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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9 17:30:05

송성일

1. 정치인2. 보이그룹 Apeace의 멤버3. 대한민국의 레슬링 선수

1.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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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보이그룹 Apeace의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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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한민국의 레슬링 선수

1969년 8월 8일 ~ 1995년 1월 29일 (향년 25세)

대한민국의 前 레슬링 선수. 경기도 과천시 출신.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의 레슬링 금메달리스트로 당시 레슬링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10월 5일 남자 그레코로만형 -100kg 경기에서 카자흐스탄의 비탈리 레이키네프 선수를 상대로 4:0으로 승리하여 금메달을 따내어 한국 레슬링계의 위상을 드높였다. 그때 위암이라는 만신창이의 몸을 이끌고 금메달을 딴 직후 이제 시작입니다. 다시 전진할 겁니다. 라는 인터뷰로 심금을 울렸다. 귀국한 직후에는 공항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개인적으로 3회 연속 아시아 정상에 올라 뭐라 말할수 없이 기쁩니다. 또한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라고 답하였다.

한편 1992년부터 원인불명의 속쓰림에 위장약을 수시로 먹으면서[1] 자주 병원을 찾다가 1994년 5월에 최종적으로 위암 4기 판정을 받는다. 하지만 위암 임에도 불구하고 약물치료를 받게되면 국가대표에서도 자격이 박탈되어 탈락이 될까봐 몰래 병을 숨기고 힘든 훈련과 항암치료의 고통스러운 투병을 계속해왔다. 당시 진통제가 없이는 생활이 불가하여 종양 제거 수술과 신경차단 수술을 받고 물 한모금도 입에 대지 못했다고 한다.

대회 이후에도 병원에 입원하면서 1994년 11월에 MBC 뉴스데스크와의 인터뷰에서 투병기를 취재할 때 원래 모든 시합은 끝나봐야 아는 거예요. 최선을 다해서 악착같이 살 거라구요.라는 말로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으며 그만큼 삶의 의지를 놓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위암으로 병원에서 투병하다가 대회가 끝난 지 반 년도 채 안돼서 세상을 떠났다. 사망 직전에 안구를 비릇한 장기 기증을 원했지만 암 환자였고 진단 결과 암세포가 뼈와 온 신경에 전이된 상태라 불발됐다. 당시 상무 소속이었던 그는 사후 군무원 신분으로 체육인으로는 최초로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사후에 장례식에서 체육훈장 백마장이 추서되었다.

더 안타까운 건 그의 사후 1년 뒤인 1996년에 어머니 이금순 여사도 아들을 따라갔고[2] 하나밖에 없던 남동생인 송성대 역시 1998년에 어머니, 형과 같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족으로 신장 197cm, 체중 108kg의 다부진 체격에 잘 생기기까지 해서 일본 격투계, 특히 마에다 아키라가 직접 스카우팅을 시도했었다고 한다.


[1] 이 때문에 동료 선수들로부터 "미스터 겔포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2] 이미 1991년에 위암 수술을 받은 상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의 병환 소식은 1987년에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발탁돼서 웨이터, 선원생활 등으로 방황하던 그를 다잡게 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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