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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19:40:33

다리우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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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메네스 왕조 제16대 샤한샤
다리우스 3세
𐎭𐎠𐎼𐎹𐎺𐎢𐏁
파일:Darius_III_mosaic.jpg
<colbgcolor=#941517><colcolor=#fff,#fff> 제호 다리우스 3세(Darius III)
출생 기원전 380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5px-Standard_of_Cyrus_the_Great_%28Achaemenid_Empire%29.svg.png 아케메네스 왕조
사망 기원전 330년 (향년 50세)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5px-Standard_of_Cyrus_the_Great_%28Achaemenid_Empire%29.svg.png 아케메네스 왕조 파르티아
재위 기간 아케메네스 왕조 샤한샤
기원전 336년 ~ 기원전 330년 (7년)
전임자 아르세스
후임자 베소스
부친 아르사메스(Arsames)
모후 시시감비스
황후 스타테이라 1세
종교 조로아스터교
1. 개요2. 생애
2.1. 출생부터 즉위까지2.2. 마케도니아와의 전쟁2.3. 최후
3. 평가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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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제16대 샤한샤이자 최후의 샤한샤. 고대 이집트속국으로 지배했던 마지막 페르시아인 군주이기도 하다.[1]

2. 생애

2.1. 출생부터 즉위까지

다리우스 3세는 14대 왕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의 조카손자로, 왕족인 아르사메스의 아들로 태어났다.[2] 본명은 아르타샤타(Artashata)이다.

다리우스는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코도만누스(Codomannus)를 지내면서 군인으로 활약했다. 특히 기원전 360년에는 카두시 족의 지도자와 일 대 일 결투를 벌여 승리하는 활약상을 남기기도 하는 등 용맹한 군인이었다. 그는 그에 걸맞게 체격이 크고 외모가 준수하였다. 예컨대《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는 다리우스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키가 크고, 얼굴이 잘생긴 헌헌장부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기원전 338년, 페르시아 말기 궁중의 권력자였던 환관 바고아스가 왕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를 독살하고 실권을 장악한 후에 그 아들인 아르세스를 왕으로 옹립하였다. 그러나 바고아스는 아르세스가 자신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그마저도 살해하였다.

이후 바고아스는 배후에서 권력을 행사하면서 겉으로 내세워 꼭두각시처럼 부릴 수 있는 왕을 모색했고, 곧 방계 왕족이었던 다리우스 3세를 옹립하였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다리우스는 방계왕족이었기에 그 기반도 약했고, 일생의 대부분을 군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정치에는 무지하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로써 다리우스 3세는 기원전 336년에 페르시아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의 상황은 바고아스의 의도와는 반대로 돌아가게 된다.

다리우스 3세를 옹립한 바고아스는 왕을 사실상 허수아비로 취급하며 자신이 직접 정치와 권력을 장악하고자 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다리우스 3세가 직접 나라를 통치하겠다고 선포하자 분노한 바고아스는 다리우스를 독살하기 위해 연회를 가장하여 독이 든 술잔을 바쳤다. 이에 다리우스는 바고아스의 음모를 눈치채고는 바고아스 몰래 포섭한 군사들을 매복시켜 바고아스를 생포한 다음 그의 머리채를 붙잡고는 독주를 입에 쏟아부어 죽게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바고아스를 제거한 다리우스는 페르시아의 진정한 통치자로 거듭났다.

2.2. 마케도니아와의 전쟁

하지만 이러한 다리우스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페르시아에서 마침내 궁중의 권력다툼이 종결되던 시점에 페르시아의 숙적이었던 그리스 지역에서 마케도니아 왕국이 강대한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던 필리포스 2세는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을 힘으로 복종시켜 강제적으로 코린토스 동맹을 결성하는 등 막강한 위세를 과시하였다. 필리포스 2세는 그 세력이 강성해지자 군사를 파견하여 소아시아 일대를 공략하고자 했으나, 페르시아의 명장이었던 로도스 출신의 멤논이 이를 방어해냈다. 이후 필리포스 2세는 암살을 당하면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3] 그의 아들이 즉위하는데, 문제는 이 왕의 이름이 알렉산드로스라는 것이었다.

알렉산드로스 3세는 즉위 직후에 코린트 동맹 내부의 분열세력을 평정한 후, 아버지 필리포스 2세의 유지를 이어 페르시아 정복을 목표로 전쟁을 일으켰다. 기원전 334년, 알렉산드로스 3세의 지휘하에 마케도니아군이 페르시아를 공격해왔다. 그러자 이전에 마케도니아의 공격을 격퇴했던 명장 멤논이 대규모 전면전을 피하는 대신에 해군을 이용하여 마케도니아의 원정군을 고립시킨다는 작전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멤논은 이미 이전에 페르시아를 배신한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장군들은 그를 불신하였고, 그의 작전 또한 묵살되었다. 결국 그라니코스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이 크게 패하자, 다리우스는 뒤늦게 멤논을 총사령관으로 삼아서 알렉산드로스를 압박하였다. 그러나 멤논은 곧 병사하고 말았다.

