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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2:24:05

쿠툴라 칸


1. 개요2. 생애3. 사후

Qutula / 忽都剌(홀도랄) (1111? ~ 1161?)

1. 개요

쿠툴라 칸[1]은 보르지긴 오복 키야트 집단의 족장이자, 카마그 몽골의 제3대 칸이었다. 초대 군주인 카불 칸의 4남이었으며, 칭기즈 칸의 아버지인 예수게이 바아투르의 숙부였다. 금나라에 끌려가 억울하게 살해당한 제2대 칸 암바가이의 뒤를 이었으며, 예수게이가 쿠툴라 칸의 사후 뒤를 이어 키야트의 족장이 되었다. 1161년 금나라와 타타르 연합군의 공격으로 부이르 호수 전투에서 대패한 카마그 몽골은 해체되었고, 쿠툴라 칸은 전사했다. 그의 사후 1206년에 질손인 칭기즈 칸이 몽골 고원을 통일했다.

2. 생애

보르지긴 씨족으로 카이두의 증손 카불 칸의 4남이었으며, 어머니는 미상이다. 그의 둘째 형 바르탄 바아투르는 예수게이의 아버지이자 칭기즈 칸의 할아버지로, 칭기즈 칸은 쿠툴라 칸의 질손자였다. 쿠툴라 칸의 탄생일과 초기 행적은 상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쿠툴라 칸은 대식가에 술을 좋아했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하루에 양 한 마리를 먹었고, 암말의 우유로 만든 술을 엄청나게 마셨다고 한다. 또한 그는 용감한 인물로 묘사된다.

숙부인 암바가이 칸이 타타르족의 모략으로 납치되어 금나라의 폭군 해릉양왕에 의해 목마에 못박혀 처형되고 난 후, 카마그 몽골족은 오난(오논) 강 고루고나쿠 강변으로 이주했다. 암바가이 칸의 비극적인 사망 소식을 접한 몽골인들은 쿠릴타이를 열어 쿠툴라를 새로운 칸으로 선출했다. 쿠툴라 칸은 타타르와 금나라의 연합에 대응하여 케레이트족의 족장 토그릴(옹 칸)과 동맹을 맺었다.

쿠툴라 칸은 선대 암바가이 칸, 장형 오킨 바르칵과 막내 동생 투두엔 옷치긴의 납치에 대한 보복으로 암바가이 칸의 아들 카다안 타이시와 함께 타타르족 토벌에 출전했다. 쿠툴라 칸과 카다안은 코톤 카라크와 자리크부카 등이 이끄는 타타르족과 13회에 걸쳐 치열하게 교전했으나 성과를 얻지 못했다. 제13차 대타타르 원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른 부족인 두르벤에게 매복 공격을 당해, 습지로 도주하여 진흙탕에 빠졌다가 겨우 탈출하기도 했다. 이때 예수게이 바아투르와 그의 친척들은 쿠툴라 칸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습지에 빠져 말의 목까지 차오르자, 쿠툴라 칸은 안장 위에 서서 뛰어올라 진흙탕으로부터 탈출했다. 건너편에 있었던 두르벤 부족 사람들은
"말을 잃은 몽골인이 무엇이 있겠는가"
라며 추격을 포기했다. 두르벤 부족이 떠난 뒤 쿠툴라 칸은 발길을 돌려 자신의 말을 진흙탕에서 끌어냈으며, 두르벤인의 영지를 공격하여 그들의 말들을 빼앗아 카마그 몽골로 귀환했다. 쿠툴라 칸의 휘하에서 먼저 도망친 종자에 의해 쿠툴라 칸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예수게이 등에 의해 한때 장례식이 준비되기도 했다. 쿠툴라가 무사히 귀환했을 때 몽골 부족은 그의 장례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1161년 금나라의 해릉양왕은 타타르와 연합하여 카마그 몽골을 침략했다. 금-타타르 연합군은 부이르 호수 전투[2]에서 카마그 몽골군을 완전히 격파하고, 카마그 몽골을 파괴했다. 조카 예수게이가 쿠툴라 칸의 장례식을 준비했다는 것으로 보아 그 해 살해된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사망 일자는 전하지 않고 있다.

3. 사후

쿠툴라 칸의 사후, 카마그 몽골 지역의 보르지긴 씨족은 초대 카불 칸 계열의 키야트 가문과 제2대 암바가이 칸 계열의 타이치우드 가문으로 나뉘어 키야트 가문은 예수게이 바아투르가, 타이치우드 가문은 '타르고타이' 키릴투크[3]가 차지했다.

죽은 쿠툴라 칸에게는 주치[4]와 알탄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몽골비사》에 따르면 알탄은 아버지 쿠툴라 칸의 뒤를 계승하라는 주변의 권고를 물리치고, 칭기즈 칸에게 귀부했다고 한다.
[1] 또는 호툴라 칸, 쿠툴루 칸[2] 참고로 후일 북원-명나라의 전쟁에서도 부이르 호수 전투가 벌어지는데 이 때도 북원이 패배했고 얼마 못가 북원이 멸망한다.[3] 암바가이 칸의 손자[4] 칭기즈 칸의 장남 주치와는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