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7-13 17:59:18

시영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인천 광역시의 시내 버스 사업자에 대한 내용은 시영운수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배우 겸 권투 선수에 대한 내용은 이시영(배우)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D709B, #4682b4 20%, #4682b4 80%, #3D709B); color: #ece5b6;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후량(後梁)
<rowcolor=#ece5b6> 초대 제2대 제3대
태조 폐제 말제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후당(後唐)
<rowcolor=#ece5b6>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장종 명종 민제 폐제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후진(後晉) 후한(後漢)
<rowcolor=#ece5b6> 초대 제2대 초대 제2대 비정통
고조 출제 고조 은제 상음공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후주(後周)
<rowcolor=#ece5b6> 초대 제2대 제3대
태조 세종 공제
}}}}}}}}}

<colbgcolor=#70745f><colcolor=#ece5b6>
후주 제2대 황제
시영 | 柴榮
파일:후주세종.jpg
출생 921년 10월 27일
후량 형주 요산현 시가경
(現 허베이성 싱타이시 룽야오현)
즉위 954년 2월 26일
후주 변경 개봉부 변경 황궁
(現 허난성 카이펑시 구러우구)
사망 959년 7월 27일 (향년 38세)
후주 변경 개봉부 변경 황궁 만세전
(現 허난성 카이펑시 구러우구)
능묘 경릉(慶陵)
재위기간 제2대 황제
954년 2월 26일 ~ 959년 7월 27일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70745f><colcolor=#ece5b6> 성씨 시(柴)곽(郭)시(柴)
영(榮)
부모 친부 시수례
양부 태조
양모 성목황후
배우자 정혜황후, 선의황후, 황후 부씨
자녀 7남
작호 진왕(晉王)
묘호 세종(世宗)
시호 예무효문황제(睿武孝文皇帝)
연호 현덕(顯德, 954년 ~ 959년)
절일 천청절(天淸節)
}}}}}}}}} ||
1. 개요2. 생애3. 기타4.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후주(後周)의 제2대 황제. 재위 5년의 짧은 기간 동안 다른 군주가 30년 동안 할 만큼의 업적을 쌓았다고 하는 5대10국시대를 대표하는 명군.

오대십국시대 후주의 건국자 곽위양자였다. 원래 이름은 시영(柴榮)으로, 친부의 이름은 시수례(柴守禮)였다. 대개의 경우 후계자가 없어 양자를 들일 때는 성씨가 같은 방계를 들이는 게 보통이었지만 특이하게도 시영은 곽위의 아내의 조카, 다시 말해서 곽위의 처조카였으며 곽위는 시영의 고모부였다. 시영을 양자로 들인 이유는 그의 비범한 능력을 곽위가 미리 알아봤기 때문이었다.[1][2] 곽위가 그의 능력을 얼마나 믿었는가 하면, 죽을 때 "아무 걱정도 없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곽위는 후한 은제 유승우에 대항해서 거병했을 때 은제의 보복으로 친족들이 모두 살해당해서 후계자로 삼을 만한 직계 후손이 없었다. 그래서 처조카인 시영을 후계자로 삼은 것. 고모부의 성인 곽씨(郭氏)를 받고 양자가 되었으나, 고모부가 죽은 뒤에 성을 시씨(柴氏)로 복성(復姓)하였다.

2. 생애

태조 곽위가 죽자 32세의 나이로 제위를 계승했다. 곽위의 눈은 틀리지 않았는지 이 시대 최고의 명군으로 뽑히는 인물이 되었다. 즉위하자마자 거란과 결탁한 북한의 황제 유숭의 공격을 받았는데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가 맞서 싸웠고(고평 전투), 조광윤의 활약으로 이를 격퇴했다. 이 여세를 몰아 분열된 중국의 통일 사업을 계획하고 착수하여 955년 서남의 후촉을 공격, 진주(秦州), 봉주(鳳州), 계주(階州), 성주(成州)의 농서 4주[3]를 빼앗고, 곧바로 남당을 공격, 3년에 걸친 전쟁 끝에 회남을 차지하여 장강 이북의 패권을 쥐었다.

