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중왕국 누비아왕조 파라오 세게르세니 Segerseni | ||
세게르세니의 이름이 새겨진 비문 | ||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휘 | 세게르세니(Segerseni)[1] | |
부왕 | 불명 | |
선대 | 불명 | |
후대 | 불명 | |
묘지 | 불명 | |
재위 | 이집트 파라오 | |
기원전 20세기 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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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누비아 왕조의 파라오이다.2. 증명
세게르세니는 고대 이집트 제1중간기 말기에서 중왕국 초기 사이에 활동했을 가능성이 거론되는 인물이다. 이 인물의 존재가 명확히 확인된 자료는 누비아 하부 지역[2] 움바라캅(Umbarakab)[3]에서 발견된 바위 비문 한두 점뿐이며, 아직까지 추가적인 유물이나 기록은 보고되지 않았다.3. 즉위명
세게르세니의 즉위명(왕호)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여러 견해가 존재한다. 발견된 비문이 조각 상태가 좋지 않고 풍화가 심해 정확한 판독이 어렵기 때문이다. 일부 연구자는 이즉위명을 멘크카레(Menkhkare)로 추정하고 있으며, 다른 견해에서는 와지카레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멘크카레가 좀 더 유력하게 받아들여지는 추세이다. 비문 중 하나는 ‘페르센베트(Persenbet)’라는 아직 정체가 불분명한 지역에서 발생한 전투 혹은 전쟁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지역이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확실치 않으며, 구체적인 전투 상황도 확인되지 않았다.4. 왕명표에서의 위치
세게르세니는 고대 이집트의 공식 왕명표[4] 어디에도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세게르세니가 이집트 본토에서 통용되는 정통 왕위 계승권을 인정받지 못했거나, 이집트 외곽 지역에서만 활동한 소위 지방 군벌 혹은 군주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가 실제로 파라오로 즉위했는지, 또는 누비아 지역에서만 독자적인 세력을 이루고 있었는지는 현재로서 불분명하다.5. 재위 시기
세게르세니의 활동 시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학계 일부에서는 제1중간기 초기에 등장했을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제2중간기 시기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한다. 또 다른 주장은 제11왕조 말 멘투호테프 4세 ~ 제12왕조 아메넴헤트 1세 재위 전후라는 설을 제시한다. 이 설에 따르면, 멘투호테프 4세와 아메넴헤트 1세 모두 정통성 문제로 인해 국내에서 완전한 지지를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어, 세게르세니를 비롯한 군벌 또는 지방 세력이 혼란을 틈타 등장했을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6. 누비아와의 연관성
문헌에 따르면, 아메넴헤트 1세는 오릭스 놈[5]의 노마치였던 크눔호테프 1세를 파견하여 누비아 지역의 반란을 평정하려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세력이 저항을 주도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아, 세게르세니가 해당 저항의 지도자였다는 설은 아직 가설 단계에 머무른다. 또한 누비아는 제1중간기에 사실상 독립 상태였던 시기가 있었으며, 멘투호테프 2세가 군사 작전을 벌여 재통합을 시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세게르세니의 활동이 그로부터 약 40여 년 후로 추정된다는 연구가 있으며, 이를 통해 누비아 지역이 여전히 독자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7. 다른 누비아 왕조 파라오와의 관계
세게르세니 외에도 같은 시기 혹은 비슷한 시점에 카카레 이니, 이이브켄트레 등 누비아 중심의 소규모 군주들이 존재했다는 가설이 있다. 이들 역시 이집트 왕위에 도전했는지, 혹은 독립된 누비아 국가를 세우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많지 않다. 세게르세니가 실제로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는 알려진 내용이 적으며, 동시다발적으로 독립 세력들이 난립한 지역적 혼란의 산물일 가능성도 제기된다.[1] Sekherseni라고도 부른다[2] 오늘날 수단 북부 인근[3] 일명 코르-데흐밋(Khor-Dehmit) 지역[4] 아비도스 파라오 목록, 토리노 파피루스 등[5] 상이집트의 16번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