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송채원(宋彩源) |
출생 | 1872년 3월 4일 |
사망 | 1935년 8월 1일 (향년 63세) |
출생지 | 경상도 밀양도호부 하동면 율동리 (현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율동리) |
추서 | 대통령표창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송채원은 1872년 3월 4일 경상도 밀양도호부 하동면(현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율동리에서 태어났다.1924년 음력 3월경 동지 김찬규(金燦奎)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견원으로서 국내에 왔다는 '김보현(金普鉉)'이란 사람으로부터 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 명의로 '이 사령서의 소지자를 군정서 총무국장에 임명한다'는 취지의 사령서를 입수하였다. 이에 김찬규는 신석원 등과 함께 그해 음력 7월 말경 이 사령서를 토대로 같은 내용의 사령서 약 70매를 더 제작하였다. 그리고 이를 신기균 등 5명에게 배부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고 동지를 규합하기로 결의하였고 곧 실천에 옮겼다.
그는 음력 8월경 김찬규와 신석원 등으로부터 이 사령서를 전해받아 집에 숨겨둔 후, '임시정부 군정서 총무국장'으로서 밀양군 지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군자금 모집활동을 벌이던 중, 1926년 1월 밀양에서 경상북도 경찰부 고등계 형사에게 체포되었다.
1926년 3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증빙인멸·다이쇼 8년(1919) 제령 제11호 위반·출판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6개월(미결 구류일수 중 40일 본형에 산입)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옥고의 여독으로 고통받다가 1935년 8월 1일 사망하였다.
199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