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국방부 장관 | ||||
제5대 아메드 하산 알 바크르 | → | 제6대 아드난 키랄라 | → | 초대 아드난 키랄라 |
이라크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 | ||||
제6대 아드난 키랄라 | → | 초대 아드난 키랄라 | → | 제2대 압둘 자바 샨샬 |
역임한 지위 | ||||||||||||||||||||||||||||||||||||||||||||||||||||||||||||||||||||||||||||
|
<colbgcolor=#cf0921><colcolor=#FFF> 이라크 국방부 장관 겸 부총리 아드난 키랄라 عدنان خير الله طلفاح | |||||
성명 | 아드난 키랄라 Adnan Khairallah عدنان خير الله طلفاح | ||||
출생 | 1940년 9월 23일 | ||||
이라크 왕국 티크리트 | |||||
사망 | 1989년 5월 4일 (향년 48세) | ||||
이라크 모술 | |||||
직업 | 정치인, 군인 | ||||
학력 | 바그다드 대학교 | ||||
종교 | 수니파 이슬람 | ||||
정당 | [[바트당| 바트당 ]] (이라크) | ||||
약력 | 바트당 지방사령부 의원 이라크 혁명사령부 위원회 의원 이라크 국방부 장관 | ||||
재임 기간 | 이라크 국방부 장관 | ||||
1977. 10. 15 ~ 1989. 05. 04 | |||||
{{{#!wiki style="margin: -7px -10px" {{{#!wiki style="margin:-6px 0px; display:inline-table" | }}} {{{#!wiki style="margin: -5px -2px; display: inline-table" | <tablebordercolor=#cf0921> 이라크 보안군 군사 경력 | }}}}}} | ||
복무 | 이라크 육군 | ||||
1959년 ~ 1989년 | |||||
최종 계급 | 육군 대장 | ||||
주요 참전 | 이란-이라크 전쟁 |
[clearfix]
1. 개요
이라크의 군인이자 정치인.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사촌이다.이라크 국방부 장관, 혁명사령부 위원회 의원 등을 역임한 관료였으나 1989년, 모술에서 항공 사고로 사망한다. 훗날 이 항공 사고가 알 마지드와 후세인 카멜이 그를 암살하기 위해 벌인 음모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2. 생애
1940년 9월 23일, 이라크 티크리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라크 군 장교인 키랄라 타파. 사담 후세인의 사촌이기도 하다. 그는 바그다드 군사 대학에 다녔고, 1975년 바그다드 대학교 법과 정치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았다.1956년, 이라크 바트당에 입당했다. 1959년 당시 이라크 총리였던 압드 알 카림 카심을 암살하려던 시도가 실패하자 체포되었다. 이후 바트당이 1963년과 1968년, 두 차례에 걸쳐 쿠데타를 시도할 때 협조해 쿠데타를 성공시키는데 역할을 했다.
1977년, 이라크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었고 이어 이라크 혁명사령부 위원회 의원, 바트당 지역사령부 의원 등을 역임했다. 키랄라는 이란-이라크 전쟁 동안 이라크 국방부 장관을 재임했고, 사담 후세인에 이어 두 번째로 육군 부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이 직책에서 그는 이라크 군대를 재건하고 현대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8년 11월, 그의 조카인 우다이 후세인은 사담 후세인의 명령으로 체포되었는데, 우다이가 카멜 하나 게지오라는 사담 후세인의 대통령 경호원 중 한 명인 장교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 스캔들은 우다이의 어머니와 그의 여동생 사지다가 그에게 도움을 호소하는 등 가정에 불화를 일으켰다. 그 후, 군대의 소요사태, 쿠데타 가능성, 그리고 몇몇 군 장교들의 체포가 보도되면서, 그가 사담 후세인에 대한 쿠데타 시도에 연루되었다는 추측을 불러일으키면서, 결국 그는 한동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1989년, 바스라 근처에서 사담 후세인과 낚시 휴일을 보내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 영상이 공개되면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에 뒤이어 그는 국방장관으로서 다시 복귀했다.
하지만 1989년 5월 4일, 그가 타고 있던 헬리콥터가 추락해 결국 사망했다. 그는 바그다드에서 이라크 쿠르드 지역으로 이동해 군 진지를 시찰하던 중 도후크 인근 산간 휴양지인 사상에 있는 대통령 가족 몇 명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갈아탔다. 헬리콥터를 타고 이동하던 도중 두 대의 호위 헬기와 함께 모래폭풍에 휘말렸다.
그의 죽음을 발표할 때, 사담 후세인은 그를 "뛰어난 전쟁 영웅 중 한 명이자 이라크 하늘의 반짝이는 별"이라고 평가했다. 바그다드 라디오는 그에게 국장을 수여하고 그의 고향인 티크리트에 묻힐 것이라고 발표했다. 바그다드에도 그의 추모 동상이 세워졌다.
비록 사고사라고는 하지만, 그가 타고 있던 헬리콥터의 폭발물 4개가 폭발했기 때문에 그의 사망이 고의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또 후세인 카멜 알 마지드는 그의 죽음을 조장하는데 한몫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