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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06 00:36:38

스노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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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클링(snorkeling).

1. 스노클링 수영

스노클을 사용하는 수영 방법. 해당 문서 참고.

2. 스노클링(레저)

마스크(물안경), 스노클(숨대롱), 오리발을 착용하고 물 속을 즐기는 레저활동. 자세한 것은 스노클링(레저) 참고.

3. 재래식 잠수함의 충전 방식

디젤 엔진을 구동원으로 사용하는 재래식 잠수함이 수중에서 축전지를 충전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잠망경 심도에서 스노클만 물 밖으로 꺼내고 디젤 엔진을 돌려 배터리를 충전한다.

역사가 생각보다 오래 되었는데 19세기 말, 그러니까 내연기관을 사용한 첫 잠수함이 선보일 때에 이미 시제품이 등장했다. 배기관을 물 위로 올린다는 생각은 누구나 직관적으로 할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일찍 나온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스노클은 말 그대로 배기관만 수면 위로 연장한 수준이라 조금만 파도가 치거나 심도가 어긋나도 물이 그대로 밀려들어왔다. 실제로 1910년대 초기형 스노클을 장착한 일본 제국 해군의 잠수함이 역류로 침몰해 잠수함 승조원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현대적 개념의 스노클은 1930년대 네덜란드에서 개발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후 네덜란드를 점령한 나치 독일은 스노클을 장착한 네덜란드의 잠수함을 나포해 연구했지만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방치했다. 그러다 U보트의 손실이 늘어나고 수세에 몰린 1943년에 와서야 묻어뒀던 스노클을 허겁지겁 꺼내 개량한 다음 U보트에 장착했고, 처음부터 스노클을 장착한 수중 항행 중심의 21형 유보트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까지만 해도 잠수함은 필요할 때에만 잠수하는 가잠함의 개념이었고 이마저도 충전을 위해 수면에 부상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적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증가했고 레이더와 항공기를 사용한 대잠망이 발전한 전쟁 중후반기에는 목숨을 내걸고 부상할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가장 절박한 나치 독일 해군을 중심으로 채용되었던[1] 슈노르헬(Schnorchel, 독일어의 영문식 발음으로는 '슈노켈')[2]이 오늘날에는 대다수 재래식 잠수함의 기본 사양이 되었다.

그러나 스노클링을 위해서는 얕은 심도에서 스노클을 꺼내 시끄러운 디젤 엔진을 돌려야 하고, 이 때 소음과 스노클의 노출, 매연을 통해 적에게 노출될 수 있다.[3] 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핵추진 기관과 디젤 기관에는 AIP라는 보조 추진체계를 장착한 경우가 많으며 지속적인 연구와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3.1. 독일 해군

독일 해군스노클을 안 쓴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차피 이때 잠수함은 평상시에는 수상항해하고 적을 피할 때만 잠수하는 가잠함에 가까웠는데, 스노클은 소음이 엄청나기 때문에 적함 근처에서 스노클로 충전하는 것은 적함 근처에서 부상해 충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위험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스노클이 일으키는 파도가 잠망경 견시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무조건 저속항행을 해야 했다. 자함의 디젤엔진 소음으로 인해 적함을 탐지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덤. 결국 스노클로 충전할 바엔 부상해서 견시를 세운 뒤 충전하는 게 나았기 때문에 구태어 이 장비를 달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1943년부터 모든 게 달라진다.

첫째는 이때부터 연합군 항공기에 ASV Mark III 레이더가 달린 것이다. 항공기용 레이더가 처음 달린 건 1940년이나 이때는 탐지거리가 너무 짧아 육안과 별 차이도 없었고, 첫 실용적인 레이더는 1941년부터 장착한 ASV Mark II로 수상함이라면 20km 밖, 잠수함 크기는 6km정도에서 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다시피 탐지거리도 짧았고 1942년부터는 독일 역시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Metox라는 레이더 역탐지 장비를 U보트에 달아두었다. 때문에 연합군 항공기가 레이더로 유보트를 찾으면 유보트도 이 사실을 알고 잠항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Mark III는 역탐지하기 매우 힘들었으며[4] 탐지거리도 크게 늘어나 잠수함이라면 20km 밖에서 탐지 가능했다. Mark III 이후의 레이더는 30km 밖에서도 잠수함을 탐지 가능했다. 이때부터는 연합군 항공기들이 원거리에서 유보트를 레이더로 찾아내고 엔진을 끈 뒤(소음을 줄이기 위해 활강) 태양을 등지고 접근했다. 뒤늦게 유보트의 견시가 발견해 급속잠항을 해도 이미 머리 위로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한 뒤였다.