내정에서도 많은 개혁 정책을 실시해 농업 분야와 조세 제도및 법제 개편 등에서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또한 이전의 왕조들과는 달리 절도사 같은 군벌들을 무리하게 꺾기보다는 먼저 중앙의 무력이 강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 전전군(殿前軍)을 만들어 자체적인 모병 외에도 지방군 소속 장병들 중에 뛰어난 자가 있으면 후대할 것을 약속하며 영입하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지방 군벌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중앙군을 강화하여 훗날 송나라 시기에 이르러 군벌의 발호를 차단하는 기초를 세운다.

이렇듯 나라를 잘 이끌어 나간 명군으로 남당을 제압한 직후인 959년 석경당요나라에 팔아넘긴 북방의 요충지 연운 16주를 수복하기 위해 요나라 원정길에 올라[4] 최남단 영주(瀛州)와 막주(莫州)를 수복하고 유주(幽州)[5] 공략에 나서던 중 갑자기 병으로 쓰러졌고[6], 돌아오는 길에 37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7] 시영 사후 일곱 살 난 아들이 제위를 계승했으나 시영 휘하의 무장이었던 조광윤이 정변을 일으켜 제위를 찬탈하고 북송을 세우니, 이를 진교의 변 혹은 진교병변이라고 한다.

현덕 2년(955년), 잔혹한 불교 탄압 정책으로 삼무일종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삼무일종에 대한 설명은 세조 항목의 북위 태무제 참고. 그래서인지 몰라도, 송나라 이후로는 불교적 색채가 당나라보다 상당히 약해졌고, 그 자리를 도교가 채웠다. 불상을 녹여 화폐인 주통전을 만들었는데 당시 세간 사람들은 “주통전이 유통되는 한 세종은 지옥에서 구제받지 못할 것” 이라고 했다고 한다.

흔히 '시세종(柴世宗)'이라고 불리며 수호전에 등장하는 소선풍 시진의 조상이 되는 인물로 송나라의 전신인 후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사실상 송나라의 기초를 마련한 인물이었다. 요절만 안하고 후계자만 적절했어도, 중원 통일은 시씨가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8] 조광윤 또한 그의 수하로 시작해 세종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받으며 군공을 세웠고 세종에게 강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시영은 죽기 전 조광윤에게 거의 모든 군권을 넘기고 황실을 보호해 달라고 유언하며 죽는다. 결과적으론 나라는 빼앗겼지만, 다른 왕조들의 정권 교체 당시, 전 왕조의 마지막 황제들을 죽이거나 유배보낸 것과 달리 조광윤은 시 세종의 후손들[9]을 우대하였다.[10] 덕분에 시씨 가문의 수장은 송대에 걸쳐 대대로 단서철권을 받았으며, 황실이 도망갈 때 끼워주거나 하는 등 특권을 받으며 번성하게 된다. 이덕에 남송 최후의 항전인 애산 전투에서 수많은 시씨 문중 사람들이 송 황실과 그 운명을 함께할 정도로 충성을 바쳤다.

3. 기타

후주의 세종은 부언경의 딸 2명을 황후로 맞이하였다. 세종이 맞이한 두 황후의 여동생은 조광윤의 아우였던 조광의에게 시집을 갔다. 부언경은 자신의 딸 3명이 모두 황후로 들어간 인물이 되었다.[11]

아들 일곱이 있었으나 위의 셋은 시영이 곽위를 도와 거병할 때 살해되었고, 다음 황제가 된 시종훈은 넷째 아들이다.

진교의 변 당시 시종훈의 동생들인 5남 시종양(柴宗讓), 6남 시희양(柴熙讓), 7남 시희회(柴熙誨)는 모두 성을 고치게 된다. 5남 시종양은 외가의 성으로 개명하여 영희양(寧熙讓)으로 살았고, 6남 시희양은 북송 공신 반미가 자신의 조카로 입양하여 반유길(潘惟吉)로 개명하였으며, 7남 시희회는 공신 노염이 입양하여 노선(盧璇)으로 개명하였다가 자신의 딸과 결혼시켜 사위로 삼았다.

