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13:30:10

수전 앳킨스

수잔 에킨스에서 넘어옴
맨슨 패밀리
[ 펼치기 · 접기 ]
파일:Susanatkins1.jpg
수전 앳킨스
Susan Atkins
<colcolor=#fff> {{{#!wiki style="margin: 0px -10px"
노년의 모습 ▼
파일:f3df4df2424f435d8dcdc5cf1e7aab0e.jpg
}}} ||
본명 수전 데니스 앳킨스
Susan Denise Atkins
이명 세이디 메이 글러츠[1]
섹시 세이디
세이디 맨슨
죽음의 천사
베이비 킬러
사탄의 아이
샤론 킹
맨슨 걸
출생 1948년 5월 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게이브리얼
사망 2009년 9월 24일 (향년 61세)
미국 캘리포니아주 차우칠라
센트럴 캘리포니아 여자 교도소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장 160cm
죄목 마약, 1급 살인, 살인 음모
형량 사형무기징역[2]
배우자 도널드 리 레이저 (1981년 ~ 1982년, 이혼)
제임스 W. 화이트하우스 (1987년 결혼)
자녀 제조조스 재드프랙 글러츠[3] (1968년 10월 7일생)
종교 기독교
1. 개요2. 생애3. 범행
3.1. 개리 힌먼 살인사건 연루3.2. 폴란스키가 살인
4. 처벌5. 여담

[clearfix]

1. 개요

미국의 범죄자. 범죄 집단인 맨슨 패밀리의 일원이자 테이트 - 라비앙카 살인사건직접 가담한 4인방[4] 중 한 명이다.

아름다운 외모로 유명한데, 겉보기로는 상상할 수 없는 잔혹한 살해 수법으로 인해 60명가량의 맨슨 패밀리 구성원 중에서도 수장인 찰스 맨슨 다음으로 악명이 높다.

2. 생애

1948년 미국의 샌게이브리얼에서 태어났다. 앳킨스에 따르면 부모님은 두 명 다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 였다고 한다. 10대에는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있는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암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를 간호하는 등 성실하게 살았다.

그러나 15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으로 사망하자 그녀는 크게 방황한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알코올 중독자였던 앳킨스의 아버지는 앳킨스를 친척 집에 맡겨버리는데 이때 앳킨스는 여러 친척 집을 옮겨 다니는 생활을 적응하지 못하고 가출한다. 이후 방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유흥의 길로 빠져들게 되는데, LA에서 스트리퍼로 일하는 등 유흥업소를 전전하게 된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며 노숙자 생활을 하게 되었고, 이후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는 찰스 맨슨을 만나게 된다.[5] 이후 앳킨스는 히피 문화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맨슨을 예수라고 믿을 만큼의 추종자가 된다.

3. 범행

3.1. 개리 힌먼 살인사건 연루

앳킨스는 폴란스키가 살인 사건을 벌이기 전에도 살인 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는데, 이후 사건의 임팩트가 워낙 크기도 하고 직접 살해에 가담한 건 아니다 보니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맨슨 패밀리의 일원의 지인이었던 '개리 힌먼'이란 인물이 막대한 돈을 상속받게 된다는 소문이 나돌았는데, 맨슨은 그가 공동체에 합류해 상속받은 재산의 일부를 기부하기를 바랬다.

1969년 7월 25일 맨슨은 수잔 앳킨스, 바비 보솔레일, 메리 브루너를 힌먼의 집으로 보내 그를 맨슨 패밀리의 합류하도록 설득했다. 하지만 힌먼은 '상속받은 돈이 전혀 없다'며 멤버들의 제안을 거절했고, 이때 보솔레일은 힌먼을 심하게 구타한다. 이후 힌먼이 돈이 없다는 거짓말을 한다고 맨슨에게 일러바치는데, 이를 보고받은 맨슨은 분노하여 직접 힌먼 앞에 나타나 그에게 칼을 휘둘러 얼굴에 상처를 내고 귀를 심하게 베었다. 이후 맨슨은 앳킨스와 브루너에게 그를 치료하라고 명령한다.

이틀후, 맨슨의 전화를 받은 보솔레일은 힌만에게 강제로 서명을 하게 한 다음 칼로 두 번 찔러 살해한 후 벽에 'Political Piggy'라는 글씨와 손자국을 피로 새긴다. 이후 1969년 8월 7일 차에서 죽어있는 힌만이 발견되자 보솔레일은 체포된다. 보솔레일은 체포 당시 피로 얼룩진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고 한다. 흉기는 힌만의 차 트렁크에서 발견 되었다. 보솔레일은 사형 선고를 받은 이후 무기 징역으로 감형되었고 지금까지 수감 중이다. 이 사건 때는 보솔레일을 제외한 찰스 맨슨, 수잔 앳킨스, 메리 브루너는 처벌받지 않았다.

3.2. 폴란스키가 살인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테이트 - 라비앙카 살인사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처벌

파일:수전 앳킨스 재판받으러 가는길.jpg
1969년 12월, 재판을 받으러 가는 수전 앳킨스
▲ 재판을 받으러 가기 전 노래를 부르는 맨슨 걸즈[6]

1971년에 앳킨스 일당과 살인을 배후 지시한 찰스 맨슨은 샤론 테이트를 살해한 혐의에 대한 재판을 받았다. 검찰 증언을 조건으로 기소 면제 처분을 받은 린다 카사비앙을 제외한 나머지 4명 모두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그 이듬해 캘리포니아주에서 사형 제도가 폐지되면서 졸지에 무기 징역으로 형이 감형되었다.

