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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3 00:43:34

공국


군주의 호칭에 따른 국가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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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정의3. 실존하거나 실존했던 공국(가나다순)
3.1. 현존하는 공국3.2. 과거에 존재했던 공국
4. 가상의 공국

1. 개요

한국어 공국(公國)
라틴어 Ducatus
영어 Duchy
프랑스어 Duché
이탈리아어 Ducato
독일어 Herzogtum

공작작위를 가진 영주가 통치하는 영지를 일컫는 말. Duchy/Herzogtum의 번역어로 사용된다. Duchy의 동의어로는 Dukedom이 있다.[1] 일반적인 공국과는 달리 좀 더 격이 높은 대공작(Grand duke; Gross herzog)이 다스리는 영지는 우리말로 번역상 "대공국"(Grand duchy; Gross herzogtum)이라 옮길 수 있으나, 나무위키 내에서는 어원과 개념 상 구분을 위하여 대공국 문서는 Principality/Fürstentum을 다룬다.

2. 정의

엄밀히 말해 공국이라는 한자어 번역은 서양 봉건제의 개념을 동양의 오등작에 단순 대입시키다보니 생긴 불완전한 번역에 가깝다. 백국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공작이 다스리는 지역'은 사실 '공작령'과 '공국'을 구분하지 않고 그냥 Duchy로 불렀다. 보다 후대의 Duchy는 공국이라고 번역해도 큰 무리가 없지만, 중세유럽의 Duchy는 공'국'이라기에는 차이점이 매우 크다.

공국, 공작령이라는 단어는 번역 과정에서 단순히 '공작'의 지배력이 미치는 '영토'인지 '국가'라고 부를만한 독립 세력인지 아닌지를 반영한 번역이다. 즉 국(國)은 정치체로서의 성격을, 영(領)은 영역(realm)으로서의 성격을 의도한 것. 하지만 사실 중세 유럽은 제국부터 일개 영지까지 모두 영역적 의미가 강하다. 현대에 국가의 3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인데, 봉건제 하에서 주권은 귀족의 사유물로서 매관매직 방식으로 거래되었고 영토는 일종의 부동산처럼 상속이 가능했다. 영민은 원칙적으로는 법적인 계약관계에 있을 뿐이며, 그나마도 영속되는 지위가 아니어서 사회적 귀족 신분과 법적 예속 신분이 중첩되는 등 애매한 사례들이 많았다. 예를 들자면 영국왕이 프랑스 국토의 40%를 점유하거나 명목상으로는 신성로마제국령인 베네룩스 지역이 실제로는 스페인 왕의 지배 하에 있었다는 식이었다. 서양 정치사를 살펴보면 30년 전쟁 이후에나 근대적 국가가 출현했고 프랑스 혁명 이후에나 국민의 개념이 생겼다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따라서 중세 공작령을 동양의 '번국(藩國)' 같은 하위국가적인 개념으로 보고 뭉뚱그려 '공국'이라 표현하는 것은 오류일 수밖에 없다.

반면 오등작이 도입된 중국, 나아가 동양문화권의 봉건제군국제는 달랐다. 동양에서 '공국'에 해당하는 하위 영토는 제후국이라고 불리며 직계혈족 내지는 명망있는 공신들에게 '분봉'되었으며, 책봉-조공 체계가 잡힌 이후에는 조선이나 베트남 같이 중화문명을 따르는 국가들에게 '왕작'을 내려주고 표면상으로는 제후국처럼 유지되었다. 진시황이 '황제'라는 칭호를 만든 이후 '왕(王)'이라는 칭호가 중화에선 제후국을 다스리는 지배자를 칭하는 용어로 바뀐 것이지 중국 서주시대와 춘추시대에는 '황제'라는 호칭이 없었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하는 임금들에게 '공(公)'이라는 묘호를 주었다. 제후국은 천자의 명에 따라 엄격하게 나뉜 개념이었으며, 임의로 새 제후국을 만들거나 없앨수도 없었다. 또한 제후들은 자신들의 국 안에서는 나름의 통치권을 보장받았으므로 '국(國)'이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다.

