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6-09 03:09:44

숯고개


1. 개요2. 이야깃거리

1. 개요

충청북도 옥천군 군서면 오동리(梧桐里)와 군북면 자모리(自慕里) 사이 식장산 중 허리에 있는 고개.

2. 이야깃거리

이 곳은 옛날에 신라백제국경 지대로서, 군사상 요충지였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백제 의자왕(義慈王)은 왕위에 오른 뒤 선정을 베풀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교만과 사치가 심하여 정사를 그르치기가 예사였다 한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신라는 태종 무열왕(武烈王)이 즉위하고 김유신(金庾信)을 비롯한 훌륭한 인물이 있었고, 백성들이 일치단결하여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져가고 있었다. 그 뒤 신라는 백제를 치기 위하여 당나라에 지원군을 은밀히 요청하였다. 당시 당태종소정방(蘇定方)등에게 명하여, 수륙군(水陸軍) 10만을 파병시켜, 나·당연합군을 만들어 백제를 치게 되었다.

이에 앞서, 백제의 충신 성충(成忠)은 옥중에서 간언하기를, "머지 않아 반드시 신라군의 침공이 있을 것이니 육지로 쳐들어오는 적은 탄현(炭峴)을 넘지 못하게 하고, 수로로 침공해오는 적은 백강(白江 ; 白馬江, 현 錦江)에 들어오지 못하게 방비해야 한다"고 일렀다. 그러나 의자왕은 성충의 말을 듣지 않았다. 얼마 뒤 나·당연합군이 침입해 왔다. 의자왕은 급보를 접하고, 충신 흥수(興首)에게 양책(良策)을 물었다. 그도 또한 백강과 탄현은 국토보존의 요지며 전쟁요충지로서, 한 사람이 만면의 군사를 능히 막을 수 있는 곳이니 고수해야 한다고 일렀다.

그러나 왕은 이를 믿지도 듣지도 않고, 간신들의 권고대로 백강과 탄현의 방비를 소홀히 하여, 결국 당군은 백강 기벌포(伎伐浦)에서 백제군을 격파했고, 신라군은 방비가 허술한 탄현을 쉽게 넘고 말았다. 황산벌에서 명장 계백(階白)이 항전하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나·당연합군은 결국 백제를 멸망시키고 말았다. 이곳이 바로 군북면에서 보면 숯고개(炭 峴)요, 군서면에서 보면 심현(沈峴 ; 지금의 잼길실)이다.

오랜 옛날의 통로는 어떠했는지 지금의 도로 사정으로는 짐작하기가 어려우나, 삼국시대의 숯고개는 백제신라의 국경을 마주보는 유일한 통로였던 듯 싶다. 문헌에도 우마조차 다니기 힘든 험로라고 적혀 있고, 지금도 오동리와 자모리간은 오솔길의 험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