프톨레마이오스 8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프톨레마이오스 6세 (복위) · 클레오파트라 2세 (복위) · 프톨레마이오스 7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 클레오파트라 2세 · 클레오파트라 3세 클레오파트라 2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복위) · 클레오파트라 2세 · 클레오파트라 3세 (복위) 프톨레마이오스 9세 · 클레오파트라 3세 · 클레오파트라 4세 프톨레마이오스 10세 · 클레오파트라 3세 · 베레니케 3세 프톨레마이오스 9세 (복위) 베레니케 3세 · 프톨레마이오스 11세 프톨레마이오스 12세 · 클레오파트라 5세 베레니케 4세 · 클레오파트라 6세 프톨레마이오스 12세 (복위) 프톨레마이오스 13세 · 클레오파트라 7세 · 아르시노에 4세 프톨레마이오스 14세 · 클레오파트라 7세 프톨레마이오스 15세 · 클레오파트라 7세
세소스트리스 · 아이깁투스 · 사산 · 정통 칼리파
우마이야 · 아바스 · 파티마 · 아이유브
맘루크 · 오스만 · 무함마드 알리 · 대통령
}}}}}}}}}}}}}}}


이집트 중왕국 제11왕조 5대 파라오
멘투호테프 2세 | 𓇳𓎟𓊤
Mentuhotep II
파일:statue-of-mentuhotep-ii-2040-bc-everett.jpg
멘투호테프 2세의 석상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네브헤페트레(Nebhepetre)[1]
부왕 인테프 3세
선대 인테프 3세
후대 멘투호테프 3세
묘지 데이르 엘 바하리의 장제전
왕비 템(Tem)
네페루 2세(Neferu II)
헨헤네트(Henhenet)
카위트(Kawit)
켐시트(Kemsit)
사데흐(Sadeh)
자녀 멘투호테프 3세(Mentuhotep III)♂
마예트(Mayet)♀[추정]
재위 이집트 파라오
기원전 2060년 ~ 기원전 2009년
1. 개요2. 통치
2.1. 이집트 재통일

[clearfix]

1. 개요

이집트 중왕국 제11왕조의 5대 파라오. 혼란스러웠던 제1중간기를 끝내고 이집트를 재통일하면서 중왕국 시대를 개막한 파라오였다. 51년 동안 재위하면서 상하로 분열된 고대 이집트를 통합하기 위해 애썼고, 멘투호테프 2세의 노력 덕분에 중왕국의 후대 파라오들은 안정적인 왕권을 누렸다.

멘투호테프 2세는 상이집트 유역의 테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인테프 3세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은 후 점차 힘을 키워나갔고, 북쪽 하이집트의 제10왕조의 파라오들이 아비도스를 모욕하자 이를 빌미로 군대를 몰아 하이집트를 정복했다. 재위한 지 약 39년 정도 되는 해에 전 이집트를 재통일한 멘투호테프 2세는 각지에 총독을 파견해 파라오의 통제력을 강화했으며, 정기적으로 감사를 파견해 관리들을 감시하는 등 왕권 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며 중왕국 번영의 기초를 놓았다. 멘투호테프 2세가 기원전 2009년에 사망하자 그의 시신은 데이르 엘 바하리의 장제전에 잠들었다.[3]

2. 통치

2.1. 이집트 재통일

멘투호테프 2세가 왕위에 오르기 직전, 이집트는 한창 제1중간기가 지속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번영을 누렸던 이집트 고왕국이 멸망하고 이집트가 남북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 북부 나일 강 삼각주의 하이집트 일대는 헤라클레오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제10왕조가 다스리고 있었고, 남쪽 상이집트 유역에는 테베를 중심으로 한 제11왕조가 힘을 키우고 있었다. 제11왕조의 파라오들은 끊임없이 정벌과 팽창을 반복했고, 덕분에 멘투호테프 2세가 아버지 인테프 3세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을 시점에 제11왕조의 강역은 남쪽으로는 나일 제1폭포의 아비도스, 북쪽으로는 체부에 닿으며 상당히 거대했다. 멘투호테프 2세가 새로운 파라오에 즉위하고 난 이후에도 약 14년 간은 별다른 전투나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재위 14년 동안은 신전의 기록이나 부조 따위에도 별다른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파라오가 너무 어려 딱히 부각되는 활동을 하지는 않았던 모양.

