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武士'무예에 종사하는 사람' 으로 주로 주군 아래에서 군인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2. 단어 역사
무사란 사(士) 계급으로서 무예를 익히는 직분을 맡은 자를 가리킨다.중국 청동기 시대의 신분 '士'에서 출발했다. 원래 '사(士)'는 전쟁에 수레(전차) 1승(乘)을 낼 수 있는 계층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청동기 시대 중국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으며, 대읍(혹은 도읍)을 다스리는 천자를 정점으로 작은 읍(혹은 국國)들에 제후(公)들을 분봉해 주종관계를 성립시켰다.
천자는 모든 것의 주인으로서 제사를 통해 자연의 질서까지 지배했는데, 이 제사에서 천자를 돕는 역할을 한 집단을 경(卿)이라고 했다. 각 읍들을 다스리는 제후들도 통치를 보좌하는 관료 집단 혹은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지방을 통치할 부하 영주 집단이 필요했으므로 그들을 가(家)에 분봉해 대부(大夫) 계급을 두었다. 그리고 대부들은 자신의 가를 통치하기 위해 사(士) 계급의 도움을 받았다. 이것이 중국의 봉건제도다. 자세한 것은 봉건제도, 상나라, 주나라, 춘추시대, 전국시대 각 항목 참고.
그런데 청동기 시대 중국에서는(다른 많은 청동기-도시국가와 마찬가지로) 전쟁은 전문 전차병-무사 집단에 의해 주도적으로 수행되었다. 여기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무사 집단이 사-대부 집단으로, 최초의 사 집단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무사였다. 애초에 사(士) 라는 한자 자체가 전쟁과 제의에 쓰이던 주요 무기인 도끼를 형상화한 것이다. 지금 자형 士도 90도로 돌리면 할버드에 가까운 모양임을 확인할 수 있다.
2.1. 士 의미의 변모
그러던 것이 춘추시대 이래로 잦은 하극상과 전쟁으로[1] 신분제가 동요하기 시작하고, 전쟁이 장기화/대규모화하며 전차의 중요성은 이전보다 축소되었으며, 대신 보병의 대규모 동원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게 되었다. 군현제의 실시로 봉지를 배정받지 못한 데다가, 전차의 몰락으로 전문 직업군인이자 지배자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사대부는 다른 일에 배치돼야만 했다. 바로 행정관료로의 변신이었다. 이것이 중국 청동기 시대의 '문치'의 시작이다. 이 문치를 통해 사(士)는 점점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문사(文士)로서의 선비로 변하게 된다.하지만 아무리 문치라고는 해도 군대의 유지에는 역시 하급 지휘자 역할을 할 무예가 뛰어난 자들이 필요했고, 모든 사 계급이 문사의 형태로 이행한 것도 아니었다.
3. 여담
무사의 반대말은 '문사(文士)'이다.무인, 무신, 무관이라는 말과 뜻이 유사하다. 다만, '무신'이라는 말은 왕을 섬기는 신하라는 뉘앙스가 보다 강하며, '무관'은 무술 자체보다는 관직의 의미 혹은 그 관직에 몸을 담은 사람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일본의 사무라이나 로닌의 왜색을 빼기 위해서 무사로 번역하기도 한다.
[1] 땅의 지배권을 통해 세력을 유지하던 공경대부 집단은 잦은 국경변동으로 근거지를 잃고 세력도 깡그리 잃어버리는 일이 잦았다. 이 과정에서 군현제가 발생했다. 어제는 니 땅이고 오늘은 내 땅인데 내일은 누구 땅이 될지 모르는데 그런 땅을 섣불리 분봉했다가 전쟁에서 잃기라도 하면 휘하 사대부의 충성심을 보장할 수 없으니까 "정세가 안정될 때까지 대빵인 내가 임시로 맡아 둘게" 했던 데서 출발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