시영의 친부인 시수례(柴守禮)도 진교의 변 당시 살아 있었는데, 조광윤의 황제 등극에 찬성했고, 송의 관리를 지내기도 했다. 시종훈은 자손이 없었으므로, 시수례의 다른 아들들의 후손이[12] 시종훈의 봉작을 이어받게 된다. 송나라 당시 대접받고 살았던 시씨 후손은 시영의 직계가 아니라는 것.

4.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fff"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folding [ 양서(梁書) ]
{{{#181818,#e5e5e5
1·2·3·4·5·6·7권 「태조기(太祖紀)」 8·9·10권 「말제기(末帝紀)」
주황 주우정
11권 「후비전(后妃傳)」
문혜황태후 · 원정황후 · 장덕비
12권 「종실전(宗室傳)」
주전욱 · 주우량 · 주우능 · 주우회 · 주우녕 · 주우륜 · 주우유 · 주우문 · 주우규 · 주우장 · 주우자
13권 「주선등전(朱瑄等傳)」 14권 「나소위등전(羅紹威等傳)」
주선 · 주근 · 시부 · 왕사범 · 유지준 · 양숭본 · 장은 · 장만진 나소위 · 조주 · 왕가
15권 「한건등전(韓建等傳)」 16권 「갈종주등전(葛從周等傳)」
한건 · 이한지 · 풍행습 · 손덕소 · 조극유 · 장신사 갈종주 · 사언장 · 호진 · 장귀패 · 장귀후 · 장귀변
17권 「성예등전(成汭等傳)」 18권 「장문울등전(張文蔚等傳)」
성예 · 두홍 · 전군 · 조광응 · 장길 · 뇌만 장문울 · 설이구 · 장책 · 두효 · 경상 · 이진
19권 「씨숙종등전(氏叔琮等傳)」
씨숙종 · 주우공 · 왕중사 · 주진 · 이사안 · 등계균 · 황문정 · 호규 · 이당 · 이중윤 · 범거보
20권 「사동등전(謝瞳等傳)」
사동 · 사마업 · 유한 · 왕경요 · 고소 · 마사훈 · 장존경 · 구언경
21권 「방사고등전(龐師古等傳)」
방사고 · 곽존 · 부도소 · 서회옥 · 곽언 · 이당빈 · 왕건유 · 유강예 · 왕언장 · 하덕륜
22권 「양사후등전(楊師厚等傳)」 23권 「유심등전(劉鄩等傳)」
양사후 · 우존절 · 왕단 유심 · 하괴 · 강회영 · 왕경인
24권 「이정등전(李珽等傳)」
이정 · 노증 · 손즐 · 장준 · 장연 · 두순학 · 나은 · 구은 · 은심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folding [ 당서(唐書) ]
{{{#181818,#e5e5e5
1·2권 「무제기(武帝紀)」 3·4·5·6·7·8·9·10권 「장종기(莊宗紀)」 11·12·13·14·15·16·17·18·19·20권 「명종기(明宗紀)」
이극용 이존욱 이사원
21권 「민제기(閔帝紀)」 22·23·24권 「말제기(末帝紀)」
이종후 이종가
25권 「후비전(后妃傳)」
정간황후 · 유태비 · 위국부인 · 신민경황후 · 한숙비 · 이덕비 · 소의황후 · 화무현황후 · 선헌황후 · 공황후 · 유황후
26·27권 「종실전(宗室傳)」
이극양 · 이극수 · 이극공 · 이극녕 · 이존패 · 이존미 · 이존악 · 이존예 · 이존확 · 이계급 · 이계동 · 이계숭 · 이계섬 · 이종경 · 이종영 · 이종찬 · 이종익 · 이중길 · 이이미
28권 「이사소등전(李嗣昭等傳)」 29권 「이존신등전(李存信等傳)」 30권 「왕용등전(王鎔等傳)」
이사소 · 배약 · 이사본 · 이사은 이존신 · 이존효 · 이존진 · 이존장 · 이존현 왕용 · 왕소회 · 왕처직
31권 「강군립등전(康君立等傳)」
강군립 · 설지근 · 사건당 · 이승사 · 사엄 · 개우 · 이광 · 이승훈 · 사경용
32권 「주덕위등전(周德威等傳)」 33권 「곽숭도전(郭崇韜傳)」 34권 「조광봉등전(趙光逢等傳)」
주덕위 · 부존심 곽숭도 조광봉 · 정각 · 최협 · 이기 · 소경