앳킨스는 징역을 사는 동안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교도소 내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7], 봉사 활동을 하며 지난날의 과오를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다. 범죄를 저지를 당시의 범죄의 죄질이 나쁜 데다가 원래 사형이었으나 사형 폐지 처분에 따라 감형된 상태라서 가석방 심사는 계속 탈락했다.

30대 때 수전 앳킨스를 좋아한 남자와 옥중 결혼을 하기도 했다가 다음 해 이혼했다. 남자는 수전 앳킨스의 외모를 좋아한 남자였다고 한다. 중년 이후에도 옥중 결혼을 하였는데 상대는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로 재학 중 15살 연상의 앳킨스와 결혼하였다.

앳킨스는 뇌종양에 걸렸고 2009년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가석방을 신청하였으나, 2009년 9월 2일 수전 앳킨스의 가석방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8] 결국 앳킨스는 2009년 9월 24일 교도소 병원에서 향년 61세로 옥사하였다.
파일:ap_090902043273_susan-atkins-e0bfcabf-58b6-463a-bc21-990c34527da3.jpg
2009년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
파일:art.atkins.cdc.jpg
임종 직전의 모습[9]

앳킨스는 38년 동안이나 캘리포니아 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이는 캘리포니아 교도소 역사상 두 번째로 긴 여성 장기 복역수였다.[10] 앳킨스 본인도 일생의 3분의 2에 달하는 기간 동안 징역을 살았다.

수형 생활 중에 자신의 범죄에 대해 용서를 빌고 교정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11] 맨슨 패밀리에 가담하여 연쇄 살인자가 되기 이전의 삶 특히 성장 과정이 가혹했기에 동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12]

게다가 80년대부터는 아예 범죄 자체를 부인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호주 티비 프로그램 '60Minutes Australia'에서 수전 앳킨스를 인터뷰하며 그녀가 한 발언을 사건을 맡았던 담당 검사에게 전해주자 황당해할 정도였다. 내용인즉슨 자신은 그 누구도 죽인 적이 없으며 살인의 주축은 찰리 왓슨 등 맨슨 패밀리의 남성들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죄라곤 단지 맨슨 패밀리의 일원이었으며, 저 사건 당시 적극적으로 막지 않은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담당 검사는 수전 앳킨스는 변하지 않으며, 자신의 19년 경력 중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범죄자였다고 평했다. 심지어 그녀를 가장 믿고 가석방에 찬성하던 담당 신부조차도 교화는 됐어도 그녀가 실제로 살인을 한 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고 할 정도였다. 덧붙여 샤론 테이트의 모친도 수전 앳킨스는 사건 이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에게 'Sorry'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했는데, 그걸 들은 수전 앳킨스는 자신이 한 짓을 'Sorry' 같은 표현으로 사과하긴 싫었다고 말했다.

5. 여담

파일:수잔 앳킨스2.jpg
파일:Susan_Atkins.webp


[1] Sadie Mae Glutz. 찰스 맨슨과 수잔 앳킨스를 위해 위조 신분증을 만들던 한 남자에 의해서 지어진 별명이라고 한다. 실제로 맨슨 패밀리 일원들은 앳킨스를 호명할 때 수전 앳킨스라는 이름보다 '세이디'라는 호칭을 사용했다.[2] 1971년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공교롭게도 1972년 캘리포니아주에서 사형이 폐지된 탓에 감형되었다.[3] Zezozose Zadfrack Glutz[4] 수잔 앳킨스, 찰스 텍스 왓슨, 레슬리 반 휴튼, 패트리샤 크렌빈켈[5] 당시 맨슨을 처음 봤을 때 기타를 치고 있었다고 한다.[6] 왼쪽부터 패트리샤 크레빈켈, 레슬리 반 휴튼 그리고 수전 앳킨스.[7] 다만 앳킨스 말고도 미국의 장기수들 중에 오랜 수감 기간 동안 자기계발에 참여하여 학사 학위를 따는 사람들이 많다. 앳킨스 외에 끝까지 반성하지 않은 맨슨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도 가석방은 되지 못했으나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교화되어 성실하게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8] 샤론 테이트의 큰여동생 데브라는 "앳킨스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그녀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전까지는 교정 시설의 통제된 환경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라며 가석방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9] 우측 남자는 앳킨스와 옥중 결혼을 한 제임스 화이트하우스이다.[10] 최장기 복역수는 같은 범죄를 저지른 패트리샤 크렌빈켈이다. 크렌빈켈은 2017년 기준으로 [age(1971-04-28)]년째 복역 중이며 앳킨스와 같은 이유로 가석방 심사에서 13번 탈락했다.[11] 다른 맨슨 패밀리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으로, 찰스 맨슨은 가석방 위원회 참석도 않고 휴대폰을 소지하다가 적발되는 등 전혀 반성하는 태도가 없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인 찰리 왓슨과 패트리샤 크렌빈켈은 종교에 귀의하는 등 나름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한편 학사 학위를 취득하는 등 교도소 측의 교정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12] 체포 이후 찍은 사진들을 보면 패트리샤 크렌빈컬처럼 웃는 사진이 꽤 많은데, 당시 그녀의 추악한 인성 혹은 범행 전에 복용한 LSD의 영향일 수도 있다. 찰스 맨슨 이외에 나머지 일당들은 잡힌 직후에는 웃고 있지만 60살이 넘어서는 하나같이 우울한 모습밖에 없어서 대조된다.[13] 때문에 여타 다른 흉악범들보다 유독 별명이 많다.[14] 구글에 앳킨스의 아들 이름을 검색하면 남자 사진이 나오는데 그 사진 속 인물은 앳킨스의 아들이 아닌 찰스 텍스 왓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