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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17 19:08:52

에라토(아르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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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탁세스 왕조 8, 10, 13대 샤
Erato | 에라토
파일:Queenerato (1).jpg
제호 한국어 에라토
그리스어 Erato
존호
생몰 년도 미상 ~ 12년 이후
재위 기간 기원전 8년 ~ 기원전 5년, 기원전 2년 ~ 2년, 6년 ~ 12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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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메니아 아르탁세스 왕조 8, 10, 13대 . 처음에는 티그라네스 4세와 공동으로, 마지막에는 티그라네스 5세와 공동으로 재위했다.

2. 생애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뮤즈의 일원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티그라네스 3세의 딸로, 이복 오빠 티그라네스 4세가 있었다. 기원전 8년 티그라네스 3세가 죽은 뒤 티그라네스 4세가 왕위에 오를 때 오빠인 그와 근친혼하고 함께 공동 왕이 되었다. 이는 티그라네스 4세 치세기에 주조된 동전에 두 사람의 초상이 동전에 함께 실린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이베리아 왕국파라스마네스 1세와 결혼하게 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딸을 낳았다.

둘은 겉으로는 로마의 봉신으로 남았지만, 내심 로마에 반감을 품고 있었다. 4세기 역사가 페스투스에 따르면, 두 사람의 재위 기간 동안 아르메니아에서 반로마 정서가 매우 강했으며 아르메니아는 강력한 국가가 되었다고 한다.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5년 티그라네스 3세의 동생이자 티그라네스 4세의 삼촌인 아르타바스데스 3세를 아르메니아의 새 군주로 내세웠다. 티그라네스 4세와 에라토는 이에 맞서 파르티아 샤한샤 프라아테스 4세의 지원으로 아르타바스데스 3세와 맞섰다. 이 지원을 받은 반란으로 기원전 2년 아르타바스데스 3세는 아르메니아에서 쫓겨났고 로마군과 함께 퇴각하던 중 병에 걸려 죽었다. 티그라네스 4세와 에라토는 프라아테스 4세가 로마와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 지원을 중단하자 로마에 사절을 보내 용서를 청했고,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에 복종하고 공물을 늘리는 대가로 그들이 권력을 유지하도록 허용했다.

서기 1년, 티그라네스 4세가 이민족과의 전투를 치르던 도중 전사했고, 서기 1년부터 서기 2년까지 단독 통치하던 에라토는 남편이 죽은 뒤 정치 혼란이 극심해지자 퇴위했다. 이리하여 아르메니아의 왕위가 공석이 되자, 아우구스투스의 특명을 받고 동방으로 파견된 가이우스 카이사르가 메디아 아트로파테네의 왕 아리오바르자네스를 새 왕으로 세우고 유프라테스 강의 한 섬에서 프라아테스 5세와 면담해 파르티아의 동의를 받아냈다. 에라토가 어느 곳으로 망명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서기 6년 로마에 의해 왕으로 옹립되었던 아리오바르자네스아르타바스데스 4세가 차례로 피살당하자, 아우구스투스는 아르메니아에 대한 외교 정책을 재검토하고 모계 쪽에서 아르탁세스 왕가와 관련이 있는 티그라네스 5세를 새 왕으로 세웠다. 아르메니아 귀족들은 에라토를 궁정으로 불러들여 티그라네스 5세와 함께 공동 왕으로 세웠다. 그녀가 티그라네스 5세와 결혼했을 가능성이 높으나, 기록이 부족해서 확실하지 않다.

12년 아르타바노스 2세와 내전을 벌이고 있던 파르티아 샤한샤 보노네스 1세는 전세가 불리해지자 아르메니아로 이동하여 티그라네스 5세와 에라토를 몰아내고 아르메니아 왕을 칭했다. 그녀는 티그라네스 5세를 따라 로마로 망명했으나,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