35권 「정회등전(丁會等傳)」 36권 「이습길등전(李襲吉等傳)」
정회 · 염보 · 부습 · 오진 · 왕찬 · 원상선 · 장온 · 이소문 이습길 · 왕겸 · 이경의 · 노여필 · 이덕휴 · 소순
37권 「안금전등전(安金全等傳)」
안금전 · 안원신 · 안중패 · 유훈 · 장경순 · 유언종 · 원건풍 · 서방업 · 장준회 · 손장
38권 「맹방립등전(孟方立等傳)」 39권 「장전의등전(張全義等傳)」
맹방립 · 장문례 · 동장 장전의 · 주우겸
40권 「곽언위등전(霍彦威等傳)」 41권 「이건급등전(李建及等傳)」
곽언위 · 왕안구 · 대사원 · 주한빈 · 공경 · 유기 · 주지유 이건급 · 석군립 · 고행규 · 장정유 · 왕사동 · 삭자통
42권 「안중회등전(安重誨等傳)」 43권 「두로혁등전(豆盧革等傳)」
안중회 · 주홍소 · 주홍실 · 강의성 · 약언조 · 송영순 두로혁 · 위설 · 노정 · 조봉 · 이우 · 임환
44권 「설정규등전(薛廷珪等傳)」
설정규 · 최기 · 유악 · 봉순경 · 두몽징 · 이보은 · 귀애 · 공막 · 장문보 · 진예 · 유찬
45권 「장헌등전(張憲等傳)」
장헌 · 왕정언 · 호장 · 최이손 · 맹곡 · 손악 · 장연랑 · 유연호 · 유연랑
46권 「원행흠등전(元行欽等傳)」
원행흠 · 하노기 · 요홍 · 이엄 · 이인구 · 강사립 · 장경달
47권 「마욱등전(馬郁等傳)」
마욱 · 사공정 · 조정은 · 소희보 · 약종지 · 가복 · 마호 · 나관 · 순우안 · 장격 · 허적 · 주현표
48권 「장승업등전(張承業等傳)」
장승업 · 장거한 · 마소굉 · 맹한경
49권 「모장등전(毛璋等傳)」 50권 「강연효등전(康延孝等傳)」
모장 · 섭서 · 온도 · 단응 · 공겸 · 이업 강연효 · 주수은 · 양립 · 두정완 · 장건쇠 · 양언옹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folding [ 진서(晉書) ]
{{{#181818,#e5e5e5
1·2·3·4·5·6권 「고조기(高祖紀)」 7·8·9·10·11권 「소제기(少帝紀)」
석경당 석중귀
12권 「후비전(后妃傳)」
이황후 · 안태비 · 장황후 · 풍황후
13권 「종실전(宗室傳)」
석경위 · 석훈 · 석중윤 · 석중영 · 석중신 · 석중예 · 석중진 · 석중고 · 석중예 · 석연후 · 석연보
14권 「경연광등전(景延廣等傳)」
경연광 · 이언도 · 장희숭 · 왕정윤 · 사광한 · 양한옹 · 양사권 · 윤휘 · 이종장 · 이종온 · 장만진
15권 「상유한등전(桑維翰等傳)」
상유한 · 조형 · 유구 · 풍옥 · 은붕
16권 「조재례등전(趙在禮等傳)」
조재례 · 마전절 · 장균 · 화온기 · 안숭완 · 양언순 · 이승약 · 육사탁 · 안원신 · 장랑 · 이덕충 · 전무 · 이승복 · 상리금
17권 「방지온등전(房知溫等傳)」
방지온 · 왕건립 · 강복 · 안언위 · 이주 · 장종훈 · 이계충 · 이경 · 주광보 · 부언요 · 나주경 · 정종
18권 「요의등전(姚顗等傳)」
요의 · 여기 · 양문구 · 사규 · 배호 · 오승범 · 노도 · 정도광 · 왕권 · 한운 · 이역
19권 「노질등전(盧質等傳)」
노질 · 이혜미 · 노첨 · 최절 · 설융 · 조국진 · 장인원 · 조희 · 이하 · 윤옥우 · 정운수
20권 「장종간등전(萇從簡等傳)」
장종간 · 반환 · 방태 · 하건 · 장정온 · 곽연로 · 곽금해 · 유처양 · 이경 · 고한균 · 손언도 · 왕부증 · 비경 · 이언순
21권 「황보우등전(皇甫遇等傳)」
황보우 · 왕청 · 양한장 · 백봉진 · 노순밀 · 주환 · 심윤 · 오만 · 적장 · 정복윤 · 곽린
22권 「공숭필등전(孔崇弼等傳)」
공숭필 · 진보극 · 왕유 · 장계조 · 정완 · 호요 · 유수청 · 방고 · 맹승회 · 유계훈 · 정수익 · 정손 · 이욱 · 정현소 · 마중적 · 진현
