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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8 22:15:06

로마 시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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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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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로마 시민권을 얻는 법
2.1. 안토니누스 칙령
3. 로마 시민권의 권리4. 의의5. 사이트

1. 개요

고대 로마, 로마 제국 소속 국민(시민)들에게 부여되는 권리. 즉, 시민권으로 고대 로마, 로마 제국의 국민들에게 부여된 권리, 특권, 의무, 혜택, 사회적 지위등을 나타낸다. 라틴어로는 civitas(키위타스[1])라 했다.

현대의 미국 시민권과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오늘날의 미국 시민권처럼 당시 많은 사람들이 따고 싶어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로마는 의외로 모든 시대를 통틀어서 상당히 개방적인 편이라 취득하기가 타국에 비해 엄청 쉬운 편이었다. 멀리 갈것도 없이 그리스의 폴리스들처럼 부모 모두가 시민권자여야만 시민권이 부여되거나 지주여야만 시민권이 부여되는 경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시민권자들이 줄어들어서 나중에 로마가 그리스 국가들을 정복할 때는 이미 대부분의 국가가 군대를 유지하기도 어려워질 정도로 시민들이 줄어들었다.[2]

2. 로마 시민권을 얻는 법

여성과[3] 노예를 제외한 모든 성인 남성 자유민들에게 시민권이 주어졌다. 로마 시민권을 획득하는 조건과 방법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출처)3. 시민권 (Citizenship)
  1. 시민권을 가진 로마인 아버지의 아들로 출생하는 것이다. 즉 로마의 시민인 아버지 또는 한 시민과 또 로마인과 결혼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소유한 한 외국인(connubium)에게서 출생함으로써 로마에 소속된다.
  2. 시민인 주인에 의해 해방된 노예는 시민권을 소유할 수 있었다. 여성 노예가 해방되지 않고 낳은 아이는 노예로 남는다. 왜냐하면 배우자가 법적으로 자유인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방된 이후에 태어난 아이는 완전한 시민권자가 된다. 수 많은 해방된 노예의 아들들이 이탈리아 도시의 특권 계층까지 올랐을 정도였다.[출처]
  3. 정부가 수여. 하나의 특수한 도시 국가의 통치 그룹 또는 통치자 개인 등에 수여되는데 로마에 대한 그들의 충성된 봉사에 대한 답례로 수여된다.
  4. 군단의 보조병으로써 군복무한 이들이 군에서 제대할 때, 제대 군인들은 가족이 함께 로마 시민권을 받았다. 이들은 대개 16년, 20년 또는 25년 간이나 복무를 했다. 이 시민권 역시 자식들에게 대물림할 수 있다.

2.1. 안토니누스 칙령

[황제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오히려 —- 원인과 사려 —— 그토록 두려운 [매복 공격 당시에도] 나를 보호해주신 불사의 신들께 감사 드린다. 따라서, 신들이 평범한 내 백성들 사이에 머무는 만큼 자주 [만약에] 내가[현재는 내 백성들과 다른 이들 모두] 우리들의 신[을 모신 성소로] 이끌린다면 그들의 장엄함에 [거룩하고 경건하게] 응당한 보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에, […] 데프티키오이(deitikioi)를 제외하고 [내가 다스리는] 세계 [전역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저마다 속한] [공동체의 권리는] 훼손하지 않고 유지한 채 로마 시민권을 주는 바이다. [전체 인구?]가 이미 […] 승리에 포함되었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 짐의] 칙령은 로마 [시민—]의 위엄을 넓힐 것이다. (Oliver, Greek constitutions, p. 500)
유네스코와 유산 홈페이지의 안토니누스 칙령 일부분
서기 212년 로마 제국의 카라칼라 황제가 위기에 처한 로마 사회를 통합하고자 로마 제국에 거주하는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는 ‘안토니누스 칙령’을 공포했다.

이로써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3개 대륙에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모두 단일한 로마 시민권을 소유하게 되었다. 동시에 이 사람들은 기존의 권리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었다. 즉 이들에게 기존의 시민권과 지역의 법 전통이 로마의 법에 따라 분명하게 보장되었다.

