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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제국 Αλέξανδρος Αυτοκρατορία | |
문장 (베르기나의 태양) | |
영역 | |
<colbgcolor=#e0c03d,#727161><colcolor=#000,#ddd> 존속 기간 | 기원전 332년 ~ 기원전 309년 (알렉산드로스 3세의 정복~헬레니즘 제국 분열) 기원전 309년 ~ 기원전 148년 (디아도코이~제4차 마케도니아 전쟁 패배) |
수도 | 바빌론 (사실상, 기원전 331년 ~ 기원전 323년) |
언어 | 아티케 그리스어 코이네 그리스어 |
종교 | 그리스 다신교(초기) 헬레니즘 종교(후기) |
민족 | 고대 마케도니아인 외 다수 (세계시민주의) |
정부 형태 | 왕정 → 과두정 |
면적 | 5,200,000 km² (헬레니즘 제국, 기원전 323년) |
국가원수 | 대왕 |
주요 국왕 | 필리포스 2세 알렉산드로스 3세 |
통화 | 드라크마(Τετράδραχμο) |
성립 이전 | 마케도니아 왕국 아케메네스 왕조 |
분열 이후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파랑) 셀레우코스 왕조(노랑) 리시마코스 정권(주황) 안티파트로스-안티고노스 왕조(초록)[1][2] 에페이로스 왕국(분홍) |
언어별 명칭 | |
한국어 | 헬레니즘 문명 |
라틴어 | Hellenismus Cultura |
그리스어 | Ελληνιστική περίοδος |
영어 | Hellenistic period |
히브리어 | התקופה ההֶלֶנִיסְטִית |
아랍어 | العصر الهيلينست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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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소아시아, 이집트, 아케메네스 왕조, 그리고 지금의 파키스탄 변경까지를 병합하여 건설한 제국 및 그 땅을 물려받은 디아도코이들이 지배한 영역의 총칭.약 2000년 후에 등장하는 프랑스 제1제국과 같이 대왕이 혼자서 만들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닌 제국[3]이기에 그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로스 제국, 알렉산더 제국이라고도 불리며 동시에 그리스의 진정한 최전성기라고 불리던 시대이자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학문과 문화들이 훗날(현대) 서양 문명의 모태이자 뿌리가 되게 만든 시대.
2. 역사
2.1. 기원
자세한 내용은 마케도니아 왕국 문서 참고하십시오.헬레니즘 제국의 전신은 고대 그리스에 위치했던 마케도니아 왕국이다. 그리스 폴리스들이 펠로폰네소스 전쟁 등 자기들끼리 치고받는 동안 마케도니아 왕국은 조용히 힘을 길렀고, 국왕 필리포스 2세는 정예 기병대 헤타이로이를 창설하고 마케도니아식 팔랑크스를 고안하는 등 군제개혁을 통해 마케도니아 왕국을 군사강국으로 만들었다. 오랜 혼란으로 지친 아테네, 스파르타, 테베 같은 폴리스들은 더 이상 마케도니아의 적수가 되지 못했고 필리포스 2세는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아테네-테베 연합군을 격파하여 그리스를 평정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스를 제압한 필리포스 2세는 페르시아 제국을 정벌하려고 했지만 원정을 떠나기 직전 친위대원에게 암살당했다. 그리고 필리포스 2세의 뒤를 이어 알렉산드로스 3세가 마케도니아 왕국의 새 왕으로 즉위했다.
2.2. 확장
자세한 내용은 알렉산드로스 3세 문서 참고하십시오.즉위한 알렉산드로스는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그리스와 일리리아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했다. 그리고 헬레스폰트를 건너 페르시아를 침공, 아나톨리아 → 시리아 → 유다 → 이집트 순으로 진격하며 페르시아의 영토를 모조리 정복했으며, 페르시아 국왕 다리우스 3세가 직접 지휘하는 페르시아 대군을 이소스 전투에서 격파했다. 다리우스 3세는 알렉산드로스가 지중해 해안 영토를 정복하는 동안 제국의 남은 전력을 끌어모아 반격에 나서려고 했지만 알렉산드로스는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다리우스 3세가 지휘하는 페르시아 대군을 또 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다리우스 3세는 도망치고 알렉산드로스는 바빌론, 슈쉬, 페르세폴리스에 입성한 뒤 페르시아 제국의 동쪽 끝까지 진격하여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시켜버렸다.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린 알렉산드로스는 더 나아가 인도를 정복하고자 했다. 부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정을 강행한 알렉산드로스는 군대를 이끌고 인더스 강을 건너 히다스페스 전투에서 파우라바 왕국의 군대를 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병사들이 원정을 거부하며 파업해버렸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는 인도 정벌이라는 원대한 꿈을 접고 바빌론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으로 그리스, 이집트, 아나톨리아, 페르시아, 인더스 강까지 이르는 헬레니즘 제국이 등장했으며, 동서양의 문화가 만나 헬레니즘 문화가 탄생했다.
