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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8:39:52

헤파이스티온

헤파이스티온
Ἡφαιστίων | Hephaistion
파일:헤파이스티온.jpg
출생 기원전 356년?
마케도니아 왕국 펠라
(現 그리스 중마케도니아 주 펠라)
사망 기원전 324년 10월 (향년 32세?)
알렉산드로스 제국 엑바타나
(現 이란 하마단 주 엑바타나)
직위 헤타이로이 최선임 장군
친위대 수장
배우자 드리페티스[1]

1. 개요2. 생애3. 대중문화 속의 헤파이스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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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음에 두지 마시오. 이 사람 역시 알렉산드로스니까.’’
알렉산드로스 대왕
마케도니아 왕국의 인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절친한 친구이다. 알렉산드로스의 동성연인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2. 생애

헤파이스티온은 귀족 아민토르의 자식으로 마케도니아의 수도 펠라에서 태어났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미에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가르침을 받을 때부터 함께 했던 친구였는데, 알렉산드로스가 왕자 시절에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와 불화하여 마케도니아를 떠나 있을 때에도 덩달아 추방되었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다. 알렉산드로스와 관계에 대해 아킬레우스파트로클로스의 관계로 묘사한 자료도 있다. 알렉산드로스의 장군 중에는 페르디카스와 친했다고 한다. 동방 원정 중에는 엘리트 친위 기병대의 최선임 장군 자리와 알렉산드로스의 친위대[2]의 수장을 맡았다.

사실 능력에 있어서는 특출나게 뛰어난 인물이라고는 보기 힘들었으나 알렉산드로스에게는 오랜 친구였을 뿐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충성스러운 신하였기에 많은 총애를 받았다. 한마디로 딱히 유능해서 출세했다기 보다는, 알렉산드로스에게 있어 수족과 같은 측근이자 충실한 이해자와 같은 사람이었기에 출세했던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3][4] 헤파이스티온을 대신해 기병대의 대표자로서 전설적인 전공을 세운 사람은 페르디카스였다.

기원전 333년에 이소스 전투에서 승리해 여러 도시들이 항복하면서 알렉산드로스가 시돈의 왕을 선택하라고 하자 아브달로니모스를 선택해 그를 시돈의 왕으로 임명하게 했다.

이소스 전투 직후 마케도니아 측에서 페르시아 제국샤한샤 다리우스 3세의 처자식들을 사로잡자, 알렉산드로스와 헤파이스티온이 이를 직접 영접하였다. 그런데 헤파이스티온이 알렉산드로스보다 키가 크고 외모가 잘생긴데다가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다리우스의 어머니인 시시감비스가 헤파이스티온을 알렉산드로스로 착각하고 그에게 절을 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시시감비스가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용서를 구하자, 알렉산드로스는 오히려 시시감비스를 정중하게 대접하며 "마음에 두시 마시오. 이 사람 역시 알렉산드로스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헤파이스티온은 알렉산드로스와 일심동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가 펼치는 정책이나 구상에 무조건 찬동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 때문에 다른 마케도니아 장군들 사이에서는 예스맨으로 여겨져 갈등이 많았던 듯하다. 특히 왕 앞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던 크라테로스와 갈등이 잦았으며,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주는 헤파이스티온을 신뢰하면서도 크라테로스 역시 존중하였다. 그래서 가끔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헤파이스티온은 알렉산드로스의 친구이고, 크라테로스는 왕의 친구다."

인도 원정 때에는 크라테로스와 칼부림까지 났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에게 공개적으로 꾸짖음을 받기도 했다. 그 밖에는 서기관인 에우메네스와도 사이가 나빠서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기원전 324년에 알렉산드로스가 수사에서 합동 결혼식을 올릴 때, 헤파이스티온은 다리우스 3세의 딸인 드리페티스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헤파이스티온은 그 해에 열병에 걸려서 심하게 앓아 눕고 말았다. 그의 건강을 진찰한 의사는 헤파이스티온에게 완쾌되기 전까지는 술을 마시는 행위를 삼가고 몸을 잘 추스릴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헤파이스티온은 열병 증세가 조금 호전되자, 마침 의사가 축제일에 벌어진 운동경기를 보러 자리를 비운 사이 침상으로 닭고기와 포도주를 들여와 과식 과음을 하였다. 그것이 원인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그는 곧 사망하고 말았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헤파이스티온의 죽음을 접하고는 크게 절망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를 진찰한 의사를 근무지 이탈죄를 물어 가장 잔혹한 십자가형 사형에 처했으며, 또한 헤파이스티온을 기리기 위한 온갖 거대한 기념물과 석조물들을 건설하도록 하였다. 역사학자인 폴 카트리지는 알렉산드로스가 헤파이스티온의 죽음을 이처럼 슬퍼한 것은, 그가 단순히 알렉산드로스의 심복이었을 뿐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신뢰할만한 친구이자 거의 유일한 이해자요, 영혼의 동반자였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가 죽은 뒤 알렉산드로스는 헤파이스티온 외에는 누구도 헤타이로이의 최선임 대대장 자리를 가지지 못 할 것이라 선포했지만, 군부 서열 1위 자리를 비워 둘 순 없었는지 결국 그의 헤타이로이 최선임 장교 지위와 친위대 대장 자리는 페르디카스에게 넘어갔다. 페르디카스가 지휘하던 대대는 왕궁 서기관 에우메네스에게 넘어갔다.[5]