문제는 동양에서 '공(公)'이 다스리는 나라도 그 국가 자체를 부를 때는 그냥 '후국(侯國)'이라고 불렀다는 점. 일반적으로 서양사에서 후국으로 번역되는 Marquisate과 달리 동양에서 '후국'은 후작이 다스리는 국가를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라, 명목상 천자를 섬기며, 자기만의 세력을 가진 (반)독립적 통치귀족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말이었다.[2][3] 예컨대 통치귀족들을 일컫는 명칭은 제후(諸侯), 즉 '여러 후'이며 영어로 옮기면 'Princes' 정도가 된다. 특히 진승·오광의 난에서 나온 명언인 "왕(王), 후(侯), 장(將), 상(相)의 씨가 어찌 따로 있단 말이냐!"는 한자 문화권에서 각 지위를 대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데, 여기서 군주는 왕작, 봉신은 후작을 대표로 삼고 있다. 서양 중세사 용어와 대응한다면 각각 '王'-'King', '侯'-'Prince' 정도로 옮길 것이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공국이든 후국이든 백국이든 전근대 동양 봉건체계에서는 죄다 '후국(侯國)'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상당한 혼동이 발생하기 때문에 '공작이 다스리는 영토'로서의 번역어가 필요했고 이를 동양 봉건제에서 비슷한 개념을 차용함과 동시에 근대적 의미의 여러 'Duchy'들을 포함하여 만든 번역어가 바로 '공국'인 것이다. 단어 자체가 아예 오역이라고까진 볼 수 없지만 중세유럽과 근대유럽의 'Duchy'는 제후국과는 개념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본래 공작(Duke)은 군주의 호칭이 아니라 군구사령관으로서 군주에 속한 고위 귀족에게 사용하는 호칭이다. 따라서 공의 칭호는 곧 섬기는 왕이나 황제가 형식적이나마 있다는 의미가 된다. 중세 유럽에서 진짜 독립적인 국가로 행세한 경우에는 차라리 'Prince'에 대응되는 칭호를 쓰다가 유럽 기독교 세계에서 인정을 받을 때 'King'으로 갈아탔지, 'Duke'를 쓰고 지배영역을 'Duchy'라고 부르면서 독립세력으로 계속 활동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공작령이 독립 국가처럼 보일 정도로 자유롭게 활동한 것은 봉건제 자체의 특성이다. 봉건제 체제에서 군주에게 적대하거나 반항하는 것, 왕국이나 제국에 속한 것을 유지하면서도 독립적이고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군주와 거래하거나 반항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부르고뉴 공국은 그런 전형적인 케이스인데, 결국 끝까지 형식상이나마 프랑스 왕국의 하위 영역이었고 선량공 필리프의 뒤를 이은 용담공 샤를이 전사 후 아들 후사를 남기지 못하자 그 강력한 세력이 한순간에 무너져 프랑스 왕의 땅이 되고 만다.

일반적으로 귀족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위 통치작위라는 점에서는 서양의 'Duke'와 동양의 '공작(公爵)'을 대응시키는 것은 타당하다.[4] 다만, 둘의 지배성격은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에 'Duchy'와 '제후국'을 동일시해서는 안 되며, 마찬가지로 '공국'이라는 개념을 '제후국'과 동일하게 여겨서도 안 된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키텐 공국(Duchy of Aquitaine)이 프랑스 왕국의 하위 영토였는데 어떻게 별다른 정복 전쟁 없이 혼인만으로 잉글랜드 왕국에게 넘어가는지를 잘 이해하기 힘들다. 즉, Duchy의 개념 자체는 그냥 '소유하면 공작이라는 칭호를 쓸 수 있는 부동산' 그 자체로 봐야 한다. 이를 단순 봉건주의 제도 아래에서의 '공작령'인지 제대로 된 국가 기틀을 갖춘 '공국'인지를 구분지으려면 시대적 상황을 면밀히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진짜 '국가'라고 부를 수 있는 'Duchy'의 사례는 근대 신성 로마 제국 해체 후 쏟아져 나온다. 봉건주의적 잔재가 막대하게 남아 있는데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는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사라진 바, 독립국으로서 그 지위에 맞는 칭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때 많은 공국이나 선제후국(Electorate/Kurfürstentum)이 '대공국'이나 왕국으로 승격하였는데,[5] 사실 이 시대의 독일계 대공국, 왕국, 제후국들은 오히려 중세의 공작령보다도 작은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중세 이래로 신성로마황제는 공작들을 견제하기 위해 계속 공작령들을 분할하는 정책을 취해왔기 때문이다. 하여간 신성 로마 제국의 해체는 30년 전쟁도 지나고 프랑스 혁명도 지나 근대적 국가 개념이 출현하기 시작하던 때라, 이렇게 흩어진 소국들은 이전 시대와 달리 개별로 근대국가의 성격을 지녔고, 오늘날에도 룩셈부르크가 독립 대공국의 사례로 남아 있다.

공국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양판소 같은 창작물에선 공국이 나올 때 그 공국의 통치자의 지위를 공왕이라고 부르거나, 때로는 그냥 왕이라고 칭해버리는 경우가 꽤 많다. 기동전사 건담지온 공국이 통치자 데긴 소도 자비를 공왕이라 표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오역이지만, 번역상 서양 작위체계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 대중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고자 '공작' 대신에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공작이라는 단어는 대중들에게 '국가의 통치자' 보다는 '왕 아래의 고위 귀족' 느낌을 주기 때문에, '공국의 통치자'라는 지위를 동시에 표현하고자 '공(작) + 왕 = 공왕'이라는 방식으로 어휘를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엄밀하게는 '(군주인) 공작'이라고 번역해야겠지만, 한국 사회의 통념상 왕이 곧 군주로 여겨진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6]

3. 실존하거나 실존했던 공국(가나다순)

한국어에서의 역어가 "공국"인 경우가 아니라 원어 및 그것의 영어/독일어 역어로 Duchy/Herzogtum이고 군주의 호칭이 Duke/Herzog인 경우에 추가할 것. Principality/Fürstentum/Knyazhestvo/Voivodeship인 경우는 대공국 문서 참조.

