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제1중간기 제11왕조 2대 파라오 인테프 1세 Intef I | ||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휘 | 세헤르타위 인테프(Sehertawy Intef)[2] | |
부왕 | 멘투호테프 1세로 추정 | |
선대 | 멘투호테프 1세 | |
후대 | 인테프 2세 | |
묘지 | 엘-타리프 | |
재위 | 이집트 파라오 | |
기원전 2134년? ~ 기원전 2117년? 기원전 2020년경 혹은 기원전 2070년경 재위기간 4~1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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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테프 1세는 고대 이집트 제1중간기에 상이집트 테베 지역의 노마치로 출발하여, 이후 제11왕조의 파라오로 즉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제11왕조 통치자 중 최초로 호루스 이름을 사용한 사례로도 주목되며, 재위 시기는 대략 기원전 2120년 또는 2070년경에 시작해 약 4년에서 최대 16년 정도로 추정된다. 재위 중 북쪽 인접 지배자였던 콥토스(Coptos)의 노마치 차우티(Tjauti)와 충돌을 빚었다는 흔적이 남아 있으며, 사후에는 테베 서안의 엘 타리프(El-Tarif)에 위치한 사프 엘 다와바(Saff el-Dawaba)에 안장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왕위는 그의 형제 혹은 가까운 친족으로 추정되는 인테프 2세가 계승하여, 계속해서 북쪽 세력과의 대립을 이어간 것으로 전해진다.2. 유물
인테프 1세와 관련된 동시대 사료로는 멘투호테프 2세 재위기에 토드(Tod)의 몬투[3] 신전에서 제작된 비문 두 조각이 가장 확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비문에는 멘투호테프 2세가 자신의 선조로 여겨지는 세 인물, 즉 인테프 1세, 인테프 2세, 인테프 3세의 이름을 마주하고 서 있는 장면이 묘사된다. 여기서 호루스 이름으로 세헤르타위와 와한크만이 남아 있으며, 이 부조는 제11왕조 왕들의 계보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한편, 인테프 1세에게 귀속될 수 있는 확실한 유물은 거의 전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서부 사막 지역에서 발견된 “태양의 아들 인테프의 공격 부대”라는 짧은 비문이 있으나, 해당 비문에 언급된 ‘인테프’가 인테프 1세인지 인테프 2세인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분분하다. 또한 이 비문은 당시 콥토스의 노마치였던 차우티(Tjauti) 관련 비문 인근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되었다.
후대에 작성된 여러 왕명표에서 인테프 1세가 언급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관련 부분이 소실되었거나 훼손된 사례가 많아 정확한 이름이나 치세 기간을 특정하기 어려운 상태다. 예컨대 카르나크 왕명표에서 ‘인테프’라는 이름이 멘투호테프 1세 바로 옆에 등장하기는 하나, 해당 부분의 호루스 이름이나 구체적 내용이 손상되었다. 토리노 파피루스 역시 인테프 1세의 재위 기간을 명시하지 않았으나, 멘투호테프 1세와 인테프 1세의 통치 기간을 합쳐 16년으로 추정하는 기록이 후대에 전해진 상태다. 이를 토대로 인테프 1세 개인의 재위가 약 4년에서 최대 16년 사이로 거론되며, 최종적으로는 인테프 2세가 그의 뒤를 이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통치
인테프 1세는 자신이 속한 왕조 가운데 최초로 호루스 이름을 공식적인 파라오 칭호로 사용한 사례로 알려져 있다. 이 호루스 이름인 '세헤르타위’에 대해서는 ‘두 땅에 평화를 가져온 자’ 등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전하며, 그의 부모로 멘투호테프 1세와 그의 아내였던 네페루 1세가 거론되기도 하나, 기록이 부족하여 확정된 사항은 아니다.인테프 1세가 프셴트[4]를 사용하면서 이집트 전역을 통일적으로 통치하고자 했으나, 실제로는 헤라클레오폴리스의 제10왕조를 비롯한 여러 지방 세력과 대립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히에라콘폴리스[5]의 노마치 앙크티피는 제10왕조의 우호 세력으로서, 인테프 1세의 세력 확대에 적극 저항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인테프 1세가 테베에서 즉위했을 당시 관할 영역은 제한적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앙크티피 혹은 그의 후임자를 제압하여 테베로부터 남쪽 엘레판티네 지역까지, 그리고 북쪽으로 콥토스 지역 주변까지 세력을 넓힌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러한 영토 확장이 이미 이전 통치자인 멘투호테프 1세 치세에 시작되었다고도 본다.
인테프 1세의 북방 진출은 비교적 빠르게 진행된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서부 사막 인근에서 발견된 “라의 아들 인테프의 공격 부대”라는 낙서가 그 근거로 거론된다. 해당 낙서는 같은 장소에서 발견된 콥토스 노마치였던 차우티 관련 비문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 당시에 인테프 1세나 후계자인 인테프 2세가 차우티와 충돌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전투에서 테베 측이 승리함으로써, 콥토스와 덴데라, 히에라콘폴리스 일대의 세 놈[6]이 테베 왕권 아래로 들어갔고, 이후 아비도스에 이르는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4. 무덤
인테프 1세의 무덤은 테베 서안 엘 타리프(El-Tarif) 언덕을 활용한 사프(Saff) 형태의 왕릉으로 간주된다. 이 무덤은 현재 ‘사프 엘 다와바(Saff el-Dawaba)’로 불리며, 엘 타리프 지역에 자리한 세 대형 사프 무덤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 중 다른 한 무덤에서는 인테프 2세의 이름이 명기된 비문이 발견되어 피장자를 비교적 명확히 판별할 수 있지만, 사프 엘 다와바에는 직접적인 명문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여기서 엘 타리프 일대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토기가 출토된 점을 들어, 다수의 연구자는 이 무덤을 인테프 1세의 매장지로 추정한다.사프 엘 다와바는 대략 300×75미터에 달하는 광활한 안뜰이 지면 아래로 파인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안뜰 뒤쪽으로는 언덕을 파서 만든 영안실이 있는 예배당과 양측의 부속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무덤의 매장실은 예배당 아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1] 전쟁의 신[2] "뜻은 두 땅에 평화를 가져온 자" 혹은 "두 땅을 진정시키는 자"라는 뜻이다.[3] 전쟁과 매의 신으로, 주로 테베 지역에서 숭배되었다.[4] 하이집트의 왕관인 데슈레트와 상이집트의 왕관인 헤제트를 서로 합친 왕관[5] 당시에는 네켄이라고 불렀다.[6] 이집트의 행정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