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타뉴 공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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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FFFF><colcolor=#000000> 브르타뉴 공작 코난 4세 Conan IV | ||
이름 | 코난 4세(Conan IV) | |
출생 | 1135년에서 1138년사이 | |
잉글랜드 왕국 | ||
사망 | 1171년 2월 20일 (향년 32~36세) | |
브르타뉴 공국 갱강 | ||
재위 | 브르타뉴 공국의 공작 | |
1156년 ~ 1166년 | ||
아버지 | 알란 드 팡티에브르 | |
어머니 | 베르테 | |
누이 | 콩스탕스, 에노겐 | |
배우자 | 헌딩턴의 마가렛 | |
자녀 | 콩스탕스, 기욤, 마르그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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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르타뉴 공국의 공작.2. 생애
1135년에서 1138년 사이에 잉글랜드 왕국에서 초대 리치먼드 백작 알란 드 팡티에브르와 베르테 사이의 아들로 출생했다. 누이로 콩스탕스[1], 에노겐[2]이 있었다. 1146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어머니와 함께 브르타뉴로 돌아왔고, 어머니는 포허 자작 에우돈 2세와 재혼했다. 1148년, 조부 코난 3세는 다들 합법적인 자식으로 여기고 있던 호엘 3세가 사생아라고 주장하며 그의 상속권을 박탈하고, 베르테가 첫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손자 코난 4세를 상속인으로 삼고, 베르테를 브르타뉴 여공작으로 세우겠다고 선언했다.이후 코난 3세가 눈을 감았지만, 호엘 3세는 베르테의 집권을 용납하지 않고 낭트 일대에서 할거하며 브르타뉴 공작을 칭했다. <브르타뉴 연대기>에 따르면, 호엘 3세는 코난 4세의 섭정이자 계부인 포허 자작 에우돈 2세에게 굴복해 브르타뉴 공작에서 사임했다고 한다. 하지만 1153년부터 다시 공작을 칭하고 브르타뉴 공작으로서 헌장을 발표했다. 1154년, 코난 4세는 성년이 된 자기에게 권력을 돌려주지 않는 계부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는 호엘 3세와 손잡고 에우돈 2세와 전쟁을 벌였지만 패배해 리치먼드 백국으로 피신했다. 하지만 이내 세력을 재정비해 브르타뉴로 돌아와서 1154년 12월 16일 레제 인근에서 에우돈 2세를 물리치고 브르타뉴 외곽으로 쫓아냈다. 1156년, 호엘 3세는 낭트 사람들에 의해 추방되었고, 낭트 시민들은 앙주와 멘 백작인 앙리 2세의 남동생인 조프루아 6세를 낭트 백작으로 추대했다.
1158년 7월 조프루아 6세가 사망하자, 코난 4세는 즉시 낭트를 장악했다. 이에 잉글랜드 국왕이자 그의 주권자를 자처한 헨리 2세가 리치먼드 백작령을 일시적으로 압수하고 노르망디에 상륙한 뒤 브르타뉴로 진격하려 하자, 코난 4세는 1158년 9월에 아브랑슈로 달려가서 헨리 2세에게 경의를 표하고 낭트 백국을 넘기는 대가로 리치먼드 백작령을 돌려받았다. 1160년 스코틀랜드의 국왕 말 콜룸 4세의 누이인 헌딩턴의 마가렛과 결혼했다. 이후 1156년부터 1164년까지 잉글랜드에 오랫동안 거주했다.
1160년대, 코난 4세는 삼촌인 트레고르 백작 앙리와 갈등을 벌인 끝에 갱강을 몰수했고, 이곳을 거점으로 삼았다. 그러나 돌콤부르(Dol-Combourg) 영주 장 2세, 푸제르 남작 라울 2세, 레옹 자작 기요마르크 4세는 그의 권위에 불복하고 포허 자작 에우돈 2세와 함께 음모를 지속적으로 꾸몄다. 1166년, 포허 자작 에우돈 2세가 여러 귀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브르타뉴 대부분을 석권했다. 이에 코난 4세는 앙제로 이동한 뒤 1166년 7월 31일 헨리 2세와 접견해, 자기 딸이자 후계자인 콩스탕스를 헨리 2세의 넷째 아들인 제프리와 약혼시키고, 두 사람에게 브르타뉴 행정부를 맡기고 퇴위했다. 이후 헨리 2세는 1168년 군대를 이끌고 브르타뉴로 진군해 조슬랭을 접수한 뒤 에우돈 2세의 영지인 포허를 약탈했고, 에우돈 2세와 추종자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헨리 2세에게 복종했다.
그 후 코난 4세는 갱강에서 지냈으며, 아내 마가렛과 함께 렌의 성마들렌 수도원, 생조르주 수도원, 베가르드 수도원, 노트르담뒤니오멜 수도원, 그리고 캥페를레의 성 십자가 수도원들에게 여러 차례 기부했으며, 헨리 2세를 앙제와 아브랑슈에서 여러 차례 접견했다. 1171년 2월 20일에 갱강에서 사망했고, 베가르드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3. 가족
- 헌딩턴의 마가렛(1145 ~ 1201): 스코틀랜드 국왕 다비드 1세의 둘째 아들인 헌딩턴 백작 헨리의 딸, 스코틀랜드 국왕 말 콜룸 4세의 누이. 코난 4세가 사망한 뒤 잉글랜드 무관장인 험프리 드 보훈과 재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