한국어에서는 "공국"이나 "대공국" 등의 표기가 원래 대상의 의미를 제대로 반영하기보다는 관행적으로 굳어진 경우가 많고, 설령 영문 위키피디아 등에서 "grand duke"나 "grand duchy"로 적더라도, 영어가 아니라 원어를 확인해보면 FürstKnyaz인 경우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어원 상 다르지만 위계상으로는 자국 문화권과 유사한 위치에 있기에 의역하면서 발생한다.[7]

3.1. 현존하는 공국

3.2. 과거에 존재했던 공국

4. 가상의 공국

실제로도 그렇지만, 일반적인 군주(왕, 황제)보다는 권위나 권력이 약하면서도 그들로부터 사실상의 독립을 이룰만한 권위와 권력을 가졌기에, 후국이나 백국 등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보인다.

서양의 창작물에서는 Duchy와 Principality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지만, 동양의 창작물에서는 이를 잘 구분하지 않으므로, 단순히 공국(公國)이나 대공국(大公國)으로만 표기한 경우에는 그것이 Duchy인지 Principality인지 알기 어렵다.

[1] Dukedom은 '공작의 영지'나 '공작으로서의 지위 혹은 계급'을 가리키는 말인데, 일반적으로는 그다지 쓰이지 않는다. 이는 영어에서는 어휘를 조어할 때 같은 언어계통끼리 연결해와서인데, 로망스어 계통 어휘는 로망스어끼리, 게르만어 계열은 게르만어끼리 합성한다. 작위 대부분을 로망스어권에서 받아들인 까닭에, Duke와 Count, Viscount, Baron, Baronet 등은 모두 접미사로 "-y"가 붙었다. 반면 King과 Earl은 각각 앵글로색슨 고유어노르드어에서 비롯하였으므로 게르만어로서 접미사 "-dom"이 붙은 것이다. 참고로 dom의 동원어로는 독일어 "-tum"이 있는데, 본문에서 나오듯 공작을 가리키는 독일말 Herzog와 합성되었다.[2] 당장 '후국'으로 통칭되는 국가들을 살펴보면, 제나라(齊)나 고죽국(孤竹)처럼 군주가 후작인 곳도 있지만, 송나라(宋)와 노나라(魯) 같이 공작이 통치자이거나 정나라(鄭)처럼 백작이 다스리는 곳도 있었다.[3] 중세 유럽사에서는 이와 유사한 용법을 쓰는 용어가 더 있다. 흔히 남작으로 번역하는 Baron은 때때로 군주의 직속 봉신을 모두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이때 Baron에는 소규모 영주(남작)으로서의 Baron 뿐만 아니라 공작(Duke), 백작(Count) 중 군주의 직속 봉신인 자들을 모두 포함하였다. 요컨대 여기서의 Baron은 일개 남작이 아니라 같은 주군을 모시는 봉신들을 통칭하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4] 엄밀하게는 군왕(郡王)이나 국왕(國王) 등 통치작위로서의 왕작(王爵)인, 번왕(藩王)이 있지만, 그다지 일반적인 작위는 아니었다. 하술할 진승·오광의 난 단락을 보듯, 왕작의 격하는 진나라 시대에 군주로서 황제 개념이 탄생하면서부터 진행되었으므로 오랜 기간 군주를 상징하는 지위로서 인식되었다.[5] 마치 대한제국 선포 직전 청나라와의 조공관계는 청산했지만 황제국 선포는 하지 않은 조선이 '대군주' 등의 칭호를 쓴것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6] 이와 비슷한 사례가 바로 한국 사극을 중국에서 수입해 번역하는 경우다. 한국에서는 '왕'이라는 칭호가 군주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지지만, 황제가 군주였던 중국에서는 '황제'가 그 느낌을 대신하고 '왕'은 황태자나 그에 준하는 혈족, 내지는 명망있는 신하가 분봉받는 작위의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조선 황제' 같은 식으로 번역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7] 일반적으로 서유럽권에서는 영역제후로서의 prince에 해당하는 작위가 존재하지 않았고, 반면 동유럽권에서는 영역제후로서의 duke에 해당하는 작위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둘 다 각자 문화권에서는 공-백-남의 기본 작위체계 중 공에 해당하였기에, 자연스럽게 양자의 지위를 대응시켜 번역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 두 단어가 서로 같은 말인 것은 아니거니와, 세부적으로는 서유럽권에서도 소수의 prince가 영역제후로서 존재하거나 동유럽권에서도 명목상 작위로서 gersog(herzog; duke)가 존재하기도 하였으므로, 양자를 일률적으로 동치시키면 안 된다. 특히 중부유럽의 독일어권에서는 fürst(prince)와 herzog(duke) 모두 영역제후로서 존재했었기에 혼란이 더 가중될 수 있다.[8] 예외로 이쪽은 Grossherzogtum(Grand duchy)이 아니라 Erzherzogtum(Archduchy)이다. 그 이유와 차이점은 오스트리아의 대공 참고.[9] 신성 로마 제국이 존속하던 시절에는 브란덴부르크로 더 많이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