결국 기원전 333년에는 다리우스 3세가 직접 10만에 달하는 대군을 거느리고 알렉산드로스를 맞상대하였는데, 이 싸움이 바로 그 유명한 이소스 전투이다. 그러나 페르시아군은 숫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로스의 전술에 휘말려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다리우스 3세는 앞에 강을 끼고 포진한 채 마케도니아군이 공격을 해오기를 기다렸다가 압도적인 전력으로 이를 방어하고 여세를 몰아 적군을 쳐부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전술을 구사했으나, 문제는 알렉산드로스가 다리우스의 예상을 뛰어넘는 천재적인 군인이었다는 점이다.

알렉산드로스는 백전노장이었던 페르메니온 장군에게 좌익을 맡겨서 페르시아군의 공격을 받아내게 하는 한편, 그 자신은 직접 우익을 거느리고 페르시아 진영을 공격함으로써 과감하게 다리우스의 허를 찔렀다. 헤타이로이를 거느리고 돌격해오는 알렉산드로스의 기세에 눌린 다리우스가 겁을 먹고 달아나자 나머지 페르시아군 또한 전의를 상실하여 도주하였다. 그 바람에 페르시아군의 진영은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이소스 전투 참고.) 이때 다리우스를 따라서 전장에 나왔던 다리우스의 가족들, 즉 어머니인 시시감비스와 아내 스타테이라, 그리고 두 명의 딸과 어린 아들 등의 가족들이 알렉산드로스에게 포로로 잡혔고, 다리우스 자신은 겨우 4천 명의 병사와 함께 동쪽으로 달아나 다마스쿠스에서 병력을 수습했을 뿐이었다.[4]

간신히 살아 돌아온 다리우스는 마케도니아 측에 사절을 보내 사로잡힌 가족의 몸값으로 3천 탈렌트의 금을 제시하는 한편, 알렉산드로스 3세가 정복한 페르시아 영토의 소유권을 인정할 테니 더이상 싸우지 말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3세는 애시당초 페르시아의 모든 영토와 왕위를 목표로 하고 있었기에 그 제안을 거절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답변을 보내면서, 다리우스가 순순히 항복해온다면 예의를 다하여 우대할 것이나, 그렇지 않겠다면 즉각 추격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알렉산드로스가 다리우스에게 위협적인 답장을 보낸 직후, 마케도니아 진영에 억류되어 있던 다리우스의 아내 스타테이라가 출산 중 사망하고 말았다.[5] 마케도니아 진영에서 도망쳐온 환관 테이레오스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들은 다리우스는 아내의 죽음에 상심한 나머지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이때에 그는 하늘을 향하여 자신이 페르시아의 국운을 다시 일으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였으며, 말미에는 만일 페르시아가 망해야 한다면 오로지 알렉산드로스가 왕이 되게 해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기원전 332년에는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이집트 지역을 공격해서 정복하였으며, 이듬해인 기원전 331년에는 곧바로 페르시아를 향해 진격해왔다. 다리우스는 어떻게든 이를 막기 위해서 왕실재산을 탕진하면서까지 노력한 결과 다시 10만에 가까운 병력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다리우스는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마케도니아군을 저지하기 위해 가우가멜라 평원에서 다시 알렉산드로스와 맞붙었으나 결국 패배하였다. (가우가멜라 전투 참고.)

왕실 호위병들인 이모탈 용사들의 영웅적인 희생 덕분에 간신히 전장에서 탈출한 다리우스는 동쪽으로 도주했다. 그는 그곳에서 군대를 재건하여 끝까지 마케도니아에 저항하고자 하였다. 알렉산드로스 또한 다리우스의 군세가 재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를 추격해왔다.

2.3. 최후

박트리아로 달아난 다리우스는 다시 알렉산드로스의 군대에 맞설 병력을 모으려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페르시아 군대 내부에서 거센 반발과 내분이 일어났다. 다리우스 3세의 사촌이자 사트라프(태수)[6]였던 베수스와 신하들은 마케도니아와의 싸움에서 연전연패한 다리우스의 능력을 불신하였다. 결국 다리우스는 베수스와 신하들에게 배신당하여 감금당하고 말았다.

다리우스는 베수스로부터 군사지휘권을 넘길 것을 요구받았으나 끝까지 이를 거부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서 마케도니아군이 맹렬한 속도로 추격해왔다. 베수스는 저항 끝에 패하자 결국 다리우스를 창으로 찌르고 달아났다. 사륜마차 안에서 치명상을 입고 죽어가던 다리우스는 뒤늦게 달려와 자신을 발견한 마케도니아의 군사들에게 물을 요구했다. 마케도니아인들이 나누어준 물을 마신 다리우스는 감사를 표하는 말을 남기고 곧 사망했다. 그의 죽음과 함께 아케메네스 왕조도 멸망하고 말았다.

