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제3왕조 초대 파라오 조세르 Djoser | ||
피라미드에서 발굴한 조세르의 석상[1] | ||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이름 | 조세르(Djoser) | |
출생 | 미상 | |
사망 | 기원전 2649년/2611년 | |
재위 기간 | 이집트 파라오 | |
기원전 2686년 ~ 기원전 2649년/2611년 (40-70년) | ||
전임자 | 카세켐위[2] | |
후임자 | 세켐케트 | |
부모 | 아버지 : 카세켐위 | |
배우자 | 헤테프헤르넵티 | |
무덤 | 조세르의 피라미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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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집트 고왕국 제3왕조의 초대 파라오. 기원전 2686년부터 기원전 2649년[3]까지 약 29년 정도 고대 이집트를 통치했다. 조세르의 즉위를 기점으로 이집트 초기 왕조와 이집트 고왕국을 구분한다. 주로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와 그를 보좌한 명재상 임호텝으로 잘 알려져 있다.2. 통치
이집트의 초대 파라오 나르메르가 기원전 3050년 경에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통일하며 이집트 초기 왕조가 시작된다. 역사학계에서는 지나치게 사료가 부족한 제1왕조와 제2왕조를 합쳐 초기 왕조로, 그리고 본격적인 피라미드 건설과 문화 발전이 이루어진 조세르 이후를 이집트 고왕국 시대로 분류한다. 물론 4,500년이라는 엄청나게 오랜 세월 이전의 일인지라 조세르가 제3왕조의 첫 파라오인지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이견이 많으나 학계의 정설은 조세르가 제3왕조와 고왕국의 초대 파라오라는 것.[4] 아문 신관이자 이집트의 역사학자였던 마네토는 조세르가 약 29년 정도 재위했다고 기록을 남겼고, 파라오들의 연대록을 담은 토리노 파피루스에는 19년 동안 왕위를 지켰다고 나와있다. 그러나 학자들이 조세르 시대에 지어진 건물들의 연대 측정과 건설 기간을 비교해 본 결과, 대략 30년 정도가 딱 적당한 수준이라 판명하였기에 29년이 정확한 재위 기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파라오 조세르는 시나이 반도로 여러 차례 군사 원정대를 파견해 토착 민족들을 복속시켰다. 특히 터키석이나 구리처럼 귀중한 광물들을 채취하도록 시켰고, 곳곳에 전초 기지들을 세워 무역상들이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신경썼다. 시나이 반도 지방은 아시아와 이집트 사이의 방파제이자 이집트의 제1방어선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 바로 조세르의 시대였다. 또한 헬리오폴리스와 테베 등을 비롯한 대도시들에 본격적인 건축 프로젝트들을 가동했고 왕국의 남쪽 국경을 나일 강의 제1폭포로 확립했다. 엘레판틴 섬에 크눔 신을 모시는 신전을 지었으며 나일 강변 곳곳에 신전과 궁전들을 짓기까지 했다.[5] 조세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축물들이 바로 '계단식 피라미드'인데, 기존의 단순한 마스타바[6] 형식의 무덤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사각뿔의 형태를 띤 기초적인 피라미드들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아직 피라미드가 완전한 형태는 아니었기에 후일 지어지는 쿠푸의 대피라미드 등과 비교해보면 약간 투박한 면모는 분명히 존재했다.
조세르의 통치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명재상 임호텝이다. 영화 미이라 시리즈의 이모텝의 모델이기도 한데, 실제 임호텝은 영화 속 흉악한 괴물과는 백만 광년 정도 거리가 있는 탁월한 인물이었다. 헬리오폴리스의 라 대신관이자 천문학자, 철학자, 정치가, 건축가, 의사 등 다재다능한 사람이었으며 당시에는 마법사로도 추앙받았다. 그에 대해 적어놓은 파피루스 문서들이 실전되어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기 힘들다. 하지만 그가 죽은 이후에도 신격화되어 추앙받을 정도로 능력 하나만큼은 엄청났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임호텝은 고대 이집트인들 가운데 파라오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신격화된 인물이었다. 그만큼 임호텝의 능력이 엄청났다는 증거.
3.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자세한 내용은 조세르의 피라미드 문서 참고하십시오.계단식 피라미드 | 조세르의 석관 |
계단식 피라미드 지하에는 매우 복잡한 지하 미로와 방들이 평균 지하 28m 정도의 깊이에서 마구 얽혀있다. 지하 통로들의 길이를 모두 합산하면 약 6km에 달할 정도로 장대한 크기의 미로가 아래에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 미로들 사이사이에 왕의 매장실, 안치실, 보물 저장고 등이 자리하고 있다. 입구는 고왕국 시절 전통대로 북쪽에 있고, 정문 쪽은 푸른색 타일로 꾸며져 있다. 지하의 방들은 파라오의 궁전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으로 만들어졌고, 워낙 내부가 복잡해서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가이드를 따라가거나 표시가 있는 곳에만 들어가야 한다. 미로의 중심에 있는 거대한 규모의 매장실은 화강암 벽면으로 만들었고, 도굴당하기 전에는 3.5톤에 달하는 거대한 화강암으로 입구가 막혀 있었다. 관 내부와 묻혀있던 보물들은 워낙에 다 털려나간 터라 현재는 돌덩이 외에는 아무 것도 찾아볼 수 없다.
[1] 원래는 눈가에 보석이 박혔지만 도굴과정중에서 없어졌다. 현재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집트 조각상이다.[2] 이집트 초기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이자 조세르의 아버지.[3] 기원전 2611년까지라는 말도 있다.[4] 후대의 이집트 역사학자이자 아문 신관이었던 마네토는 그를 제3왕조의 3대 파라오로 썼다.[5] 조세르가 워낙에 많은 업적을 남기고 건축물들을 많이 지었기에 고대 이집트인들은 몇 천년 후에도 조세르를 기억했다.[6] 피라미드 이전의 고대 이집트의 무덤 방식. 직육면체 모양의 건물 아래에 지하 매장실을 만들고 관을 안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