23권 「범연광등전(范延光等傳)」 24권 「안중영등전(安重榮等傳)」
범연광 · 장종보 · 장연파 · 양광원 · 노문진 · 이금전 안중영 · 안종진 · 장언택 · 조택균 · 장려 · 소한 · 유희 · 최정훈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folding [ 한서(漢書) ]
{{{#181818,#e5e5e5
1·2권 「고조기(高祖紀)」 3·4·5권 「은제기(隱帝紀)」
유고 유승우
6권 「후비전(后妃傳)」
이황후
7권 「종실전(宗室傳)」
유승훈(劉承訓) · 유승훈(劉承勛) · 유신 · 유빈
8권 「왕주등전(王周等傳)」
왕주 · 유심교 · 무한구 · 장관 · 이은 · 유재명 · 마만 · 이언종 · 곽근 · 황보립 · 백재영 · 장붕
9권 「사홍조등전(史弘肇等傳)」
사홍조 · 양빈 · 왕장 · 이홍건 · 염진경 · 섭문진 · 후찬 · 곽윤명 · 유수
11권 「이숭등전(李崧等傳)」 12권 「두중위등전(杜重威等傳)」
이숭 · 소봉길 · 이린 · 용민 · 유정 · 장윤 · 임연호 두중위 · 이수정 · 조사관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folding [ 주서(周書) ]
{{{#181818,#e5e5e5
<rowcolor=#373a3c> 1·2·3·4권 「태조기(太祖記)」 5·6·7·8·9·10권 「세종기(世宗紀)」 11권 「공제기(恭帝紀)」
곽위 시영 시종훈
12권 「후비전(后妃傳)」
성목황후 · 양숙비 · 장귀비 · 동덕비 · 정혜황후 · 선의황후
13권 「종실전(宗室傳)」
곽동 · 곽신 · 시종의 · 시희회
14권 「고행주등전(高行周等傳)」
고행주 · 안심기 · 안심휘 · 안심신 · 이종민 · 정인회 · 장언성 · 안숙천 · 송언균
15권 「왕은등전(王殷等傳)」
왕은 · 하복진 · 유사 · 왕진 · 사언초 · 사의 · 왕령온 · 주밀 · 이회충 · 백문가 · 백연우 · 당경사
16권 「조휘등전(趙暉等傳)」
조휘 · 왕수은 · 공지준 · 왕계홍 · 풍휘 · 고윤권 · 절종완 · 왕요 · 손방간
<rowcolor=#373a3c> 17권 「풍도전(馮道傳)」 18권 「노문기등전(盧文紀等傳)」
풍도 노문기 · 마예손 · 화응 · 소우규 · 경범
19권 「왕박등전(王朴等傳)」
왕박 · 양응식 · 설인겸 · 소원 · 노손 · 왕인유 · 배우 · 단희요 · 사도후 · 변울 · 왕민
20권 「상사등전(常思等傳)」
상사 · 적광업 · 조영 · 이언군 · 이휘 · 이건숭 · 왕중예 · 손한영 · 허천 · 조봉 · 제장진 · 왕환 · 장언초 · 장영 · 유인섬
21권 「왕준등전(王峻等傳)」
왕준 · 모용언초 · 염홍로 · 최주도
22권 「유호등전(劉皞等傳)」
유호 · 장항 · 장가복 · 우덕진 · 왕연 · 신문병 · 호재 · 유곤 · 가위 · 조연의 · 심구 · 이지손 · 손성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folding [ 열전(列傳) ]
{{{#181818,#e5e5e5
132·133권 「세습열전(世襲列傳)」 134·135·136권 「참위열전(僭位列傳)」
이무정 · 고만흥 · 한손 · 이인복 · 고계흥 · 마은 · 유언 · 전류 양행밀 · 이변 · 왕심지 · 유수광 · 유엄 · 유숭 · 왕건 · 맹지상
137·138권 「외국열전(外國列傳)」
거란 · 토번 · 회골 · 고려 · 발해 · 흑수말갈 · 신라 · 당항 · 곤명부락 · 우전 · 점성 · 장가만
※ 138권 ~ 150권은 志에 해당. 구오대사 문서 참고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흠정 24사 관련 틀 둘러보기
||