3. 로마 시민권의 권리

유다인들은 바울로의 말을 여기까지 듣고 있다가 "이런 놈은 아예 없애버려라. 죽일 놈이다." 하고 소리질렀다.
그리고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고 옷을 내던지며 공중에 먼지를 날렸다.
그러자 파견대장은 바울로를 병영 안으로 끌어들이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유다인들이 바울로를 향해서 그렇게 소리지르는 이유를 알려고 채찍질해서 조사해 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군인들이 바울로를 결박하자 바울로는 거기에 서 있던 백인대장에게 "로마 시민을 재판도 하지 않고 매질하는 법이 어디 있소?" 하고 항의하였다.
이 말을 듣고 백인대장이 파견대장에게 가서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저 사람은 로마 시민입니다." 하고 알리자
파견대장은 바울로에게 가서 "당신이 로마 시민이라는 것이 사실이오?" 하고 물었다. 바울로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파견대장은 "나는 많은 돈을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소."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바울로가 "나로 말하면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고 밝히니
바울로를 심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물러갔다. 바울로가 로마 시민이라는 것이 드러나자 그를 결박했던 사실 때문에 파견대장도 겁을 집어먹었다.
사도행전 22:22-29 '로마 시민'
로마 시민권의 소유는 법적, 재정적 차별로부터 해방을 의미한다.
안토니누스 칙령의 주요 내용은 로마 제국에 거주하는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유일한 예외는 ‘dediticii’(또는 그리스어본에서는 “데프티키오이(deitikioi)”) 라는 소수의 무리였는데, 그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지 아직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dediticii’는 로마 공화정이나 로마 제국에 단체로 무장 저항했던 집단이 무조건 항복을 한 경우(무조건 항복이므로 기존 체제 보장이나 시민권 부여 등에 대해서는 당연히 협의하지 못하게 된다) 그 집단 구성원들의 법적 지위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개인으로는 노예가 아닌 자유민이지만 문제 집단 소속이었기에 정당한 시민권의 소유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중간적 성격의 계급이었다.

당시까지 시민권을 인정받지 못했던 주민들은 다수에 의해 ‘이방인(peregrini)’으로 분류되었다. 따라서 로마 시민들과 비교했을 때 형법과 민법, 세금 평가, 사회적 이동가능성 등과 같은 기본적 권리의 영역에서 법률적 제약을 받았다.

그러나 ‘안토니누스 칙령’은 대부분 지방의 엘리트 계층이나 군인과 같은 일부만을 대상으로 하여 로마인과 ‘이방인’ 사이의 차별 자체에 의문을 가진 적 없었던 과거의 법적 권리 부여 체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조치였다.

4. 의의

우선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 같은 사이비 역사학자 덕분에 가지게 된 편견부터 버리자[7]: 카이세르 같은 “위대한” 영웅들과 로마인들만의 독특한 야망과 능력 때문에 로마가 성공한 것은 절대 아니다. 2천년 전 지중해 주변엔 카이세르보다 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들도 있었고, 로마보다 더 많은 능력과 야망에 넘치는 도시들도 많았다. 그렇다면 로마 제국의 비밀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비어드 교수는 “우연”과 “확장된 시민권”이라고 주장한다. 로마가 성공해야만 했던 필연적 이유는 사실 하나도 없었다는 말이다. 기원 전 216년 카내(Cannae)전투에서 7만 명 넘는 로마 군사를 사살한 카르타고하니발 장군은 왜 바로 로마를 침략하지 않았을까? 충분히 다를 수도 있었던 카르타고와 로마의 역사. 로마는 “역사”라는 도박에서 운이 좋았던 것이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고대 문명의 전쟁은 단순했다. “적을 물리치고 적의 땅과 재산을 빼앗는다”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로마는 달랐다. 점령한 민족을 새로운 로마인으로 흡수하고, 과거 적의 신을 자신의 새로운 신으로 받아들이는 유연성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로마 군과 싸우던 갈리아인들의 후손은 로마 장군이 되었고, 북아프리카 유목인 후손은 로마 원로원 의원이 되었다.

로마인들만의 권한이었던 로마 시민권은 점차 이탈리아 반도 모든 이들이 가지게 되었고, 드디어 기원 후 212년 카라칼라 황제로마 제국에 살고있는 모든 시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었다. “로마”는 단순히 더 이상 한 도시의 이름이 아닌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보편적 제국의 영원한 꿈이 되어버린 것이다.
김대식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조선일보)"제국이란 무엇인가"
천년제국 로마는 자영농이 시민이자 병사로서 떠받쳤다. 피정복민에게도 로마시민권이 부여됐다. 로마의 지배층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인재들이 들어찼다. 로마가 천년을 간 원동력이었고, 이 시스템이 무너지자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조선 건국의 주도자들 또한 귀족과두제를 혁파하고 농지를 분배하고, 평민에게 과거급제의 길을 열었다. 조선이 오백년을 간 힘이었다. 세도정치가 횡행하자 망국을 피할 수 없었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 로비의 문을 닫지마라
‘차이’는 책 전반에 걸쳐 반복해서 등장하는 키워드다. 제국은 곧 차이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제국을 “새로운 사람들을 통합하면서 구별과 위계를 유지하는 정치체”로 정의하면서 “제국 개념은 정치체 내부의 서로 다른 공동체들이 다르게 통치될 것을 전제한다”고 했다. 여기에서 권력의 레퍼토리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통치자들은 권력과 특권을 차별적으로 배분하거나 때로 유인책을 제공하고, 때로 억압하면서 제국 내부의 다양성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그들 나라를 유지하려 했다. 일례로 로마는 다종다양한 내부 구성원들을 통치하는 방편으로 로마 시민권을 활용했다. 로마 시민과 비로마 시민을 구별하면서도, 비로마 시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게 했다. 오스만 제국이슬람을 바탕으로 했지만, 교리의 순수성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고, 종파 분립을 방지하거나 관리했다. 더불어 제국은 영토의 통치를 위임하는 중개인을 각자의 상황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고용하고 관계 맺었으며, 정치와 종교를 결합했고, 이민족 병력을 고용했으며, 결혼 동맹도 이용했다. 레퍼토리란 곧 상황에 맞춘 전략적 선택을 가리키며, 이러한 유연성에 힘입어 제국은 내구성을 갖출 수 있었고 수백년간 존속할 수 있었다.
(경향)당근과 채찍…구성원들의 다양한 차이를 정략적으로 운영한 제국들
하지만 20세기 이나 일본처럼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에만 기초해서 제국을 세우고자 하는 나라들은 실패하였습니다. 반면 몽골, 로마 제국, 영국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국가 체계의 토대로 삼았으며 성공했습니다.
잭 웨더포드 미국 미네소타 주 매칼래스터 대학교 인류학과 교수[8]
좋지 않은 다른 예로 20세기의 일본을 들 수 있습니다. 일본은 점령한 국가들의 국민들에게 매우 잔혹한 대우를 하였고 정복당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생각이 전혀 없었지요. 일본이 항상 더 높은 곳에 있어야 했고 모든 부와 권력은 자신들이 독차지해야 했습니다. 일본에게 다른 사람들은 피정복민이자 노예일 뿐이었습니다. 반면 로마는 모든 사람들을 로마인으로 받아들였지요.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로마 제국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강대국이었습니다.
아드리안 골드워시 고대 로마 전투/군사 박사.