두 번째는 1941년 진주만 공습부터 발동한 미국의 전시체제가 1943년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가동해 미군의 물량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이제 신형 레이더를 단 B-24 리버레이터와 PBY 카탈리나가 온 대서양을 뒤덮자 U보트의 수상항해는 자살행위나 마찬가지가 된 것이다. 그 결과 1943년 5월 한 달 동안만 무려 41척의 유보트를 손실한다.[5]

결국 이때부터 잠수함이 부상해 축전지를 충전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독일 해군도 유보트에 스노클을 달 수밖에 없었고, 21형 유보트에 이르면 아예 수상항해보다 수중항해를 중시한 설계로 방향을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도 레이더를 완전히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외에도 스노클을 사용하면 함내에 기압차가 발생해 결로현상이 발생했으며, 이는 가뜩이나 열악한 유보트의 함내 환경을 더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관짝이 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평상시 무엇보다 가장 위험한 상황은 파도로 인해 흡기구가 막혀 버리는 경우였는데, 이러면 엔진이 함내의 공기를 연소시켜 단 몇 분 내에 승조원이 몰살될 수도 있다. 때문에 기관장이 상시 스노클을 관리하며 유사시 수동으로 엔진을 끄고 켜야 했다. 만약 농땡이를 치다 까먹었다간...'유보트 비밀일기'의 원문[6] 저자인 볼프강 히르슈펠트가 U-234의 시험운항 도중 스노클 관리 미비로 죽을 뻔 했다.

3.2. 일본 제국 해군

일본 제국 해군독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1945년 잠수함스노클을 설치했다. 하지만 기존 일본 주력 잠수함의 주 엔진은 배기력이 약한 2행정 기관이 대다수라 잠망경 심도에서 주기관으로 스노클링을 하기 어려웠고, 4행정 기관을 쓰는 보조 엔진을 돌려 충전 능력을 보조하는 정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4. 전차심수도하 방식

전차나 장갑차같은 군용차량이 차량 일부 혹은 전체가 잠긴 상태에서 강이나 호수, 하천 등과 같은 깊은 물을 자력으로 건너는 기술을 통상적으로 스노클링 또는 슈노켈이라고 부른다. 어원은 위의 잠수함에서의 슈노켈과 같고 원리도 '물 속에 잠긴 내연기관이 작동하게 하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특히 전차 해치에 장착하는 것을 '커닝타워(conning tower)'라고 부르기도 한다.
파일:UUikk8Dr.jpg
슈노켈을 장착하고 하천을 도하하는 레오파르트 2 전차


[1] 영국일본은 1945년부터 스노클을 사용했고 제해권에서 아쉬울 것이 없었던 미국은 종전 후에야 스노클을 도입했다.[2] 유보트에 달아놓은 슈노르헬(슈노켈)이 처음으로 유명해져서 오늘날에도 잠수함용 스노클은 독일어식 발음인 슈노르헬(슈노켈)로 부르는 경우도 꽤 있다.[3] 이미 제2차 세계 대전 시점에서 연합군은 스노클을 노출한 독일의 U보트를 탐지할 수 있었다. 독일 역시 스노클에 전파탐지기를 달고 전파 흡수재를 코팅하는 등의 대처를 했고, 연합군 역시 밀리미터파로 조사 전파를 바꾸는 등 보이지 않는 싸움이 계속 이어졌다. 현재도 디핑소나와 소노부이는 물론이고 수면 위에 작게 띄운 스노클을 잡을 수 있는 레이더 그리고 이산화탄소 감지같은 기술로 무장한다.[4] 독일도 Naxos라는 Mark III 역탐지 장비를 개발해냈지만 역탐지 가능한 거리가 너무나 짦아서 실용성이 거의 없었다. 종전 시까지 독일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5] 1939년 유보트 9척 손실. 1940년 24척 손실. 1941년 35척 손실, 1942년 87척 손실, 1943년 무려 244척 손실. 그중 1943년 5월에만 41척 손실.[6] 책으로 엮어내기 전 사적으로 썼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