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四仙
1. 개요
또 당나라 영호징(令狐澄)의 ≪신라국기(新羅國記)≫에는 “귀인들의 자제 중 아름다운 자를 가려 뽑아 분을 바르고 곱게 단장하여 받들었으며, 이름을 화랑이라 하고 나라 사람들이 다 받들어 섬겼다”고 하였다. 이는 대개 왕의 정치를 돕기 위한 방편이었다. 선랑이었던 원화로부터 신라 말에 이르기까지 무릇 이백여 명이 나왔는데 그 중에서 사선(四仙)이 가장 어질었으니, 저 ≪세기≫ 중에 설하는 바와 같다.
《해동고승전》 권제1 석법운
《해동고승전》 권제1 석법운
남북국시대의 전설적인 화랑 4인조. 네 명의 이름은 영랑(永郎), 술랑(述郎), 남석(南石), 안상(安詳)이다.[1]
활동한 시대는 통일신라 효소왕 시기로 여겨지며 고려, 조선 시대까지 여러 문인들의 기록에서 최고의 화랑으로 칭송받았고 사선의 행적을 성지순례하는 게 유행했다.
2. 행적
사실 실제 역사적 인물로서의 뚜렷한 행적 기록은 별로 없다. 그러나 전국 각지(주로 지금의 강원도 지역)에서 이들이 수련하면서 거쳐갔던 명승지에 이들의 흔적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는데, 예를 들어 관동팔경 중 총석정과 삼일포의 이름이 이들과 관련돼있다. 삼일포는 네 화랑이 3일간 유람하고 갔다고 해서 삼일포. 이외에도 금강산 영랑봉과 영랑대, 속초시 영랑호, 강릉시 한송정, 고성군 선유담, 경상북도 울진군 월송정 등이 이들의 행적과 연관된 이름들이다. 이름만 남긴 게 아니라, 예를 들면 삼일포에는 영랑도남석행(永郎徒南石行), 술랑도남석행(述郎徒南石行)이라고 직접 새겨놨다는데, 지금은 북한이 점령한 곳이라 남북분단 이후 지금까지 그게 남아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다. 네 명은 금강산에서 수련을 했다고 하며, 서라벌에서 열리는 무술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다가 영랑호의 경치가 너무 좋아 대회 날짜도 잊고 계속 머물렀다는 식이다. 몇몇 이야기에서는 아예 신선으로 묘사한다.네 명 중에서는 영랑이 대장이었는지, 관련된 행적이나 기록이 특히 많은 편이다. 울산광역시의 울주 천전리 암각화에 새겨져있는 '술년 6월 2일 영랑 성업(戌年六月二日永郎成業)'도 사선 중 영랑의 수련이 끝났음을 기념한 것이며, 영랑의 이름은 속초시 영랑동으로도 남아있다. 술랑과 남석랑은 기록이 별로 없고, 안상은 젊을 때 효소왕 때의 국선(화랑의 1인자) 부례랑(夫禮郞)의 낭도로 있었는데, 북명(원산만)에서 부례랑이 말갈족[2]에게 납치당했을 때 주군의 구출에 공을 세웠다는 일화가 삼국유사에 남아있다.
달랑 넷이서만 돌아다닌 건 아니고 이들도 낭도를 이끌고 다녔는데, 가령 영랑의 낭도로는 진재(眞才)와 번완(繁完)이 유명했다고 한다.
고려시대 내내 국가적 행사였던 팔관회에서도 신라사선을 주제로 한 사선악부(四仙樂部) 행사가 포함됐다고 하며 이인로는 사선을 주제로 시를 쓴 게 남아있고 조선시대 정철의 관동별곡에서도 사선이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