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중왕국 제12왕조 3대 파라오 아메넴헤트 2세 Amenemhat II | ||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휘 | 세누스레트(Senusert) | |
부왕 | 세누스레트 1세 | |
선대 | 세누스레트 1세 | |
후대 | 세누스레트 2세 | |
묘지 | 백색 피라미드 | |
자녀 | 세누스레트 2세(Amenemhat II)♂[추정] | |
재위 | 이집트 파라오 | |
기원전 1914/1878/1877/1876년~ 기원전 1879/1876/1843/1843/1842 재위기간 3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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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집트 중왕국 12왕조의 3대 파라오이다.2. 가계
아메넴헤트 2세의 어머니는 네페루 3세로 추정되지만, 부왕에 대해서는 확실한 사료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일반적으로 전임 군주인 세누스레트 1세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게 거론된다. 베니 하산(Beni Hasan)에서 발견된 한 지방 관리 무덤의 비문에는 왕자 아메니(Ameny)가 누비아로 향하는 원정을 수행했다는 언급이 있으며, 일부 연구자들은 이 인물이 훗날의 아메넴헤트 2세라고 추정하기도 한다.아메넴헤트 2세의 왕비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다슈르의 피라미드 주변에 매장된 여러 왕족 여성의 매장 흔적은 발견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세 명의 파라오의 딸[2]이 이 시기에 활동했을 것으로 여겨지나, 정확한 가족 관계는 확정되지 않았다. 또한 이후 즉위한 세누스레트 2세가 아메넴헤트 2세의 아들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이를 직접적으로 입증하는 문헌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이 밖에도 아메넴헤트앙크(Amenemhatankh)라는 왕자가 언급되며, 노프레트 2세(Nofret II) 및 케네메트네페르헤제트(Khenemetneferhedjet)[3] 두 공주가 세누스레트 2세의 왕후가 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어 왔다. 한편으로는 세네트(Senet)라는 왕비 겸 파라오의 어머니 칭호를 지닌 인물도 알려져 있어, 일각에서는 그녀 역시 아메넴헤트 2세와 연관된 인물로 추정되고 있다.
3. 통치
3.1. 즉위
세누스레트 1세 말기부터 아메넴마핫 2세로 권력이 이양되는 과정에 대해 한때 공동 통치론이 제기되었으나, 레이덴 V4 비문[4]의 해석이 바뀌면서 실제 공동 통치 여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오히려 아메넴헤트 2세의 즉위 시점에 정확한 공동 통치에 대한 관념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3.2. 통치 기록
아메넴헤트 2세의 치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료는 멤피스에서 출토된 이른바 아메넴헤트 2세 연대기의 일부 파편이다. 해당 기록에는 여러 신전에 대한 왕실의 기부, 아시아 지역에 대한 군사 원정[5], 시나이 지역 광산 개발, 쿠시 지역[6]에서의 공물 수령 등이 언급된다.그의 시기에 만들어진 유물로서는 타니스의 대스핑크스[7]와, 토드(Tod)의 몬투[8] 신전 하부에서 발굴된 은 재질의 보물 상자가 유명하다. 특히 이러한 유물 중 상당수는 에게해 지역의 공예 양식을 갖추고 있어, 중왕국 초기에 이집트와 에게 지역 간 교류가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아메넴헤트 2세는 헬리오폴리스, 헤라클레오폴리스, 멤피스, 나일강 삼각주 동부 지역, 헤르모폴리스[9] 등에서 신전·사원 등을 재건하거나 보수한 것으로 추정되며, 비문상 제1사원이라 불린 건축 계획도 추진한 것으로 보이나 구체적인 목적은 확실치 않다.