한편 알렉산드로스 3세는 본래 다리우스를 사로잡은 후에 그로부터 정식으로 페르시아의 왕위를 넘겨받으려는 계획을 세워둔 상태였다. 때문에 알렉산드로스는 다리우스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대단히 실망했다. 이후 알렉산드로스는 스스로 페르시아의 왕이 되는 과정에서 다리우스의 죽음에 관한 소문을 부풀려 "다리우스 3세가 죽기 전에 알렉산드로스에게 페르시아 왕중왕의 자리를 선양했다." 라는 프로파간다를 퍼뜨렸다. 이는 페르시아를 통치하는데 필요한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다리우스의 입장에서는 알렉산드로스에게 패배하여 비참하게 죽은 것으로도 모자라, 사후에도 그에게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셈이 되고 말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인들의 민심을 얻기 위하여 호의를 베풀어, 다리우스 3세를 죽인 베수스와 그 측근들을 모두 잡아서 처벌하고 다리우스의 시신을 수습해 역대 페르시아 왕들의 묘지에 안치하고 정중하게 장례를 치러주었다.

3. 평가

다리우스 3세가 마케도니아와의 전쟁에서 너무도 어이없이 무너진 탓에 사람들에게는 흔히 무능한 인물로 인식되기는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왕년에는 적장과 결투를 벌여 이긴다거나, 혹은 자신을 옹립한 궁중의 실권자였던 바고아스를 역습해 죽여버리는 등 분명 과단성 있고 용맹한 인물이었다. 이소스 전투에서 상당한 숫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패한 것도 본인이 무능했기 때문은 아니다. 다리우스 3세가 보여준 전술과 포진은 당시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상식적인 것이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상식 따윈 뛰어넘는 명장이었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

다만 의아한 점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와 직접 맞붙은 이소스 전투와 가우가멜라 전투에서는 매번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다리우스 3세는 알렉산드로스가 자신이 있는 본진으로 직공해올 때마다 나머지 전선에서 승기를 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황에 빠져 도주해버렸다. 그 바람에 오히려 참패하고 말았으며, 그 결과는 페르시아 제국의 멸망이었다. 제위에 앉아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어서 성격이 이렇게 180도로 바뀌었는지 역사가들의 의구심을 자아낼 정도. 사실 유독 소심했다고 하기도 뭐한게 최고 사령관이 있는 곳에 적의 기병대가 돌진해오면 사령관이 피신하는게 너무 당연한 상식인거고, 최고 사령관이면서도 기병대 쐐기꼴 대형의 꼭짓점에서 돌격한 알렉산더가 상식 밖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물론 권좌 자체가 사람의 인격을 변화시킬 수는 있다. 흡사한 예로,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의 장남이었던 혜종도 태자 시절부터 전장에서 공을 세우거나, 침소에 들어온 자객과 맞서 맨손으로 이를 때려죽일 정도로 용맹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취약한 지지기반과 쟁쟁한 경쟁자들과의 틈바구니 속에서 시달리다가 심신이 황폐해져서 왕위에 오른지 2년만에 병사한 사례가 있다.

4. 여담


[1] 고대가 아니라 중세까지 포함하자면 이집트를 지배한 이란계 민족 출신 군주는 쿠르드계인 이집트 아이유브 왕조의 마지막 술탄 알 아슈라프 무사가 마지막이다.[2] 아르사메스는 14대 왕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의 조카였다.[3] 일설에서는 다리우스가 페르시아를 공격하려는 필리포스에게 위협을 느껴서 이를 암살했다고도 하지만 명확한 근거는 없다. 학계에서 제시된 또다른 가설 중에는 당시 태자였던 알렉산드로스가 후계자 문제를 놓고 아버지인 필리포스와 대립하다가 그를 암살했다는 견해도 있지만 이 또한 확실한 증거가 없다. 다만 필리포스가 내부적인 권력투쟁에 휘말려 암살당했을 가능성 자체는 높은 것으로 보인다.[4] 당시에 사로잡힌 다리우스의 두 딸은 각기 알렉산드로스와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충신이었던 헤파이스티온의 아내가 되었다.[5] 그런데 이 아이는 다리우스의 아이일 수가 없다. 스타테이라가 억류된지 이미 1년이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 역사학자들은 알렉산드로스가 스타테이라를 겁탈하여 생긴 아이로 추정한다[6] 사트라프는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에서 왕의 대리인으로서 지방에 파견되어 관할지역을 다스렸던 지방관을 말한다. 한국어로는 태수, 총독, 지사 등으로 번역된다.[7] 나무위키에는 바르시네라는 이름으로, 영문 위키피디아에는 'Stateira (wife of Alexander the Great)'라는 표제어로 올라와 있다.[8] 앞서 언급하였듯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알렉산드로스전에 의하면 다리우스는 헌헌장부였다고 한다. 얼굴값을 못 하는 사람?[9] 이 때 알렉산더가 완전히 미친 놈처럼 눈이 부릅뜨고 돌격해온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다리우스가 순간 겁 먹고 전장에서 도망치는 게 이해가 갈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