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제25왕조 제5대 파라오 타누타멘 Tanutamen | ||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이름 | 타누타멘(Tanutamen) | |
출생 | 미상 | |
사망 | 기원전 653년경 | |
재위 기간 | 이집트 파라오 | |
기원전 664년경 ~ 기원전 653년경 (약 9년) | ||
전임자 | 타하르카 | |
후임자 | 아틀라네사[1] | |
부모 | 아버지 : 샤바카 어머니 : 칼하타 | |
배우자 | 말라카예 | |
무덤 | 엘-쿠루 16번 피라미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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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쿠시 왕국 나파타 시대 7대 왕이자 고대 이집트 제25대 왕조 5대이며 마지막 파라오. 아시리아로부터 이집트를 되찾고자 시도했지만 끝내 패하고 누비아로 돌아갔다.2. 행적
샤바카와 칼히타 왕비의 아들이다. 누이로 하레마케트, 피앙카티, 이세렘헤브가 있었는데, 이중 피앙카티를 첫번째 아내로 맞이했고 두번째 아내로 '(...)salka'[2]가 있었다. 세번째 아내로 말라카예를 들였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그는 아내들 사이에서 아들 아틀라네사, 딸 예투로, 칼리세트를 낳았다.그는 즉위 첫해에 세운 석상에서 자신이 오른 손에 한 마리, 왼 손에 한 마리씩 두 마리의 뱀을 꽉 쥔 꿈을 꾸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하들이 "남쪽 땅은 이미 여위었으니 북쪽 땅을 제압하라"는 의미라고 해몽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로 볼 때, 그는 선대 파라오 타하르카 때 아시리아의 침략으로 빼앗긴 이집트를 탈환하겠다는 야망을 품은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664년, 타누타멘은 군대를 소집한 뒤 나파타에서 출정해 북쪽으로 진군하여 엘레판티네 섬에 들러서 크눔 신의 축제 행렬에 참가했다. 이후 북쪽으로 진군헤 테베에 도착하여 다시 축제를 즐겼고, 뒤이어 멤피스로 쳐들어갔다. 아시리아가 파라오로 세웠던 네코 1세가 이에 맞서 항전했지만 끝내 패배하고 목숨을 잃었고, 네코 1세의 아들 프삼테크 1세는 아시아로 도주했다. 그는 승리를 거둔 뒤 멤피스의 대신전에서 프타-소카르 신과 그의 아내인 사흐메트 여신에게 제사를 지냈고, 나파타에 아문에게 헌정된 예배당을 짓도록 명령했다.
이후 나일강 삼각주로 진군한 타누타멘은 각 지역의 지배자들로부터 충성 서약을 받아내고 그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시리아 왕 아슈르바니팔이 프삼티크 1세와 함께 이집트로 쳐들어온 것이다. 그는 아시리아군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듣자 멤피스를 버리고 테베로 후퇴했고, 나일강 삼각주의 모든 통치자들이 아슈르바니팔의 발에 입을 맞추며 충성을 서약했다. 그 후 아시리아군은 테베로 진군해 타누타멘을 누비아로 쫓아냈다. 아슈르바니팔은 테베를 반 아시리아 운동의 중심지로 간주하고 철저한 파괴를 명령했다. 그가 세운 기념비에는 테베 약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아수르와 이스타르의 도움으로 테베 전체를 점령했다. 은과 금과 보석과 궁전의 모든 소유물과 여러 가지 색깔의 옷과, 아마포와, 큰 말과, 호박으로 도금한 2개의 오벨리스크와, 사원의 문 기둥을 그들의 근거지에서 가져다가 아시리아로 이송했다. 나는 테베를 파괴하고 셀 수 없을 정도의 전리품을 취했다. 이집트와 쿠시를 상대로 내 병사들이 분노하도록 내버려두었고, 나의 힘을 마음껏 보여주었다.
성경 이사야 20장 3~6절은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보이리니, 그들이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그 날에 이 해변 주민이 말하기를, "우리가 믿던 나라 곧 우리가 앗수르 왕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달려가서 도움을 구하던 나라가 이같이 되었은즉 우리가 어찌 능히 피하리요" 하리라.
타누타멘은 이렇게 이집트에서 허망하게 쫓겨나 누비아로 돌아갔지만, 테베의 룩소르 신전은 여전히 쿠시 왕을 파라오로 받들고 그들의 딸을 여사제로 모셨다. 쿠시 왕국 초대 파라오 피이의 딸 셰펜베페트 2세는 아문의 신의 아내로 추앙되었고, 타하르카의 딸 아메니르디스 2세가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아메니르디스는 타누타멘이 축출된 후에도 8년간 룩소르 신전 여사제로 활동하면서 여러 비문을 남겼다. 그러나 프삼티크 1세가 대대적으로 쿠시 왕국의 흔적을 지우는 사업을 개시할 때 축출되어 조국으로 돌아갔다.
타누타멘은 누비아에서 통치를 이어가다가 기원전 653년에 사망했고 엘 쿠루-16 피라미드에 안장되었다. 오늘날에는 피라미드가 사라졌고 터만 남았지만, 그 밑에는 벽화로 장식된 입구와 방들이 남아있다. 쿠시 왕들은 이후로도 백여년간 파라오를 자처했지만, 다시는 이집트에 발을 들이지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