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제1중간기 제10왕조 3대 파라오 와카레 케티 Wahkare Khety | ||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휘 | 와카레 케티(Wahkare Khety) | |
부왕 | 불명 | |
선대 | 카카레 이비 혹은 와지카레 혹은 네페르카레 8세 | |
후대 | 메리카레 | |
묘지 | 불명 | |
자녀 | 메리카레(Merikare)[추정] | |
재위 | 이집트 파라오 | |
연도는 불명이나 재위기간은 50년으로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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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집트 제1중간기 10왕조의 3대 파라오이다.2. 정체
와카레 케티의 정체는 논란의 대상이다. 일부 학자들은 그를 9왕조의 창건자로 보지만, 다수는 10왕조의 파라오로 보고 있다.그가 9왕조의 창건자라면, 마네토가 기록한 '악토에스'와 동일인일 가능성이 있다. 마네토에 따르면, 악토에스는 잔혹한 군주였으며, 결국 광기에 사로잡혀 악어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만약 이 가설이 맞다면, 와카레 케티는 헤라클레오폴리스 출신 귀족으로, 기원전 2150년경 멤피스 중심의 8왕조가 약화된 틈을 타 이집트 북부와 죽부를 장악했을 가능성이 있다. 일부 동시대 기록에서 헤라클레오폴리스에 존재한 왕조를 '케티의 왕조'로 언급하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나, 여기서 언급된 '케티'가 반드시 와카레 케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학자들은 그를 10왕조의 파라오로 보고, 《메리카레를 위한 교훈》의 저자로 추정하고 있다. 이 경우 그는 네페르카레 8세와 메리카레 사이의 군주이며, '악토에스'는 그가 아닌 케티 1세와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다. 《메리카레를 위한 교훈》에 따르면, 와카레 케티는 하이집트의 지방 노마치들과 협력하여 나일 삼각주에서 활동하던 유목 민족인 아시아인(Asiatics)을 격퇴하고, 국경 방어 체계를 확립했으며, 레반트 지역과의 무역을 재개했다. 그러나 그는 메리카레에게 국경 방비를 소홀히 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남부에서는 아시유트의 노마치 테피비와 함께 테베의 인테프 2세에게 빼앗긴 티니스를 탈환했으나, 헤라클레오폴리스 군대가 이 과정에서 신성한 네크로폴리스를 약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테베의 반격이 시작되었으며, 결국 티니스 지역은 테베의 손에 넘어갔다. 이후 와카레 케티는 대립을 멈추고 테베 왕조와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했으며, 이는 그의 후계자인 메리카레 시기의 초반까지 유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