바빌론으로 돌아온 알렉산드로스는 아라비아 반도 원정을 계획했지만 기원전 323년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2.3. 분열
분열된 제국. 노란색은 리시마코스, 녹색은 셀레우코스, 갈색은 프톨레마이오스가 장악한 영토이다. |
4차례에 걸친 디아도코이 전쟁의 결과 헬레니즘 제국은 카산드로스 왕조를 무너뜨리고 마케도니아를 차지한 안티고노스 왕조, 페르시아와 메소포타미아를 장악한 셀레우코스 왕조, 이집트를 차지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로 나뉘어졌다. 그 뒤로는 더욱 잘게 분열하거나 왕조가 교체되거나 했으며, 크게 프톨레마이오스와 셀레우코스의 양강 구도가 정착되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가 생전에 남겨놓은 유산들이 있었기에 디아도코이들이 수백년간 유지되었고, 그 자신은 생전에 결과물을 보지 못했지만 그가 시작하거나 진척시킨 신도시, 사업 등은 디아도코이들이 계승하였고 이를 통해 중동과 중앙아시아 각지의 그리스계 왕조들이 헬레니즘 문화를 꽃피웠다.
2.4. 멸망
이후 헬레니즘 왕국의 지배층의 군사력을 유지시켜주던 그리스-마케도니아의 이주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다.[4]헬레니즘 왕국은 그리스 민족이 지배층을 차지하였는데, 지배관료가 될 그리스 지식인도, 군사력을 담당할 그리스 용병도 줄어들면서 헬레니즘 왕국들은 위기에 봉착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등은 토착민을 기용하거나 켈트족 등 다른 용병을 써서 해결하려 했지만 그리스 인의 배타적인 우위권을 놓고 정치적 마찰을 불러오게 되었다. 그리고 헬레니즘 국가들이 위기에 빠져있는 사이 서쪽에서 숙적 카르타고를 격파한 로마 공화국이 헬레니즘 왕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가장 먼저 로마에게 멸망한 나라는 안티고노스 왕조였다. 로마는 네 차례에 걸친 마케도니아 전쟁에서 안티코노스 왕조와 그에 붙어 로마에 대항하던 아카이아 동맹을 무너뜨리고 발칸 반도를 정복했다. 셀레우코스 왕조는 그리스를 공격하다가 로마에게 완패한 뒤 파르티아 등 주변국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시리아 인근만 유지하다가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에 의해 멸망한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3왕국 중 가장 오래 존속했지만 숙적 셀레우코스 왕조를 막기 위해 로마와 손을 잡았다가 서서히 로마에 종속되었으며, 카이사르 사후 안토니우스와 손을 잡았다가 악티움 해전에서 로마군에게 패배하여 멸망, 로마 제국의 영토로 편입된다. 이렇게 되어 기원전까지 그리스-마케도니아계 국가들은 모두 사라지게 되었고 한때 제국을 건설했던 그리스인들은 로마 제국과 파르티아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는데, 동방으로 이주했던 그리스인은 서서히 정체성을 상실하고 동화되어 사라진다.
그나마 가장 동방에 위치한, 인도로 이주한 그리스-박트리아 왕국나 인도-그리스 왕국의 그리스 인들이 오랜 기간 동안 왕조를 유지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불교로 개종하고 소수의 그리스인이 인도 토착민 사회에 동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소멸하게 된다.