재위 14년부터 본격적으로 제10왕조와 멘투호테프 2세와 충돌이 격화된다. 헤라클레오폴리스의 제10왕조는 영향력 확대를 위해 티니스 일대를 공격했고, 이에 멘투호테프 2세가 신성한 아비도스의 무덤을 모욕한 제10왕조를 단죄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이끌고 북진하면서 대대적인 전투가 일어났다.[4] 당시 제10왕조의 파라오였던 메리카레는 무력했다.[5] 메리카레 치하의 제10왕조는 끝없이 저물어갔고, 이 틈을 놓치지 않은 멘투호테프 2세가 총공세를 펼치면서 결국 제10왕조를 무릎꿇리는 데에 성공했다. 정확한 통일 시기나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대략 재위 39년 되는 해, 전쟁을 시작한 지 25년 만에 멘투호테프 2세는 하이집트를 정벌하고 이집트를 재통일하면서 다시 통일 이집트의 유일한 군주로 거듭났다. 이집트를 다시 통합했다는 멘투호테프 2세의 위엄은 수직상승하면서 그가 거의 반신(半神)처럼 숭배받았다는 말이 전해진다.[6]

이집트를 재통일한 멘투호테프 2세는 자신의 이름을 '셰마타위', 즉 '두 개의 땅을 통일한 자'라고 개명했다. 단순히 상이집트의 군주가 아니라 하이집트까지 아우르는 전 이집트의 왕이라는 것을 천명하기 위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제1중간기 시절 이집트 본국이 혼란스러웠던 틈을 타 반쯤 독립 상태를 유지했던 누비아 지방에 군대를 보내 재복속시켰고,[7] 그 외에도 리비아, 가나안, 수단, 차드 등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 군사들을 보내어 정복하게 했다. 또한 고왕국 쇠락의 원인이었던 총독의 권한을 대대적으로 약화시키면서 권력 집중화에 노력했다. 지방의 총독들은 고왕국 시절 제6왕조의 페피 2세 시대부터 제 말을 듣지 않고 독립적으로 행세하며 파라오의 힘을 갉아먹었는데, 이를 경계했던 멘투호테프 2세는 총독들을 찍어눌렀다. 그는 제10왕조가 임명한 총독들을 모조리 내친 다음 제 사람들을 그곳에 끼워넣었으며, 매년마다 정기적으로 감독관들을 파견해 관리들이 역심을 품지 않고 있는지, 아니면 축재하고 있지 않은지 등 철저한 감시를 붙였다.

[1] "의 방향타를 잡은 자"[추정] [3] 그의 장제전은 최초로 죽음의 신 오시리스와 파라오를 동일시하는 내용의 부조가 새겨진 신전이었다. 이후 하트셉수트, 투트모세 3세 등이 멘투호테프 2세가 세운 전통에 따라 유사한 장제전을 지었다.[4] 1920년대에 데이르 엘 바하리에서는 60여 명에 달하는 병사들의 미라가 함께 발견되었다. 이 미라들에는 멘투호테프 2세의 이름이 적힌 인장이 찍혀있었는데, 학자들은 아마 이 전투에서 왕을 위해 싸우다 죽은 병사들일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5] 이미 메리카레가 멘투호테프 2세가 침입하기 이전에 죽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6] 거의 200년이 흐른 뒤인 아메넴헤트 3세가 그를 기리는 뜻의 비석을 세워줬을 정도.[7] 엘레판틴 섬에 요새를 세워 병사들의 빠른 이동이 가능케 만들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