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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8-04 22:55:40

아드리아노폴리스 조약

1.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 가문2.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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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아드리아노폴리스에서 네 차례에 걸쳐 기독교 세력과 체결한 조약.

1.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 가문

1.1. 쉴레이만 1세카를 5세 (1547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헝가리를 빼앗기 위해 카를 5세페르디난트 1세가 1541년과 1544년에 거병하였으나 모두 오스만 제국군에 패하였고 (특히 1543년의 에스테르곰 공방전) 1545년부터 협상하여 체결된 조약. 여기서 스페인 국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와 그의 동생이며 독일왕이자 오스트리아 대공보헤미아헝가리, 크로아티아 국왕 페르디난트 1세는 각각 '스페인 왕'과 '독일 왕'으로 서명한데에 반해 쉴레이만 1세는 '로마 황제' 로 서명하여 기독교권에 충격을 선사하였다. 게다가 이 조약으로 오스트리아는 약 80여년간 오스만 제국에 매년 3만 플로린 금화를 조공으로 바치게 되었다. 바야흐로 오스만 제국의 최전성기를 상징하는 조약.

1.2. 셀림 2세막시밀리안 2세 (1568년)

카를 5세의 조카[1]이자 페르디난트 1세의 맏아들인 신성 로마 제국 황제 겸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장 막시밀리안 2세가 헝가리 탈환을 위해 출정했으나 오히려 쉴레이만 1세가 헝가리 서부를 공격했다. 하지만 시겟바르 포위전에서 쉴레이만 1세가 병사하자 오스만 군대가 철수하며 체결된 조약이다. 소콜루 메흐메트 파샤의 주도로 1567년 가을에 협상이 시작되어 이듬해 2월 17일에 끝났으며 21일에 체결되었다. 위의 조약에서 명시된 3만 두카트의 연공은 유지되었고 합스부르크 측은 오스만 제국의 트란실바니아 공국, 몰다비아 공국, 왈라키아 공국의 종주권을 인정하였다.

2.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제국

2.1. 표트르 대제아흐메트 3세 (1713년)

아흐메트 3세가 1711년의 프루트 조약[2]을 재확인하며 대북방전쟁으로 오스만 궁정에 피신해 있던 스웨덴칼 12세를 본국으로 돌려보낸 조약.

2.2. 니콜라이 1세마흐무트 2세 (1829년)

그리스 독립 전쟁의 일환으로 벌어진 1828-29년의 10차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은 처절히 패하였다.

따라서 러시아 제국
또한

[1] 이면서 사위였다.[2] 오스만 제국의 아조프 회복[3] 완전한 국제사회의 독립 인정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삼국이 보호국으로서 그리스를 인정한 1830년 2월 3일 런던 조약으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