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3-27 20:33:40

아네가와 전투


1. 개요2. 배경3. 전개4. 결과

1. 개요


姉川の戦い

일본 센고쿠 시대인 1570년 6월 28일 오다-도쿠가와 연합군과 아자이-아사쿠라 연합군이 아네가와라는 곳에서 벌인 전투로 오다 노부나가가네가사키 전투의 설욕을 하게 되고 아자이와 아사쿠라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2. 배경

오다 노부나가는 교토로 상경한 이후 천하포무를 이루기 위해 각지의 다이묘들에게 교토로 오라는 명을 전한다. 이는 노부나가 자신의 권위를 확립함과 동시에 자신의 편이거나 적인 다이묘들을 구분하기 위한 계략이었는데 호쿠리쿠에치젠을 장악하고 있던 아사쿠라 요시카게는 이러한 명을 무시한다. 이에 노부나가는 아사쿠라를 제압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켰는데 문제는 아사쿠라는 당시 오다 가와 동맹 관계를 맺고 있던 아자이 가문과 혈맹 관계였던 것이다. 아자이 나가마사는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와 결혼했기 때문에 노부나가는 나가마사에게도 아사쿠라를 함께 공격하는 것에 참여하자고 했다 .나가마사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고심 끝에 아사쿠라와의 의리를 지키기로 하고 노부나가의 배후를 공격한다. 아사쿠라와 아자이의 협공에 노부나가는 위기에 빠지고 결국 가네가사키에서 혈전 끝에 아자이-아사쿠라 연합군의 추격을 빠져나온다. 이 일로 오다-아자이의 결혼동맹은 깨지게 된다.

3. 전개

이후 노부나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연합군을 결성해 총 34,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아자이 가문의 영토인 북 오미로 진군하고 아자이 가의 거성인 오다니 성까지 진격한다. 아자이는 이소노 카즈마사를 선봉으로 해서 오다-도쿠가와 연합군과 맞서게 하고 아사쿠라에 지원 요청을 하고 이윽고 아사쿠라 카게타케를 총대장으로 삼은 지원 병력이 파견되고 두 세력은 오미의 비와 호로 흐르는 아네가와에서 대치하게 된다. 전투 전개는 오다 군과 아자이 군이 도쿠가와 군과 아사쿠라 군이 서로 맞붙으면서 벌어지는데 아자이는 수적으로 오다보다 열세였지만 오히려 오다 군의 13단의 진 중 11단의 진을 격파하고 시바타 가츠이에,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케다 쓰네오키 같은 오다의 이름난 장수들을 패배시키는 전과를 올린다. 반면 오다-아자이의 전투 상황과 다르게 도쿠가와 군보다 수적으로 우세했던 아사쿠라 군은 오히려 도쿠가와 군에게 패퇴하는데 당시 아사쿠라 군은 다이묘인 요시카게가 직접 출진하지 않아서 사기가 떨어져 있고 도쿠가와 군은 고전하면서도 아사쿠라 군에게 밀리지 않고 잘 싸워 결국 이에야스의 본대가 합류하자 아사쿠라 군을 격퇴하게 된다.[1] 한편 패배 직전까지 몰렸던 오다 군은 계속해서 파견된 지원 병력의 힘을 입어 아자이 군을 측면에서 공격하는 전과를 올리면서 반격에 성공하고 아자이 군 역시 패배하게 된다.

4. 결과

아자이-아사쿠라 연합군은 이 전투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는데 아자이는 나가마사의 중신이었던 엔도 나오츠네, 나가마사의 친동생 아자이 마사유키 등 아자이 가문의 핵심 무장들이 전사하고 아사쿠라는 마가라 나오타카-나오즈미 형제가 전사한다. 이후 아자이-아사쿠라 연합은 이시야마 혼간지 세력과 히에이 산의 엔랴쿠지 승병 세력, 다케다 신겐과 연합을 맺어 노부나가 포위망을 조직해서 계속해서 오다 가와 맞서 싸웠다. 한편 아네가와 전투에서 용맹을 떨쳤던 이소노 카즈마사는 이후 나가마사의 의심을 받아 결국 오다 가에게 투항하는데 이후 아자이-아사쿠라는 사이좋게 오다 가에 의해 멸망당하고 만다.
[1] 이 공로를 치하하면서 오다 노부나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한고조 유방, 맹장인 혼다 헤이하치로 타다카츠를 장비에 비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