5. 사이트


[1] 고전 라틴어 발음으로, 교회 라틴어로는 치비타스라 읽지만 이는 로마 제국 당시 발음과는 동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2] 이를 두고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폴리비우스는 그리스의 폴리스는 시민이 줄어드는데, 로마에서는 땅에서 사람이 솟아나오는 것 같다고 평하기도 하였다.[3] 자유민 여성의 경우 참정권을 주지 않아서 완전한 로마 시민권이 없었다.[출처] M.L. Gordon, The Freedman's Son in Municipal Life, JRS 21, 1931, 65-77[5] 고대 로마의 자유민 여성은 로마의 국민이긴 했으나 참정권이 없어 불완전한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현대 개념에서는 국민이지만 시민권이 없는 일부 국가의 속령의 국민에 적용된다.[6] 쉽게 말해 로마 시민권자의 자녀도 로마 시민권을 자동적으로 부여받는다. 사도 파울로스가 "나는 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 가진 사람이다"라고 한 게 이것.[7] 이 시작 부분은 김대식이 로마인 이야기를 정말 읽기는 했는지 의문을 들게 하는데, 시오노 나나미가 영웅에 대한 빠심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로마의 융성의 원인은 영웅이 아니라 그 제도와 시스템, 그리고 포용적인 마인드에 있다는 게 로마인 이야기의 주제라고 해도 무방하다.(저자의 전작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는 그 주제의식이 더 강하게 드러나는데, 베네치아는 안티 히어로의 나라여서 융성했으며 영웅을 떠받들기 시작하면 이미 진정한 베네치아는 끝났다고 단언할 정도이다) 로마인 이야기에는 로마 시민권에 대한 서술이 매우 중요하고 분량도 많으며, 로마가 흥한 원인은 패자에 대한 포용력이라는 게 초반 몇 권의 주제일 정도이다. 일단 이 김대식의 글에서 우연에 대한 부분을 빼면 로마인 이야기와 별 차이도 없다[8] 다만 몽골과 영국에 대한 평은 너무 후한 평일 수도 있는데 몽골은 그래도 피정복민들의 문화나 관습을 존중한 편이었지만 정복과정에서 엄청난 피를 흩뿌렸으며 인구의 절대 다수인 남송 지역의 한인 6000만명을 체계적으로 차별하고 유사 노예로 다루었다. 영국의 경우는 인종주의에 기반한 일부 백인과 비 백인에 대한 엄청난 차별과 탄압을 일삼았다. 애초에 그정도로 다양한 민족들을 우대해줬다면 왜 서아시아와 러시아는 아직도 몽골 제국이라고 하면 치를 떨어하고 인도(를 포함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에서는 격렬한 독립운동을 하여 독립했겠는가? 이는 그저 각지에 자리잡은 게르만 민족들의 독립으로 분열한 로마와는 큰 차이가 있다. 덧붙여 로마는 이후 지중해권 국가들에서 모범적인 국가로서 자기가 제3의 로마라고 주장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지만 몽골과 영국은 아무리 자기네들이 많은 땅을 얻은 적이 있음에도 그 나라들에서 몽골, 영국에 애착을 느끼는 나라는 기껏해야 영국처럼 영국계 백인들이 우위라서 영국에 애정이 있는 미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소수고 몽골은 아얘 그런 나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