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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탁세스 왕조 9대 샤 Առաջին | 아르타바스데스 3세 | ||
제호 | 한국어 | 아르타바스데스 3세 |
아르메니아어 | Առաջին | |
그리스어 | ΑΡΤΑΒΑΖΔΟΥ | |
고대 페르시아어 | Ṛtavazdā | |
존호 | 샤 | |
생몰 년도 | 미상 ~ 기원전 2년 | |
재위 기간 | 기원전 5년 ~ 기원전 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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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메니아 아르탁세스 왕조 9대 샤. 티그라네스 4세와 에라토의 왕위를 차지했다가 그들에게 도로 빼앗겼다.2. 생애
아르타바스데스 2세의 아들이자 티그라네스 3세의 형제로, 기원전 34년 아르타바스데스 2세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로마군에게 생포되어 알렉산드리아로 끌려갈 때 함께 했다. 아우구스투스가 안토니우스를 꺾고 이집트를 평정한 뒤 로마로 이송되어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았다.기원전 8년 아르메니아 왕위를 맡고 있던 티그라네스 3세가 사망한 뒤 아들 티그라네스 4세와 딸 에라토가 공동 왕이 되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의 승인 없이 집권했기 때문에, 로마는 두 사람을 반역자로 간주했다. 게다가 그들은 반로마, 친파르티아 정책을 밀어붙이며 아르메니아 여론을 로마에 적대적인 쪽으로 이끌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들을 몰아내기로 마음먹고, 기원전 5년 아르타바스데스 3세를 아르메니아의 새 군주로 내세웠다. 티그라네스 4세와 에라토는 이에 맞서 파르티아 샤한샤 프라아테스 4세의 지원으로 아르타바스데스 3세와 맞섰다. 이 지원을 받은 반란으로 기원전 2년 아르타바스데스 3세는 아르메니아에서 쫓겨났고 로마군과 함께 퇴각하던 중 병에 걸려 죽었다. 티그라네스 4세와 에라토는 프라아테스 4세가 로마와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 지원을 중단하자 로마에 사절을 보내 용서를 청했고,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에 복종하고 공물을 늘리는 대가로 그들이 권력을 유지하도록 허용했다.
서기 1년 티그라네스 4세가 이민족과의 전투를 치르던 도중 전사했고, 서기 1년부터 서기 2년까지 단독 통치하던 에라토는 남편이 죽은 뒤 정치 혼란이 극심해지자 퇴위했다. 이리하여 아르메니아의 왕위가 공석이 되자, 아우구스투스의 특명을 받고 동방으로 파견된 가이우스 카이사르가 메디아 아트로파테네의 왕 아리오바르자네스를 새 왕으로 세우고 유프라테스 강의 한 섬에서 프라아테스 5세와 면담해 파르티아의 동의를 받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