3.3. 왕실 인물
치세 초반에 재상을 지낸 인물로 세누스레트(Senusret)가 거론되며, 이후 아메니(Ameny), 시에세(Siese) 등이 재상을 역임한 것으로 보인다. 시에세는 재상뿐 아니라 재무관, 고위 시종장 직함도 겸임했던 것으로 보아 상당한 권세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이 외에도 재무관을 지냈던 레후에르제르센(Rehuerdjersen)과 메리카우(Merykau)가, 피라미드 인근에 매장된 관문의 감독관이라는 직함을 단 켄티케티웨르(Khentykhetywer), 궁정 사무 담당으로 스노프루(Snofru), 세니테프(Senitef), 서기관이자 고관인 사몬트(Samont) 등이 문헌에 등장한다. 군대 총책임자 지위를 지닌 아메니(Ameny)라는 이름의 인물 역시 아메넴헤트 2세 시기에 활동한 것으로 추측된다.
3.4. 후계
아메넴헤트 2세 말기에 이르러 세누스레트 2세와의 짧은 공동 통치가 있었다는 점은 비교적 확실하게 인정되고 있다. 특히 코노소(Konosso)에서 발견된 하푸(Hapu)의 비문에는 세누스레트 2세 재위 3년과 아메넴헤트 2세 재위 35년이 병기되어 있어, 실제로 두 파라오가 함께 국정을 운영한 기간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알려진 아메넴헤트 2세의 가장 높은 재위 연도 역시 35년차 기록이다.4. 흰 피라미드
이름 | 세켐 아메넴헤트(Sekhem Amenemhat) |
뜻 | 아메넴헤트는 강력하다 |
높이 | 불명 |
경사 | 불명 |
아메넴헤트 2세의 피라미드는 현재 다슈르(Dahshur)에 위치해 있으며, 고대에는 세켐-아메넴헤트 혹은 아메누-세켐(Amenu-Sekhem)으로 불렸고 현대에는 흰 피라미드(White Pyramid)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다슈르는 4왕조 스네프루 이후로 한동안 왕가 묘역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지역이었으나, 아메넴헤트 2세가 이곳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피라미드 자체는 훼손이 심해 원형을 복원하기 어렵고, 부속 장례 사원이 ‘제파-아메넴마핫(Djefa-Amenemhat)’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점만 알려져 있다. 1894~1895년에 자크 드 모르강(Jacques de Morgan)이 이 지역에서 실시한 발굴을 통해, 왕실 여성으로 보이는 인물들[10]과 귀족[11]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이타·이타웨레트·켄메트의 무덤은 도굴되지 않은 채 아름다운 장신구가 남아 있었으며, 재무관 아멘호테프와 케미눕(Keminub)이라는 왕비에 준하는 여성의 무덤은 제13왕조 시기에 지어져 도굴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한편 이 시기의 피라미드 복합체는 훗날 도굴이나 석재 재활용 등의 이유로 추가적인 훼손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12] 다슈르 일대 발굴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여러 차례 이루어졌으나, 현재도 구조적 안정성이 매우 좋지 않아 정밀 조사가 제한적인 상태이다.
[추정] [2] 이타(Ita), 이타웨레트(Itaweret), 켄메트(Khenmet)[3] 케네메트네페르헤제트 1세와 동일인으로 추정[4] 세누스레트 1세의 재위 44년과 아메넴헤트 2세의 재위 2년의 연도가 똑같이 적혀져 있는 비문이다.[5] 이우아이(Iuai), 이아시(Iasy)라는 지명이 등장하지만 현재 위치는 미상이다[6] 누비아라고도 부른다[7]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 중이다[8] 전쟁과 매의 신[9] 상이집트의 15번째 놈인 웨네트의 주도. 헤르모폴리스는 로마식 이름으로, 이집트식 이름은 케메누이다.[10] 상술한 이타(Ita), 이타웨레트(Itaweret), 켄메트(Khenmet)[11] 사타톨메리트(Sathathormeryt), 재무관 아멘호테프(Amenhotep) 등[12] 다른 피라미드도 상태가 좋지 않기는 똑같지만, 특히 이 흰 피라미드는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 사진을 찾아보면 그냥 흙무더기가 사방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일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