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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15:15:14

오토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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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대관식을 받은 적이 없는 로마왕이지만 사실상 황제였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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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로마 제국 벨프 왕조 초대 황제
오토 4세
Otto IV
파일:Ottta4Brunsvicky.jpg
<colbgcolor=#ffcc20><colcolor=black> 제호 오토 4세 (Otto IV)
출생 1175년
브라운슈바이크
사망 1218년 5월 19일 (향년 43세)
하르츠부르크
재위기간 신성 로마 황제
1209년 ~ 1215년
이탈리아 국왕
1208년 ~ 1212년
부르군트 국왕
1208년 ~ 1215년
로마왕
1198년 ~ 12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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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cc20><colcolor=#000> 배우자 슈바벤의 베아트릭스
브라반트의 마리아 (1214년 결혼)
아버지 하인리히 사자공
어머니 영국의 마틸다
형제 마틸다, 하인리히, 로타르, 빌헬름
종교 가톨릭 }}}}}}}}}

1. 개요2. 유년 시절3. 즉위 이후4. 그 외5. 대중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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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어: Otto IV. (오토 4세)
이탈리아어: Ottone IV (오토네 4세)
라틴어: Otto IV (오토 4세)

벨프 가문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며, 독일왕, 부르고뉴 국왕, 이탈리아 국왕.

벨프 가문에서 배출한 유일한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다. 가문의 라이벌 호엔슈타우펜 가문과 치열한 권력 다툼으로 대립왕 선출을 거쳐 정식으로 황제 대관식을 치렀으나 결국 교회 역사상 최고의 권력을 휘둘렀던 교황 인노첸시오 3세가 그에 대한 지지를 거두고 호엔슈타우펜 가문으로 돌아선 후 퇴위했다.

2. 유년 시절

오토 4세는 바이에른작센공작하인리히 사자공잉글랜드 왕국 출신의 마틸다 공작부인의 3남으로 태어났다.

오토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 하인리히 사자공이 독일에서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 황제와 치열한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오토는 외갓집인 잉글랜드 궁정에 보내져 외할아버지인 잉글랜드 국왕 헨리 2세의 보살핌 아래 잉글랜드에서 자랐다. 잉글랜드 궁정에서 자라면서 오토는 독일어프랑스어를 매우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1]

오토가 5살 때인 1180년 아버지 하인리히 사자공이 바르바로사 황제와의 분쟁에서 패하여 법익(法益) 피탈자[2] 처벌을 받아 모든 작위를 박탈당하고 영지를 몰수당하게 되자, 오토를 무척 귀여워했던 외삼촌 사자심왕 리처드 1세는 오토를 자신의 양자로 삼고 모든 작위와 권리를 상실한 친부 사자공을 대신해 오토의 법적 후견인 역할을 자처했다. 나중에 오토가 성인이 되어 신성 로마 제국 제위를 놓고 호엔슈타우펜 가문과 치열하게 다툴 때, 외삼촌들인 리처드 1세존 왕이 오토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하인리히 사자공이 브라운슈바이크를 제외한 모든 영지와 작위를 몰수당하면서 벨프 가문이 완전히 듣보잡 가문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졌지만, 오토를 중심으로 벨프 가문이 금방 다시 일어나 황제선거에 출마할 수 있었던 것은 제국 내의 친 벨프 가 세력의 지원 뿐만 아니라 외갓집인 잉글랜드 왕실의 지원이 크게 작용했다.

1190년 제3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하여 잉글랜드를 떠났고, 리처드 1세는 오토를 요크 백작에 임명했다. 이어 1196년 리처드 1세는 오토에게 아키텐, 푸아티에 백작 자리도 물려주었다. 오토는 프랑스 왕국에 대항하는 전쟁에서 리처드 1세의 편을 들어 참전했다.

3. 즉위 이후

황제 하인리히 6세가 죽자 신성 로마 제국의 주요 제후들은 하인리히 6세의 형제인 슈바벤 공작 필리프를 1198년 독일왕으로 선출했다. 이 제후들은 필리프에게 돈을 받고 필리프에게 지원을 하는 대신 이익을 받기로 약속을 받아낸 상태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른 제후들은 호엔슈타우펜 가문에 반기를 들었고 리처드 1세의 주도로 대신 벨프 가문의 구성원을 독일왕으로 선출하기로 결심했다. 오토의 형 하인리히는 십자군 전쟁에 참가하고 있어 오토에게 선택을 맡겼다. 한편 교황 인노첸시오 3세시칠리아 왕국신성 로마 제국이 한 사람의 군주 아래에서 통일되는 것을 차단하기로 했다.

오토 또한 인노첸시오 3세가 어떤 요구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느꼈다. 제국의 혼란을 틈타서 인노첸시오 3세는 하인리히 6세가 임명한 안코나, 스폴레토, 페루자의 제국 영주들을 추방했다. 같은 때 인노첸시오 3세는 토스카나에 있는 도시들에게 "산 제네시오 리그에 참가하거나 이탈리아반도에서 신성 로마 제국의 이익에 대항하는 토스카나 동맹에 참가하라"고 부추겼다. 결국 도시들은 스스로 인노첸시오 3세의 보호 아래 들어갔다. 교황의 총신은 곧 북서쪽과 하 라인강 지역 북독일의 제후들이 1198년 6월 쾰른에서 독일왕을 선출하는 것을 인정했다.

오토 4세는 대관식이 열리는 장소인 아헨을 통제했고 1198년 7월 12일 쾰른 대주교 아돌프가 주는 왕관을 받았다. 이때부터 쾰른 대주교만이 독일왕 대관식을 치르는 상징이 되었다.[3]

필리프가 죽자 오토는 호엔슈타우펜 왕조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필리프의 딸 베아트리체와 약혼했다. 1208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왕으로 선출될 때 그는 그의 어떤 자식들도 아버지를 대신하여 제위를 세습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해 모든 선제후들의 지원을 얻었다.

1209년 이탈리아반도로 내려가 교황 인노첸시오 3세와 화해하고 동년 10월 4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다시 대관식을 거행하지만, 바로 그 다음 해에 시칠리아로 원정을 떠났다가 교황에게 파문당했다. 황제에게 불만을 품은 독일 제후들은 프리드리히 2세를 새로운 독일왕으로 선출했다.

이렇게 제국 내부의 내전과 갈등이 이어지던 중, 1214년에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의 전쟁에서 잉글랜드의 존 왕 편을 들어 참가했지만 부빈 전투에서 완전히 개발리는 대패의 치욕을 당한다. 자세한 사항은 필리프 2세 참조.

결국 오토 4세는 부빈 전투의 패배로 인해 황제 자리에서 퇴위하고, 병으로 인해 3년 뒤인 1218년에 사망한다. 죽을 때까지 교황에게 파문을 철회해달라고 청원했다고...

4. 그 외

5. 대중 문화

파일:attachment/오토 4세/오토4세.png
징기스칸 4 일러스트

징기스칸 4 시나리오 1에서 신성 로마 제국 장수로 등장한다. 능력치는 정치 61, 전투 47, 지모 51.

[1] 당시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층은 대부분 노르망디를 비롯한 프랑스계 귀족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외할머니인 엘레오노르 다키텐부터 프랑스 왕국의 대영주였다.[2] 법의 보호를 박탈당한 사람, outlaw[3] 이 전통은 1562년 막시밀리안 2세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황제선거가 끝나고 마인츠 대주교가 주관하는 대관식을 치르면서 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