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04 16:11:05

신리


1. 개요2. 역사3. 상세

[clearfix]

1. 개요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의 마을이다. 인구수는 약 650명.

2. 역사

이 마을에 처음으로 정착한 사람은 경주 김씨로 알려지고 있으나 시기는 추정할 수 없다.

지명은 운암(雲岩)마을의 이름을 따서 새운암으로 불려오다가 행정지침에 따라 마을명칭을 리(里)로 바꾸는 과정에서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신리(新里)로 바꾸게 되었다.

일제시대에는 이 마을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으며 당시 건립되었던 서생어업조합 사무실과 사택건물 등이 아직 남아 있다. 일본의 수곡수산(守谷水産)이란 회사가 부산과 방어진간의 물류를 운반했는데 이 화물선이 신리항에서 출입항 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의 제일무역회사가 출범, 어부들이 잡아온 붕장어(아나고)를 일본으로 수출하여 동해산 장어수출 기지항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후 1960년대에는 밀복잡이 주항으로서도 명성이 높았다.

1970년대 초 고리원자력 발전소가 세워지면서 고리에 살았던 철거민 27호가 이 지역으로 이주를 했다. 이후 이 지역은 수산업이 발달하여 신리항이 2종항이 되어 태풍이 오는 날에는 이 일대에 있는 어선들이 모두 신리항으로 몰려들어 한때 이 지역에는 수협이 들어서기도 했다. 또 어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과수 농사를 많이 해 배의 집산지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가을이 되면 골매 마을을 중심으로 도로가에 배를 내어놓고 파는 농민들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마을에 있는 골매는 1970년대 토탄(土炭)이 많이 생산되어 주민들의 소득원이 되기도 했다. 인근 지역보다 지형이 낮아 파도가 높을 때 바닷물이 들어오면 빠지지 않는다. 따라서 파도를 따라 이곳으로 들어온 해조류가 오랫동안 썩으면 토탄이 되는데 토탄은 비료의 주원료가 되어 비싼 값으로 팔렸다. 한때 토탄을 파낸 자리가 웅덩이가 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메워져 있다.

3. 상세

신암과 비학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31번 국도가 마을 중앙을 지나가고 있는 이 마을은 원전 개발로 마을의 절반이 원전 지구로 고시가 되어 있는 형편이다. 원자력 추가 부지로 선정된 비학마을이 보상이 끝나면 마을 전체가 이주하게 된다. 그리고 신리마을 일부 골매(骨埋)와 본 마을 일부가 추가고시지역으로 지정되었고 비학마을 골매마을 주민들이 다 이주하게 되면 신리마을은 울주군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게 된다.

대중교통은 715번.405번.기장군3번이 다닌다. 인근의 서생역도 있다. 학교시설로는 서생초등학교서생중학교가 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