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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03 09:25:52

시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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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에실리 부족 초대 군주
ⵙⵉⴼⴰⴽⵙ | 시팍스
파일:시팍스.jpg
제호 한국어 시팍스
베르베르어 ⵙⵉⴼⴰⴽⵙ
라틴어 Syphax
가족 소포니스바(아내)
베르미나(장남)
타나크와(차남)
아르코바르자네(손자)
생몰 년도 미상 ~ 기원전 203년
재위 기간 미상 ~ 기원전 203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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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누미디아의 국왕. 제2차 포에니 전쟁 초기엔 고대 로마와 손잡고 고대 카르타고를 적대했다. 그러나 하스드루발 기스코가 자신의 딸이자 마시니사 왕자의 약혼자 소포니스바를 넘기자, 로마와 동맹을 끊고 카르타고와 손을 잡았다. 이후 아프리카를 침공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를 상대로 카르타고와 연합하여 맞섰으나 끝내 패하고 왕위를 잃었다.

2. 생애

누미디아는 카르타고 서부의 북 아프리카 일대에 위치한 나라로, 크게 서부의 마사에실리 부족과 동부의 마실리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가 태어난 마사에실리 부족은 현재의 튀니지 해안에 거주했으며, 마실리 부족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마실리 부족은 카르타고와 동맹을 맺고 신속하고 숙련된 기병을 제공했기에, 그들은 자연히 카르타고를 적대했다. 그가 언제부터 왕위에 있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확실하지 않으나, 제2차 포에니 전쟁 발발한 해인 기원전 218년에는 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는 겉으로는 카르타고와 평화 협약을 맺고 전쟁에 끼여들지 않았지만, 로마와 우호 관계를 맺고 싶어했다.

기원전 213년, 이베리아 반도에서 우세한 형국을 점한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칼부스 형제는 시팍스와 동맹을 맺어 카르타고를 견제하기로 했다. 그들은 백인대장 퀸투스 스테테리우스를 그에게 보내 누미디아 보병대를 로마 보병에 맞춰 훈련시키도록 했다. 이후 시팍스는 가이아 왕이 통치하던 마실리 부족을 공격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가이아 왕이 구원을 청하자, 카르타고 원로원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스키피오 형제를 상대로 고전하던 하스드루발 바르카에게 시팍스를 물리치라고 명령했다. 하스드루발은 일부 병력을 이끌고 아프리카로 건너간 뒤, 가이아 왕의 아들인 마시니사의 협조하에 시팍스를 상대로 승리한 뒤, 마시니사가 이끄는 3천 명의 누미디아 기병과 함께 이베리아 반도로 귀환했다.

기원전 206년 가이아 왕이 죽자, 그의 아들 마시니사와 가이아의 동생 오잘케스의 아들 카푸사가 내전을 벌였다. 갈라의 옛 부하들로부터 지지를 받은 마시니사가 최종적으로 승리하고 군주에 등극했지만, 곧 카르타고와 손을 잡은 시팍스의 역습에 직면했다. 이 무렵 마시니사의 약혼녀였던 소포니스바가 시팍스에게 넘어갔다. 그녀가 어떻게 넘어갔는지에 대해선 여러 설이 제기된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 따르면, 카르타고 원로원은 마시니사와 소포니스바의 약혼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소포니스바에게 시팍스와 결혼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반면 디오 카시우스에 따르면, 시팍스는 처음부터 소포니스바를 사랑했고 마시니사에게 그녀를 넘겨주지 않는다면 계속 공격하겠다고 협박해 마시니사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넘겨줬다고 한다. 시팍스는 본래 로마와 손을 잡고 카르타고에 대항했지만, 소포니스바와 결혼한 후에는 카르타고 편으로 돌아섰다. 결국 마시니사는 아내와 부하, 그리고 영토를 모두 잃고 몇몇 부하들만 대동한 채 사막에 숨어지냈다.

이리하여 누미디아 전체를 손아귀에 쥔 것처럼 보였지만, 기원전 204년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아프리카에 합세한 뒤 마시니사와 함께 쳐들어오면서 위기에 직면했다. 그는 장인인 하스드루발 기스코와 연합하여 우티카를 포위한 스키피오의 로마군과 대적했다. 그러나 기원전 203년, 스키피오는 적의 진영을 야습해 진지를 모조리 불태웠고, 기스코와 시팍스는 완패한 뒤 본국으로 후퇴했다.(우티카 전투)

이후 병력을 수습하여 하스드루발 기스코와 손잡고 바그라다스 평원에서 재차 맞붙었으나 또다시 참패했고,(바그라다스 전투) 하스드루발이 카르타고로 달아날 때 그는 키르타로 도피했다. 스키피오가 카르타고에 집중한 사이, 가이우스 라일리우스와 마시니사는 키르타로 쳐들어갔다. 시팍스는 키르타 부근에서 최후의 항전을 하였으나 끝내 패배했고, 도주하려다가 말이 쓰러지는 바람에 로마군에게 체포되었다. 시니사는 키르타에 입성한 뒤 누미디아의 군주로 재등극한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약혼녀였던 소포니스바와 재회했다. 소포니스바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마시니사는 그날로 소포니스바와 결혼했다.

그러나 스키피오는 사로잡힌 시팍스로부터 자신이 로마를 배신한 것은 소포니스바가 자신을 유혹했기 때문이며, 그녀는 마시니사더러 카르타고와 손잡으라고 설득할 것이라는 경고를 접한 후 그녀에게 경계심을 품었다. 스키피오는 마시니사에게 소포니스바가 시팍스의 배신에 연루되었으니 로마로 끌고 가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며 그녀를 넘길 것을 요구했다. 마시니사는 자비를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자신이 그녀를 처리할 테니 말미를 달라고 요청해 승인을 받아냈다. 그 후 마시니사는 충직한 하인에게 독약과 전말을 설명하는 편지를 건넨 후 소포니스바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소포니스바는 하인으로부터 이를 전달받은 직후 독약을 마셨다.

이후 이탈리아로 끌려간 시팍스는 티부르(현재 티볼리)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