}}}}}}}}}}}} ||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fff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0%"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2권 「양본기1·2(太祖紀一二)」 3권 「양본기3(梁本紀三)」
주황 주우정
4·5권 「당본기1·2(唐本紀一二)」 6권 「당본기3(唐本紀三)」 7권 「당본기4(唐本紀四)」
이존욱 이사원 이종후 · 이종가
8권 「진본기1(晉本紀一)」 9권 「진본기2(晉本紀二)」
석경당 석중귀
10권 「한본기(漢本紀)」
유고 · 유승우
11권 「주본기1(周本紀一)」 12권 「주본기2(周本紀二)」
곽위 시영 · 시종훈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0%"
{{{#!folding [ 열전(列傳) ]
13권 「양가인전(梁家人傳)」
문혜황후 · 원정황후 · 진소의 · 이소용 · 장덕비 · 곽비 · 주전욱 · 주존 · 주우유 · 주우문 · 주우규 · 주우자
14권 「당태조가인전(唐太祖家人傳)」
유부인 · 정간황후 · 신민경황후 · 이극양 · 이극수 · 이극공 · 이극녕 · 이존미 · 이존패 · 이존례 · 이존악 · 이존예 · 이존확 · 이존기 · 이계급 · 이계동 · 이계숭 · 이계섬 · 이계요
15권 「당명종가인전(唐明宗家人傳)」
화무헌황후 · 소의황후 · 위황후 · 왕숙비 · 공황후 · 이종경 · 이종영 · 이종익 · 이종찬 · 이종장 · 이종온 · 이종민
16권 「당폐제가인전(唐廢帝家人傳)」
유황후 · 이중길 · 이중미
17권 「진가인전(晉家人傳)」
황후 이씨 · 안태비 · 풍황후 · 석경위 · 석경윤 · 석경휘 · 석중신 · 석중예(重乂) · 석중예(重睿) · 석중고 · 석연후 · 석연보
18권 「한가인전(漢家人傳)」
이황후 · 유빈 · 유승훈(劉承訓) · 유승훈(劉承勳) · 유신
19권 「주태조가인전(周太祖家人傳)」
성목황후 · 양숙비 · 장귀비 · 동덕비 · 곽동 · 곽신 · 곽수원 · 곽손
20권 「주세종가인전(周世宗家人傳)」
시수례 · 정혜황후 · 선의황후 · 부황후 · 시종의 · 시희성 · 시희함 · 시희양 · 시희근 · 시희회
21권 「양신전·1(梁臣傳一)」 22권 「양신전·2(梁臣傳二)」
경상 · 주진 · 방사고 · 갈종주 · 곽존 · 장존경 · 부도소 · 유한 · 구언경 강회영 · 유심 · 우존절 · 장귀패 · 왕중사 · 서회옥
23권 「양신전·3(梁臣傳三)」 24권 「당신전·1(唐臣傳一)」
양사후 · 왕경인 · 하괴 · 왕단 · 마사훈 · 왕건유 · 사언장 곽숭도 · 안중회
25권 「당신전·2(唐臣傳二)」 26권 「당신전·3(唐臣傳三)」
주덕위 · 부존심 · 사건당 · 왕건급 · 원행흠 · 안금전 · 원건풍 · 서방업 부습 · 오진 · 공겸 · 장연랑 · 이엄 · 이인구 · 모장
27권 「당신전·4(唐臣傳四)」 28권 「당신전·5(唐臣傳五)」
주홍소 · 유연랑 · 강사립 · 강의성 · 약언조 두로혁 · 노정 · 임환 · 조봉 · 이습고 · 장헌 · 소희보 · 유찬 · 하찬
29권 「진신전(晉臣傳)」 30권 「한신전(漢臣傳)」
상유한 · 경연광 · 오만 소봉길 · 사홍조 · 양빈 · 왕장 · 유수 · 이업 · 섭문진 · 후찬 · 곽윤명
31권 「주신전(周臣傳)」 32권 「사절전(死節傳)」
왕박 · 정인회 · 호재 왕언장
33권 「사사전(死事傳)」
장원덕 · 하노기 · 요홍 · 왕사동 · 장경달 · 적진종 · 심빈(1) · 왕청 · 사언초 · 손성
34권 「일행전(一行傳)」
정요 · 석앙 · 정복윤 · 이자륜
35권 「당육신전(唐六臣傳)」 36권 「의아전(義兒傳)」