그가 죽은지 불과 이듬해인 기원전 323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죽고 말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헤파이스티온을 잃은 충격으로 건강이 극히 악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다만 현대에는 알렉산드로스의 주요 사인으로 과음으로 인해 얻은 병, 혹은 풍토병이나 말라리아 등이 유력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헤파이스티온의 죽음이 여기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쳤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3. 대중문화 속의 헤파이스티온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절친한 친구이자 심복이였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가 등장하는 어지간한 대중매체에는 소설, 영화, 만화, 드라마 등 종류를 막론하고 일종의 필수요소처럼 취급된다. 또 알렉산더 대왕과 동성 연인이란 설이 지배적이라 가녀린 몸매의 미소년, 미청년이 거의 필수 요소다. 다만 전술됐든 실제론 상당한 근육질에 강철 체력의 용장이었다..

3.1. 영화 알렉산더

콜린 파렐이 알렉산더로 나오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2004년 전기영화 알렉산더에서 자레드 레토가 헤파이스티온으로 나온다. 기록대로 어릴 적부터 알렉산더와 동문수학한 둘도 없는 친구이며 알렉산더를 동성애자로 해석한 영화답게 알렉산더와 그렇고 그런 사이로 묘사된다. 의외로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알렉산더를 유일하게 이해하는 인물로 알렉산더도 그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정도의 관계이며 그가 역사대로 병으로 사망하자 알렉산더는 실의에 빠져 서서히 병들어가 죽고 만다. 최후의 순간에도 후계자를 선정해달라는 장군들의 압박에도 알렉산더 눈에 들어온 것은 헤파이스티온의 흉상이였으니 말 다했다. 생전 헤파이스티온이 이집트에서 구한 귀한 반지를 알렉산더에게 선물했고, 알렉산더 역시 그 반지를 왕권의 상징으로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으나 그 반지는 최후의 승리자라 부를만한 프톨레마이오스 손에 넘어간다.

3.2. Fate 시리즈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헤파이스티온(Fate 시리즈)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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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히스토리에

히스토리에》에서는 알렉산드로 대왕의 제2의 인격으로 나온다. 서기관들에겐 헤파이스티온에 대한 것은 기록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 헤파이스티온은 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헤파이스티온 때는 화장으로 얼굴의 뱀 자국 멍을 지우고 다닌다.

알렉산드로스는 헤파이스티온의 인격이 몸을 지배했을 때의 기억이 전혀 없지만, 헤파이스티온은 알렉산드로스가 몸을 지배했을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애마인 부케팔로스는 헤파이스티온을 거부한다.

[1]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 마지막 사햔샤 다리우스 3세의 딸이자 알렉산드로스의 부인인 스타테이라 2세의 동생. 즉, 대교와 결혼한 손책, 소교와 결혼한 주유 이 둘처럼 알렉산더 대왕과 헤파이스티온 이 둘 역시 동서지간이다.[2] 알렉산드로스의 최측근 장군 7명[3] 비슷한 예시로 유비 휘하에 있던 간옹을 들 수 있다.[4] 다만 알렉산드로스의 성향을 생각한다면 헤파이스티온도 전장의 최전방에서 자주 싸웠을 것이고 거기서 인도 원정까지도 살아남은 것을 보면 최소 용장이라 불릴 수 있을 수준의 무예 능력은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5] 헤파이스티온이 에우메네스에게 배정된 숙소를 양해도 구하지 않고 피리 연주자 에우이오스에게 양보한 일로 에우메네스와 크게 다툰 적 있다. 에우메네스는 알렉산드로스를 찾아가 "차라리 연주자가 되는 게 낫겠다."고 불평했는데, 이를 들은 알렉산드로스는 헤파이스티온을 비난했으나 곧 마음을 바꿔 왕의 보호를 바란다며 에우메네스를 책망했다. 즉, "왜 헤파이스티온에게 직접 가서 따지지 않고 나한테 와서 하소연하냐?"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