그래도 그리스가 중심지인 동로마 제국의 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5] 어떻게 보면 동로마 제국이 헬레니즘 제국의 진정한 후예인 셈. 그리고 동로마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듯 알렉산더 대왕을 자국의 황제로 묘사하는 그림을 그렸다.[6]
3. 통치
헬레니즘 제국의 통치는 기본적으로 마케도니아 '그리스인 왕조'에 의해서 이루어졌다[7]. 오늘날 그리스에서는 북마케도니아와 이들이 혈연적, 언어적으로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며, 북마케도니아 측은 북마케도니아인이 슬라브계 이주민과 현지인이 혼혈해서 성립한 민족이라 보고 있으므로 비록 슬라브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혈연적으로 고대 마케도니아와 연속성이 있다고 주장한다.[8] 그리스인은 헬레니즘 시대에 제국 각지로 이주하였다. 그들이 고향에서 살던 폴리스와 마찬가지로 군데군데 그리스 인의 식민지 도시를 건설하였다. 그리스 인 식민 도시는 신전, 운동장 등 전형적인 그리스식 문화 시설이 들어섰다.이 그리스계 식민 도시들을 중심으로 헬레니즘 제국의 통치가 이루어졌으며, 제국의 인재풀은 주로 그리스인이었다. 그리스인은 역시 그리스인들이 왕조를 이어가는 헬레니즘 제국의 왕의 신하이자 그들의 조언자, 지지자로서 통치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왕의 측근으로서 왕의 통치를 보좌하는 이들은 "왕의 친구"라 불렸다.
또 헬레니즘 제국의 왕들은 그리스 인 이외의 민족에게는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여 통치하였다. 이런 이중적인 구조의 대표적인 사례는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이다. 이들은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들의 대표자이기도 했지만, 이집트에서는 이집트 전통의 파라오로서 이집트인을 다스렸다.
4. 역대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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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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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티파트로스 왕조는 카산드로스 왕조라고도 한다.[2] 안티파트로스 왕조 후에 안티고노스 왕조 창건[3]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에도 제국이긴 했다. 이 제국(帝國)이 아닌 이 제국(諸國)일 뿐.[4] 특히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이 문제가 심각했다. 마케도니아야 원래 홈그라운드가 그리스 민족이 주류인 땅이고 셀레우코스도 아나톨리아 서부 해안지대를 통한 그리스인 유입이 용이했기 때문.[5] 동로마의 영역에서 그리스어가 대중적으로 공용어처럼 쓰게 된 데에는 앞서 동방 지역을 거의 정복하고 그리스 문화를 심은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덕이 컸다. 다만 로마 제국 자체도 그리스의 영향을 엄청나게 받았기 때문에 원래부터 그리스어가 공용어 느낌으로 자주 쓰였다는 건 감안할 필요가 있다.[6] 다만, 동로마 제국은 로마제국의 문화에 영향을 더 많이 받긴 했으며, 스스로도 로마 제국 그 자체를 표방했다. 사실 그리스-로마 문명이라 묶어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둘은 따로따로 떼어놓고 보기엔 너무나도 끈적한 관계이다. 다만 한국인들은 세계사에서 특이 케이스에 속할 정도로 아주 강력한 단일민족문화를 형성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한국인의 세계관에선 동로마-그리스 관계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참 힘들다.[7] 고고학을 통해 고증한 바에 의하면 고대 마케도니아인은 원래부터 그리스인과는 같은 민족이었건, 사촌뻘 되는 민족이었건 매우 가까운 족속이었다고 한다. 현대 마케도니아인들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자국인이라고 주장하는 걸 그리스인들은 헛소리로 취급하며 싫어한다.[8] 현재의 마케도니아 공화국에 슬라브인들이 들어온것은 헬레니즘 제국이 멸망하고도 1000여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한때 그리스와 북마케도니아 사이에 마케도니아 왕국을 두고 신경전이 거셌고, 1991년에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에서 독립한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세워질 때 그리스에서는 크게 반발했다.(그리스-마케도니아 분쟁) 2019년에 이 분쟁은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북마케도니아라는 칭호를 쓰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으나 일부 그리스인들은 "'북'마케도니아도 안된다"면서 반발하고, '북'마케도니아서도 "왜 우리가 그리스한테 양보하냐"면서 불만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