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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공국 Duchie de Normaundie Ducatus Normanniae | |||
존속기간 | 911년 ~ 1204년[1] / 1469년[2] | ||
위치 | 프랑스 노르망디 영국 채널 제도 | ||
수도 | 루앙 | ||
국가원수 | 공작[3] | ||
주요 공작 | 롤로(911~927) 리샤르 1세(942~996) 기욤 2세(1035~1087) | ||
언어 | 고대 노르만어, 라틴어 | ||
종교 | 가톨릭 | ||
종족 | 노르만족 | ||
성립 이전 | 서프랑크 왕국 | ||
멸망 이후 | 프랑스 왕국 |
언어별 명칭 | ||
중세 프랑스어 | Normendie | |
고대 노르드어 | Norðmanndi | |
중세 영어 | Normandie | |
라틴어 | Ducatus Normanniae | |
노르만어 | Duchie de Normaundie | |
프랑스어 | Duché de Normandie | |
영어 | Duchy of Normand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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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럽의 옛 국가.원래 이곳의 영주 노르망디 공작은 프랑스 국왕의 봉신이었으나 1066년 노르망디 공작 기욤 2세가 잉글랜드를 정복하여 잉글랜드 왕 윌리엄 1세가 되면서 노르망디 공이 잉글랜드 국왕을 겸하게 되었다. 이후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의 분쟁의 원인이 되었으며, 백년전쟁에서 프랑스가 승리하자 프랑스 왕국에 귀속되면서 소멸했다.
2. 역사
2.1. 건국
9세기 초 프랑스는 바이킹(노르드인)들의 침략으로 마구 약탈당하면서 피해가 심각했다. 바이킹은 845년 파리를 점령하고, 철수하는 대가로 막대한 배상금을 챙기기도 했다. 이에 911년 서프랑크의 '단순왕' 샤를 3세는 바이킹들과 싸우느니 차라리 그들의 힘을 인정하고, 봉신으로 부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그들 중 한 무리의 두목이었던 롤로[4]에게 센 강 하류의 노르망디 지역을 주고, 백작으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훗날 노르망디 공국으로 발전하게 될 루앙 백국이 건국되었다. 대신 롤로는 기독교로 개종하여 '로베르'(Robert)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이후 다수의 노르드인이 이 지방으로 이주하여 영지를 확장하고, 특수지역을 만들어 실질적인 독립국을 만들었으며, 차츰 프랑스화하여 노르만인이 되었다.롤로는 훗날 잉글랜드를 정복한 '정복왕' 윌리엄 1세의 고조할아버지였다. 롤로가 처음 임명될 때는 백작이었지만 증손자였던 리샤르 2세때 선정과 공적을 인정받아 공작으로 승격되었다. 롤로 이후 기욤 1세-리샤르 1세-리샤르 2세-리샤르 3세를 거쳐 로베르 1세가 즉위했다.[5] 로베르 1세는 원래 아들로는 기욤 하나뿐이었는데 하필 기욤의 어머니 에를르바가 로베르 1세와 정식 결혼하여 기욤을 낳은 게 아니었고, 그녀의 출신도 변변치 않았다. 그래서 기욤은 훗날 사생아왕[6]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을 얻게 되었다.
2.2. 기욤 2세의 잉글랜드 정복
롤로의 현손자였던 기욤은 사생아였지만 전대 공작이었던 아버지 로베르 1세의 유언에 따라 뒤를 이었으니, 그가 기욤 2세였다. 기욤 2세는 친척들의 견제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노르망디 공작 직위를 유지하고, 1066년 잉글랜드 왕국을 침공하여 헤이스팅스 전투[7]에서 해럴드 2세를 죽이고, 승리함으로써 잉글랜드 왕 윌리엄 1세가 되었다.[8] 이로써 노르만 왕조가 잉글랜드에 성립했다. 생전에 장남 로베르 2세와 충돌을 빚었던 윌리엄 1세는 로베르의 모든 상속권을 박탈하고, 죽기 직전에야 노르망디 공국을 물려주었으며, 정복지였던 잉글랜드 왕국은 그의 삼남 윌리엄 2세에게 주었다.[9] 로베르 2세는 호시탐탐 잉글랜드를 노렸고, 윌리엄 2세 사후에는 그의 동생 헨리 1세가 뒤를 이었다. 로베르 2세는 막내 동생 헨리 1세를 공격하여 잉글랜드를 뺏으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사로잡혀, 되려 노르망디 공국을 잃었다.이후 대대로 노르만 왕조의 국왕이 노르망디 공국의 공작을 겸하게 되었는데, 원래 노르망디가 프랑스 왕국 권역이었고, 잉글랜드 왕은 잉글랜드 내에서는 왕으로, 프랑스 왕의 신하가 아니었지만, 노르망디 공작으로서는 그 통치 권한이 프랑스 왕국 권역하의 프랑스 왕의 봉신 자격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노르만 왕조 이후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갈등 요소가 되었다. 프랑스 왕은 외국 왕에게 넘어간 프랑스 왕국 내 공작령을 수복하려고 했고, 잉글랜드에서는 합법적 권한으로 노르망디 통치를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노르망디 공국 및 결혼으로 얻은 아키텐 공국, 그리고 혼인으로 맺어진 프랑스 왕가 혈통을 기반으로 프랑스의 왕위까지 노렸다. 이는 결국 훗날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에서 일어나게 된 백년전쟁의 한 원인이 되었다.
