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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31 02:20:15

시비(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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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부여
소서노 선도성모 정견모주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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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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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侍婢

부여의 시조인 동명왕의 어머니. 시비는 이름이 아니라 왕의 곁에서 시중을 드는 여자 몸종, 즉 시녀를 의미한다.

2. 기록

북이(北夷) 고리국 왕의(영품리왕 추정) 시비가 임신을 하였다. 왕이 죽이려 하니, 시비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달걀만한 크기의 기운이 하늘에서 저에게로 와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후에 아들을 낳자 돼지 우리에 던져두었으나, 돼지가 입김을 불어넣으니 죽지 않았다. 다시 마굿간에 두어 말이 밟아 죽이도록 하였으나, 말이 또한 입김을 불어넣어 죽지 않았다. 왕이 하늘의 아들[天子]인가 여겨, 그 어미가 거두어 기르도록 하였다. 이름을 '동명(東明)'이라 하고 소와 말을 기르도록 하였다.

동명이 활을 잘 쏘았기에 왕은 나라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여 죽이고자 하였다. 이에 동명이 남쪽으로 도망하여, 엄호수에 이르러 활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었다. 동명이 건너자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풀어버리니 추격하던 병사들이 건널 수 없었다. 부여에 도읍을 정하고 왕 노릇을 하였다.

동명의 어미가 처음 임신했을 때, 기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고 동명을 낳고, 버렸으되 돼지와 말이 입김을 불어주어 죽지 않았고, 성장하자 왕이 죽이려 함에 활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가 되어 주었다. 이는 천명이 그 죽음을 마땅치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한 까닭에 돼지와 말이 목숨을 구해줘 부여에 도읍하여 왕이 된 것이며,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어주는 도움이 있었던 것이다.
《논형》(論衡) 권2 <길험>편
《주림전》(珠琳傳) 제21권에 쓰였으되, “옛날 영품리왕(寧禀離王)몸종이 태기가 있어 점쟁이가 점을 쳐 말하기를 ‘아이를 낳으면 귀히 되어 반드시 왕이 되리다.’ 하니 왕이 말하기를 ‘내 자식이 아니니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하였다. 몸종이 말하기를 ‘하늘로부터 기운이 뻗쳐 내렸으므로 내가 아이를 밴 것이외다.’라고 하였다. 그가 아들을 낳게 되매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돼지우리에 버리니 돼지가 입김을 불어 덥히고 마굿간에 버린즉 말이 젖을 먹여서 죽지를 않고 필경은 부여왕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동명제'(東明帝)가 졸본부여의 왕이 된 것을 말함이다. 이 졸본부여는 역시 북부여의 별개 도읍지이므로 부여왕이라고 한 것이다. 영품리는 부루왕의 다른 칭호이다.
삼국유사권 제1 <기이>(紀異) -주림전-[1] 인용

[1] 당(唐) 고종 총장 원년(668)에 도세(道世)가 지은 《법원주림》(法苑珠林)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