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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부코비나 공국 Herzogtum Bukowina(독일어) Ducatul Bucovinei(루마니아어) Герцогство Буковина(우크라이나어) | ||
국기 | 국장 | |
파일:Bukowina(kaiserlich und königlich).png | ||
1775년 ~ 1918년 | ||
위치 | 중동부 유럽 부코비나 | |
수도 | 체르노비츠(체르니우치) | |
정치 체제 | 전제군주제 | |
국가 원수 | 공작 | |
공용어 | 독일어, 루마니아어, 우크라이나어 | |
역사 | 1775년 성립 1918년 해체 | |
통화 | 굴덴, 크로네 | |
성립 이전 | 몰다비아 공국 | |
해체 이후 | 루마니아 왕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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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775년부터 1919년까지 현재의 루마니아, 우크라이나의 부코비나에 존재했던 공국이다.부코비나라는 지명 자체가 부코비나 공국이 수립되면서 처음 등장했으며, 너도밤나무를 뜻하는 슬라브어 부크(Buk)에서 유래했다. 즉 부코비나는 '너도밤나무의 땅'이라는 뜻으로 이 지역에 너도밤나무가 많이 자라는 것을 보고 붙인 것이다. 부코비나를 가리키는 또다른 명칭인 독일어 부헨란트(Buchenland)나 루마니아어 차라파길로르(Țara Fagilor) 역시 '너도밤나무의 땅'이란 뜻으로 부코비나의 유래와 일맥상통한다.
2. 역사
제1차 폴란드 분할로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갈리치아를 손에 넣은 합스부르크 왕가는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과 에르데이 대공국을 연결하고 싶었다. 이에 1774년, 요제프 2세는 갈리치아와 에르데이 사이에 위치한 몰다비아 공국의 서북부 일부를 점거한 다음 이 지역을 내놓으라고 몰다비아 공국의 종주국인 오스만 제국을 협박하였고, 1775년 현지에 부코비나 공국을 신설하여 정식으로 합스부르크 제국의 일부로 병합하였다. 1776년, 팔라무트카 조약으로 오스만 제국은 일부 영토를 돌려받는 조건으로 합스부르크 제국의 부코비나 병합을 인정했다.[1] 1804년, 오스트리아 제국에 편입되었으며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에 속해있었다. 1867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수립되면서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에서 분리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구성국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하면서 부코비나 공국은 루마니아 왕국으로의 편입을 선언했다. 1919년, 생제르맹 조약이 체결되면서 루마니아 왕국의 부코비나 공국 합병은 주요 국가들의 승인을 받았다.
1940년, 루마니아 왕국은 소련에게 베사라비아와 북부 부코비나를 빼앗겼다. 북부 부코비나는 이후 우크라이나 SSR에 편입되었으며, 소련 붕괴 이후에는 베사라비아 동북부와 함께 우크라이나의 체르니우치주가 되었다. 남부 부코비나는 오늘날 루마니아의 수체아바 주로 남아있다.
3. 사회
본래 몰다비아 공국의 영토였던 만큼 루마니아인 거주 지역이었으나 낙후된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에서 다수의 우크라이나인이 넘어오면서 1880년부터는 우크라이나인이 루마니아인의 숫자를 넘어섰다. 이는 훗날 소련이 루마니아로부터 우크라이나인 다수 거주지역이었던 부코비나 북부를 빼앗아가는 근거가 되었다.[1] 그와중에 부코비나 양도에 강하게 반대한 몰다비아 공작 그리고레 3세 기카는 파디샤의 명을 거스른 죄로 압뒬하미트 1세에 의해 암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