장문울 · 양섭 · 장책 · 조광봉 · 설이구 · 소순 이사소 · 이사본 · 이사은 · 이존신 · 이존효 · 이존진 · 이존장 · 이존현
37권 「영관전(伶官傳)」 38권 「환관전(宦官傳)」
주잡 · 경신마 · 경진 · 사언경 · 곽종겸 장승업 · 장거한
39권 「왕용등전(王鎔等傳)」 40권 「이무정등전(李茂貞等傳)」
왕용 · 나소위 · 왕처직 · 유수광 이무정 · 한건 · 이인복 · 한손 · 양숭본 · 고만흥 · 온도
41권 「노광조등전(盧光稠等傳)」 42권 「주선등전(朱宣等傳)」
노광조 · 담전파 · 뇌만 · 종전 · 조광응 주선 · 왕사범 · 이한지 · 맹방립 · 왕가 · 조주 · 풍행습
43권 「씨숙종등전(氏叔琮等傳)」 44권 「유지준등전(劉知俊等傳)」
씨숙종 · 이언위 · 이진 · 배적 · 위진 · 공순 · 손덕소 · 왕경요 · 장은 유지준 · 정회 · 하덕륜 · 염보 · 강연효
45권 「장전의등전(張全義等傳)」 46권 「조재례등전(趙在禮等傳)」
장전의 · 주우겸 · 원상선 · 주한빈 · 단응 · 유기 · 주지유 · 육사탁 조재례 · 곽언위 · 방지온 · 왕안구 · 안중패 · 왕건립 · 강복 · 곽연로
47권 「화온기등전(華溫琪等傳)」
화온기 · 장종간 · 장균 · 양언순 · 이주 · 유처양 · 이승약 · 장희숭 · 상리금 · 장정온 · 마전절 · 황보우 · 안언위 · 이경 · 이경암
48권 「노문진등전(盧文進等傳)」
노문진 · 이금전 · 양사권 · 윤휘 · 왕홍지 · 유심교 · 왕주 · 고행주 · 백재영 · 안숙천
49권 「적광업등전(翟光鄴等傳)」
적광업 · 풍휘 · 황보휘 · 당경사 · 왕진 · 상사 · 손방간
50권 「왕준등전(王峻等傳)」 51권 「주수은등전(朱守殷等傳)」
왕준 · 왕은 · 유사 · 왕환 · 절종완 주수은 · 동장 · 범연광 · 누계영 · 안중영 · 안종진 · 양광원
52권 「두중위등전(杜重威等傳)」 53권 「왕경숭등전(王景崇等傳)」
두중위 · 이수정 · 장언택 왕경숭 · 조사관 · 모용언초
54권 「풍도등전(馮道等傳)」 55권 「유구등전(劉昫等傳)」
풍도 · 이기 · 정각 · 이우 · 노도 · 사공정 유구 · 노문기 · 마윤손 · 요의 · 유악 · 마호
56권 「화응등전(和凝等傳)」
화응 · 주수은 · 양립 · 두정완 · 장건쇠 · 양언옹
57권 「이숭등전(李崧等傳)」
이숭 · 이린 · 가위 · 단희요 · 장윤 · 왕송 · 배호 · 왕인유 · 배우 · 왕연 · 마중적 · 조연의
{{{-2 (1) 구오대사 진서에서는 심빈(沈贇)으로 표기되며, 신오대사에서는 심빈(沈斌)으로 표기된다.
}}}}}}
[ 세가(世家) ]
||<-2><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width=50%> 61권 「오세가(吳世家)」 ||<-2><width=50%> 62권 「남당세가(南唐世家)」 ||
양행밀 · 서온 이변
63권 「전촉세가(前蜀世家)」 64권 「후촉세가(後蜀世家)」
왕건 맹지상
65권 「남한세가(南漢世家)」 66권 「초세가(楚世家)」
유은 마은 · 유언 · 주행봉
67권 「오월세가(吳越世家)」 68권 「민세가(閩世家)」
전류 왕심지
69권 「남평세가(南平世家)」 70권 「동한세가(東漢世家)」
고계흥 유민
※ 71권은 譜에 해당. 신오대사 문서 참고
[ 부록(附錄) ]
||<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72·73권 「거란전(契丹傳)」 ||
거란
74권 「외국열전(外國列傳)」
· 토혼 · 달단 · 당항 · 돌궐 · 토번 · 회골 · 우전 · 고려 · 발해 · 신라 · 흑수말갈 · 남조만 · 장가 · 곤명 · 점성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 ||