2.3. 노르망디 공국의 프랑스 귀속과 그 이후
노르만 왕조가 끊긴 이후 그 뒤를 이은 플랜태저넷 왕조의 왕들도 노르망디 공국의 영토를 가지고 있었지만 존 왕 때 프랑스의 '존엄왕' 필리프 2세의 모략과 공격으로 영토가 나날이 줄어들어 1204년 채널 제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상실해 버렸다. 훗날 백년전쟁 때 잠시 소유했다가 백년전쟁이 끝난 후에는 채널 제도와 칼레를 제외하고 완전히 상실해버렸다. 백년전쟁 이후 잉글랜드가 가지고 있었던 유일한 프랑스 내 영토는 칼레뿐이었는데 이마저도 1558년 튜더 왕조의 메리 1세 때 상실함으로써 프랑스 내의 영토를 모두 상실했다.하지만 당시 노르망디 공국의 영토 중 채널 제도(저지 섬, 건지 섬 등)는 지금도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 1세의 후손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재위하고 있는 왕실의 속령이기 때문에, 영토가 엄청나게 줄어들었을 뿐 노르망디 공국은 채널 제도에 여전히 존속한다는 농담도 있다. 물론 채널 제도의 건지, 저지 자치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찰스 3세를 국왕이라 칭하지만, 아직도 채널 제도의 현지 주민들은 노르망디 공작(Duke of Normandy)이라 부른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2세가 1967년 노르망디 본토를 방문했을 때도 프랑스 국적인 노르망디 본토의 현지 주민들이 여공작 만세!(Vive la Duchesse!)라고 외치며 환호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자코바이트파는 명예혁명을 '의회가 왕을 자신들 마음대로 갈아치운 쿠데타'로 간주하여 명예혁명 이후에 즉위한 영국 역대 왕들의 정통성을 모조리 부정하기 때문에 이들의 노르망디 공작 칭호 또한 불법적으로 사용한 칭호로 여기며, 그에 따라 현 자코바이트 왕위 요구자이면서 바이에른 왕국과 그리스 왕국 비텔스바흐 왕조의 왕위 요구자이기도 한 프란츠 폰 바이에른을 명목상의 노르망디 공작으로 내세운다.
3. 역대 군주
노르망디 공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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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스터 왕조 치하 노르망디 공작 | ||||
앙리 4세 | 앙리 5세 | }}}}}}}}} |
- 롤로 911년~927년(루앙 백작)
- 기욤 1세 927년~942년
- 리샤르 1세 942년~996년
- 리샤르 2세 996년~1027년(공작으로 승작)
- 리샤르 3세 1027년~1028년
- 로베르 1세 1028년~1035년
- 기욤 2세 1035년~1087년. 헤이스팅스 전투를 통해 잉글랜드 국왕 등극.
- 로베르 2세 1087년~1106년
- 앙리 1세 1106년~1135년
이후는 프랑스에 귀속될 때까지 잉글랜드 왕이 겸직했다.
4. 여담
2018년 게임 토탈 워 사가: 브리타니아의 왕좌에서 후반 위기를 조성하는 세력으로, 바이킹 세력으로 분류된다. 인게임 후반부에 잉글랜드 남부 바다에서 등장하며, 노스 세력과 함께 논플레이어블 세력이지만 고유 로스터를 가지고 있다. 멀티플레이에서는 사용이 가능하다.[1] '결지왕' 존이 땅을 잃어 실질적으로 멸망한 시점.[2] 최종 소멸[3] 잉글랜드 왕이 겸직하기도 함.[4] Rollo. 본명은 흐롤프(Hrolfr)로 노르웨이를 통일한 하랄 1세(미발왕 하랄)의 노여움을 사 추방되었다.[5] 리샤르 3세는 로베르 1세의 아버지가 아니라 형이었다.[6] 영어: 'William the Bastard'[7] 스탬퍼드 브리지 전투에서 해럴드 2세가 하랄 3세를 격파하고 전력이 쇠해진 틈에, 기욤 2세가 헤이스팅스에서 해럴드 2세를 격파했다.[8] 윌리엄의 프랑스식 명칭이 기욤이다.[9] 차남 리샤르는 윌리엄 1세보다 먼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