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도 중 하나
시나노 토시로(信濃藤四郎) | |||
도공 | 아와타구치 요시미츠(粟田口吉光) | 도파 | 아와타구치(粟田口) |
제작 시기 | 가마쿠라 시대 | 종류 | 단도 |
길이 | 23.3 ㎝ | 현존 여부 | 치도 박물관(致道博物館) 소장 |
명문 | 吉光 | 문화재 등록 | 중요문화재 공예품 제 1023호 |
가마쿠라 시대의 도공이자 단도 제작의 명수로 알려진 아와타구치 요시미츠(粟田口吉光)가 제작한 단도.
국가 지정 문화재 데이터베이스에 올라온 자료에 의하면 길이 23.3 ㎝, 자루 길이 9.5 ㎝이다. 다만 18세기 초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의 명으로 작성된 교호명물장(享保名物帳)에는 八寸二分(환산 시 약 24.846 ㎝)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야마가타 현 츠루오카 시에 위치한 치도 박물관(致道博物館)에서 소장하고 있다.
본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신인 나가이 나오마사(永井尚政, 1587~1668)가 소지했던 단도이다. 그가 시나노노카미(信濃守)[1]의 직위를 지니었기 때문에 나가이 시나노노카미 나오마사로도 불렸고, 때문에 이 단도에 시나노 토시로란 이름이 붙었다.
후일, 나오마사는 시나노 토시로를 쇼군가에 헌상했다. 이후 1633년,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양녀 오오히메(大姫, 세이타이인(清泰院)으로도 알려짐)가 후일 카가 번주가 되는 마에다 미츠타카(前田光高)에게 시집을 가면서 혼수 선물로 건너갔다. 1639년에는 쇼나이 번(庄内藩, 지금의 야마가타 현 서부)의 번주인 사카이 타다카츠(酒井忠勝)에게 몰래 팔렸다. 이 매각 사실은 쇼군가에 알려지지 않도록 했는지 교호 명물장에는 빠져 있다.
1935년에 국보로 지정되었고, 사카이 백작가(화족)가 소장하였다. 이후 1950년 중요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1986년 도둑을 맞았는데, 1989년이 되어서야 사이타마 현 경찰에 의해 절도범들이 체포되었다. 이들은 도쿄 도와 22개 현을 돌면서 시나노 토시로뿐만 아니라 다른 중요 문화재를 포함해 약 22억 원 상당을 털었다고 한다. 아무튼 천만 다행으로 시나노 토시로를 되찾을 수 있었으며, 현재는 쇼나이 사카이가와 인연이 있는 치도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치도 박물관에서는 시나노 토시로를 2016년 10월 1일부터 30일까지 국보로 지정된 다른 사카이가의 도검들 및 여러 유물들과 더불어 특별전에서 전시한다고 한다.
2. 도검난무의 등장 캐릭터
시나노 토시로(도검난무)[1] 지방 행정을 담당하는 관직인 코쿠시(国司)의 하나로, 시나노 국의 행정을 맡는다. 전국시대에는 그 권한을 죄다 다이묘들에게 빼앗겨 코쿠시는 명목상의 직위로 격하되었다. 그러나 다이묘들은 집안의 명예와 격을 높이기 위해 코쿠시의 자리를 구하려 했고, 한 지역의 코쿠시에 여러 인물이 임명되는 경우도 잦아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