[1] 곽위는 성씨가 같은 친조카가 있었는데도 시영을 양자로 들였다.[2] 카이사르 역시 클레오파트라와의 사이에서 낳은 카이사리온 대신 누나의 손자인 옥타비아누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정해 유언장에 명시했다.[3] 후진에서 후한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후촉이 탈취한 지역이었다.[4] 이때 기동성 있는 행군으로 요나라의 허를 찌르고자 병마를 대운하를 이용해 북상시켰다고 한다.[5] 오늘날의 베이징. 요나라는 이곳에 5경 중 하나인 남경 석진부를 두었다.[6] 그의 업무 스타일은 모든 사안을 직접 챙기는 이른바 만기친람(萬機親覽) 형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로 인한 과로가 갑작스런 병사의 한 원인이었다는 분석도 있다.[7] 그의 죽음에 관련하여 중국 북송 때의 학자인 왕질(王銍)이 쓴 소설인 묵기(默記)에서는 기괴한 이야기 한 편을 전하고 있다. 하늘의 별자리를 살피던 신하 왕박이 어느 날 세종을 찾아와서 이상한 현상을 보았으니, 꼭 보러 가자고 간곡히 부탁하여 세종은 왕박과 함께 오장하(五丈河)로 갔는데, 허공에 불타는 수레바퀴(UFO?)가 날아다니고 그 위에 3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아이(火輪小兒)가 앉아 있었는데, 왕박은 세종한테 그 어린아이한테 엎드려 절을 하라고 말했고 세종이 그렇게 했더니, 돌아오고 나서 얼마 후에 둘 다 갑자기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출처 다만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괴담류에 속하는 것이니, 너무 진지하게 믿지는 말기 바란다(...)[8] 세종 자신부터가 천하통일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신하들에게 "첫 10년 동안 천하를 통일하고, 그 다음 10년 동안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켜 마지막 10년 동안에는 태평성대를 이뤄보리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30년은커녕 첫 10년도 반밖에 못 채우고 죽었으니... 그나마 다행인 부분은 시영이 끝내지 못 한 일을 역시 명군이었던 부하 조광윤과 그 아우인 조광의가 마저 끝냈다는 것이다. 주전충 같은 폭군이 이어받았으면 시영의 노력이 허사가 됐을지도 모른다.[9] 정확히는 방계. 세종의 아들인 공제 시종훈은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요절해서 세종의 친부인 시수례의 다른 자손들이 시씨 가문을 이어갔다.[10] 즉, 나라는 빼앗었지만 황실을 보호해달라는 유언을 조광윤은 지킨 것이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11] 물론 의덕황후 부씨는 태종이 즉위한 이후에 황후로 추존되었다.[12] 아이러니 하게도 다음에 이어받은 자가 시종훈의 육촌인데 [13] 기록의 연대 차이가 1세기나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